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씨네21 추천도서 <사계절1318문고 20주년 기념 에디션>
2017-08-22
글 : 김송희 (자유기고가)
사진 : 백종헌
<사계절1318문고 20주년 기념 에디션> 박지리 외 9인 지음 / 사계절출판사 펴냄

애서가라면 출판사의 에디션보다는 자신만의 북리스트를 만드는 것이 더 매력적일지 모르겠다. 사계절1318문고에서 109권의 책 중 10권을 엄선한 에디션을 마주했을 때, 과연 전부 읽을 만할까 의심이 들었다. 이금이 작가의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를 읽다가 정신을 차리니 동이 터 있었다. 한권을 해치우고(?) 다음 권을 읽다 보니 ‘엄선’이라는 말에 수긍이 되었다.

박지리 작가의 <맨홀>, 최상희 작가의 <델 문도>, 김해원 작가의 <추락하는 것은 복근이 없다>, 박상률 작가의 <봄바람>, 그리고 이금이 작가의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까지 총 5권의 한국 소설, 그리고 신시아 라일런트의 <그리운 메이 아줌마>, 로버트 뉴턴펙의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 마이테 카란사의 <독이 서린 말>, 라헐 판 코에이의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 창신강의 <나는 개입니까>까지 외국 소설 5종이 모였다. 청소년 소설로 분류되지만 성인 소설이라고 해도 무리 없는 소설들의 리스트이며, 특히 외국 소설은 스페인, 중국 등 다양한 국가들의 신진 작가 작품이라 의미가 있다. 그중 추천하는 책은 <독이 서린 말>. 납치된 아동의 사건을 좇는 형사, 아이를 찾는 엄마, 그리고 감금된 소녀의 인칭을 오가며 소름 끼치는 사건의 장막을 조금씩 들추는 소설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으며 스페인에서도 문제작으로 꼽혔던 작품. 이 10권의 에디션은 사계절출판사가 새로이 시작한 문학 브랜드 욜로욜로에서 펴냈으며 젊은 아티스트들의 일러스트 표지로 보는 재미를 더했다.

누군가 골라준 소설을 읽는 재미

엄마는 비겁했고, 나는 엄마를 믿을 수 없었다. 엄마는 내 피임약들을 발견했다. 딸이 피임약을 그렇게 아무렇게나 방치할 거라고 믿을 바보 엄마가 어디 있단 말인가? 아니다. 나는 엄마가 눈치챌 수 있도록, 은쟁반에 곱게 올려놓았다. 하지만 보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법이다. 내 몸에 든 멍과, 내가 그 고통을 줄이기 위해 직접 자해한 팔의 상처들을 본 날에도 엄마는 나를 자세히 보지 않았다. (…) 엄마는 비겁했다. 엄마는 나를 도와주지도 않았고, 그해 여름 나한테 있었던 일을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엉망진창이 되었다. 나의 비밀 때문에, 나의 당혹스러움 때문에, 내 주변을 에워싼 무관심 때문에.(<독이 서린 말>, 25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