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제작할 때 ‘게임 원작’이라는 타이틀은 효과적인 마케팅 수단이 된다. 사람들은 게임을 통해 이미 영화의 대략적인 내용이나 분위기를 유추할 수 있다. 게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걸 영화로 어떻게 만들었을까?’라는 호기심도 발동할 것이다. 만약 100만장이 팔린 게임이라면 적어도 100만명의 예비관객을 확보하고 시작하는 셈이다. 마케팅과 입소문이 중요한 영화시장에서 이는 분명 강점이다. 하지만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원작 게임을 아는 관객만으로는 부족하다. 오히려 감독은 게임이라는 소재로 게임을 전혀 모르는 관객을 염두에 두고 영화를 제작해야 한다. 게임과 영화, 게이머와 비게이머, 두 영역의 경계에서 적절한 타협점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원작의 스토리와 분위기를 충실하게 반영할 것인지, 원작을 무시하고 설정만 가져와 아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것인지, 그 선택은 감독의 몫이다. 그리고 어느 쪽이든 게임과 영화를 조합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화된 게임을 영화화한다는 것은
사실 게임과 영화는 꽤 오래전부터 밀접한 관계를 이어왔다. 게임은 단순하고 반복적인 놀이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찍부터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초기에는 간단한 그래픽 이미지와 텍스트가 전부였다. 하지만 기술이 발전하면서 영상이 추가되었고, 게임의 이야기 전달 방법 역시 점차 영화에 가까워졌다. 아예 영화를 게임의 소재로 활용하기도 했다. 과거 <스타워즈>나 <인디아나 존스> 같은 영화들이 게임으로 제작 되었으며, 영화 원작 게임이라는 미디어 믹스는 지금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모션 캡처 같은 촬영기술, 카메라워크, 연출기법 등이 게임 개발에 접목되면서 오늘날 게임은 영화와 거의 동일한 수준의 영상을 구현한다. 즉 게임 캐릭터는 연기자가 되었고, 게임 스테이지는 광활한 세트장이 되었다. 이제 게이머들은 영화 속 주인공을 자유자재로 조작하는 경험을 아주 자연스럽게 경험할 수 있다. 게임 원작 영화는 이렇게 영화처럼 되어버린 게임을 영화가 다시 재매개(remediation)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호 교류가 가능한 이유는 두 매체 모두 서사, 즉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게임 서사와 영화 서사는 그 지향점이 다르다. 영화는 이야기 자체가 주된 목적이다. 영화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통해서 메시지를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한다. 반면 게임은 플레이 과정이 주된 목적이며, 이를 자연스럽게 끌고 가기 위한 수단으로 이야기를 활용한다. 게임에서 이야기는 플레이어의 목표를 명확하게 알려주며, 게임이 진행될 시공간을 보다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장애물을 회피하는 동그란 물체’보다는 ‘오븐에서 탈출하는 쿠키인형’쪽이 게이머에게 더욱 큰 몰입감을 줄 것이다. 물론 이런 단순한 이야기의 게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영화처럼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많은 비중을 둔 게임도 많다. <언차티드> <헤비 레인> <라스트 오브 어스> <메탈 기어> <어쌔신 크리드> 같은 게임은 주인공을 중심으로 거대한 서사가 전개된다. 하지만 이런 게임들 역시 이야기는 플레이 과정을 통해서 전개된다. ‘게임하기(Play)’가 없으면 ‘이야기’도 없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영화 서사와 게임 서사의 또 다른 차이점이 발견된다. 바로 게임을 진행하는 사람, ‘플레이어’의 존재다. 영화 속 주인공은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단계적으로 갈등에 맞서며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관객은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은 할 수 있지만 행동이입은 할 수 없다. 최종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영화 속 주인공은 자신의 행동을 통해 이야기를 이끌고 간다. 반면 게임 속 주인공은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동시에 플레이어의 조작을 통해 게임을 진행시키는 존재다. 이런 게임 캐릭터는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면서 이야기를 전개시킬 수가 없다. 이야기가 진행되기 위해서는 플레이어의 개입이 필요한데,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대개 이야기 속 주인공과는 다른 욕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 안에서 주인공의 욕망은 사랑, 행복, 좌절, 분노, 복수 등 다양한 인간의 감정들로 구성된다. 하나 게임에서 플레이어의 욕망은 상대적으로 단순한 편이다. 그 욕망의 키워드는 주로 승리, 성공, 수집, 발견, 파괴 등 제한된 것들이다. 이런 욕망들은 게임의 메커니즘과 플레이어의 학습에 의해 충족되며, 플레이어는 시행착오를 거치며 자신의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때문에 게임은 영화와 달리 언제든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가능성 또한 열어놓는다. 영화 속 주인공이 죽지 않는 것처럼 게임 속 주인공도 죽지 않는다. 한 사람은 안 죽고, 한 사람은 못 죽는다.
