<아수라> 노주한 스틸 작가
김성수 감독이 <아수라>에 출연했다는 사실을 알려나 모르겠다. 그는 커터 칼을 쥔 채 한도경(정우성)의 뒤를 위협하는 장면을 직접 연기했다. 얼굴은 화면에 담기지 않았다. 카메라앵글이 커터 칼을 향하고 있는 것을 보니 김성수 감독의 손만 등장하는 장면인 게 분명하다. 이래봬도 둘의 손이 엎치락뒤치락하다가 커터 칼이 박성배(황정민) 시장의 이마를 그어 피를 보게 되는 중요한 인서트 컷이다. 노주한 스틸 작가의 말에 따르면 “김성수 감독은 인서트 컷 때마다 직접 출연하거나 연출부를 시켜 직접 연기하게 하는 걸 즐”긴다. 이처럼 <아수라> 현장에서 김성수 감독은 모니터 앞에 앉아 있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항상 카메라 옆에서 연출하셨다. 특히 이 장면처럼 찍어야 할 컷이 많은 날에는 모니터를 안 보고 A카메라와 B카메라를 오가며 진행”했다고 한다.
쉬운 문제 하나. 김성수 감독은 곽도원과 정만식 둘 중에서 누구를 찍고 있는 것일까. 정답은 정만식이다.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는 곽도원과 달리 정만식은 다소 긴장한 듯하다. 고사가 열린 날, 의상 피팅할 때 노주한 스틸 작가의 카메라에 포착된 재미있는 풍경이다. “그때 감독님께서 정만식 선배가 남자로서 되게 매력적인 얼굴을 가졌다고 말씀하셨다. 정우성보다 낫다고 하시면서 만식 선배의 얼굴을 계속 찍으셨다.” 안경을 머리 위로 올린 채 카메라를 찍고 있는 김성수 감독이나 긴장한 채 카메라를 보며 진지하게 포즈를 취하고 있는 정만식이나 그런 그를 쳐다보고 있는 곽도원이나, 재미있게 나온 사진이다. 물론 실제로 만나본 정만식은 매력적이었다.
“깡패 새끼 죽일까? 네가 할래?” 박성배 시장이 자신의 얼굴을 문틈 사이로 들이밀어 한도경에게 속삭이는 장면이다. 세트 벽 왼쪽인 병원 병실은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는 반면, 황정민이 서 있는 병원 복도는 카메라앵글 밖이다. 황정민이 대사를 하고 문을 닫은 뒤 스탭들을 쳐다보며 웃고 있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2010), <신세계>(2012), <국제시장>(2014), <베테랑>(2015) 등 황정민과 네 작품을 함께 작업한 노주한 스틸 작가는 “황정민 선배는 무뚝뚝하면서도 스틸 작가의 요구를 다 들어주는 ‘츤데레’ 스타일”이라며 “슛 들어가면 치열하게 연기를 하다가도 컷 사인만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동네 형으로 돌아온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