그래서인지 대체로 게임의 러닝타임은 꽤 길다. 쉬운 수준으로 빠르게 엔딩만 본다고 가정해도 20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물론 플레이어의 실력과 게임 디자인에 따라 이 시간 역시 유동적이다. 게임의 이야기는 분절된 상태로 게임 안에 배치되어 있다가 게임 진행에 맞춰서 전개된다. 플레이 타임이 길어질수록 이야기 역시 길어지는 구조다. 게다가 게임에서는 플레이어 스스로 이야기의 퍼즐을 맞춰야 하는 부분도 적지 않다. 플레이어는 직접 캐릭터를 조작해서 사람들과 대화하고, 다음 이야기 전개에 필요한 단서를 찾아야 한다. 간혹 플레이어가 이야기 전개에 협조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시나리오상 주인공은 중요한 인물을 구출해야 하지만 플레이어는 숨겨진 보물이나 아이템을 찾으며 돌아다닐 수도 있다. 때로는 적을 물리치고 미로를 탈출하는 데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소모하기도 한다. 물론 게임은 이런 플레이어를 위해 이야기의 흐름을 유예시킨다. 플레이어가 특정지점에 도달할 때까지 이야기의 시간은 멈춰 있다. 영화가 2시간 내외의 러닝타임을 그야말로 아끼고 아껴서 사용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게임으로서의 특징을 살려야
정리해보면, 영화 서사는 주인공의 행동을 통해 이야기가 단절 없이 한 방향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게임 서사는 플레이어의 행동을 통해 분절되어 이야기가 여러 방향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게임 속 주인공은 그 과정을 묵묵히 대행할 뿐이다. 그는 게임을 이끌어가는 아바타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캐릭터 사이에서 방황한다. 영화 원작 ‘게임’은 영화 속 캐릭터를 게임의 플레이에 녹여넣으면 된다. 게임 캐릭터가 되는 과정에서 인물이 갖고 있던 욕망은 대부분 사라지고, 플레이에 필요한 기능만이 강조된다. 오히려 영화에서 학습된 캐릭터에 대한 지식이 게임 플레이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영화 <스파이더맨>을 봤다면 주인공 손에서 거미줄이 발사되고 줄을 타고 건물 사이로 이동할 수 있다는 규칙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게임 원작 ‘영화’는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캐릭터와 플레이를 대행하는 아바타를 동시에 영화 안으로 가져와야 한다. 이 과정에서 대체로 플레이를 대행하던 아바타의 모습은 사라진다. 즉 게임 경험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 사라지거나 축소되는 것이다. 예컨대 게임 <어쌔신 크리드>는 목표를 ‘암살’하는 과정이 중요하지만 영화 <어쌔신 크리드>에서는 단순한 액션 장면의 일부로 취급된다. 정작 게임을 소재로 가져왔지만 게임적인 특징은 휘발된 채 이야기의 캐릭터만 남는다. 이런 반쪽짜리 캐릭터가 처음부터 영화로 기획된 탄탄한 캐릭터들과 경쟁하기란 참으로 어려울 것만 같다. 애니메이션 <주먹왕 랄프>(2012)가 게임 원작 없이도 충분히 흥미로운 것은 각 인물들이 게임 플레이 과정에서 지니고 있던 능력을 영화 속 이야기에서도 놓치지 않기 때문이다. 게임 원작 영화의 가능성은 어쩌면 자신의 뿌리인 게임을 잊지 않는 것에서 시작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