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그것>의 공포를 즐기기 위한 친절 안내서
2017-08-28
글 : 장영엽 (편집장)
다시 ‘그것’이 돌아왔어

“우리는 다 함께 맹세했었다. ‘그것’이 다시 시작되면 데리(Derry)로 돌아오겠다고.”

메인주의 작은 마을, 데리에서 걸려온 전화 한통이 일곱 남녀의 악몽을 되살린다. 전화를 건 사람은 고향 데리에 유일하게 남아 있던 친구 마이클. 그는 유년 시절을 함께 보낸 친애하는 동료들에게 두려운 소식을 전한다. “안녕, 나 마이클이야. ‘그것’이 다시 돌아왔어.” 과거를 잊은 채 소설가로 또는 디자이너로, DJ와 건축가와 회계사로, 도서관 사서와 성공한 사업가로 살아가고 있던 일곱 친구는 만사 제쳐두고 고향 데리로 향한다. 11살의 빛나는 여름, 물속에서 손을 맞잡고 약속했으니까. ‘그것’이 돌아오면 함께 막아내기로. 그걸 해낼 수 있는 사람은 그들밖에 없다는 걸 알기에.

1986년 출간된 스티븐 킹의 원작 소설 <그것>은 그의 다채로운 작품 세계 가운데에서 가장 빛나는 작품을 꼽을 때마다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호러소설이다. 특히 이 작품은 작가 자신이 창조해낸 인물 중 가장 공포스러운 존재라 명명한 바 있는 어릿광대 페니와이즈가 등장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죽음과 공포의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중년의 일곱 친구가, 고향으로 다시 돌아온 악의 근원을 완전히 처단하기 위해 다시금 힘을 합친다는 것이 소설 <그것>의 줄거리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설명이 충분치 않다. 스티븐 킹이 4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1812페이지(한국판 기준)라는 방대한 분량에 담아낸 <그것>의 이야기는 유년 시절의 모험담과 우정, 사랑과 좌절, 인간의 원초적인 공포와 두려움, 용기와 기지의 순간들을 총망라하고 있다. 그야말로 우리가 스티븐 킹의 작품으로부터 기대하는 거의 모든 것이 이 책에 담겨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기예르모 델 토로가 주목했던 아르헨티나 출신의 신예 안드레스 무시에티 감독(<마마>(2013)의 신작 <그것>은 스티븐 킹의 동명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다. 국내에서는 <박쥐>와 <아가씨> 등 박찬욱 감독과의 협업으로 잘 알려진 촬영감독 정정훈이 <그것>의 촬영을 맡았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화제가 됐다. 오는 9월 7일 국내 개봉예정인 <그것>은 워너브러더스가 두편의 영화로 기획 중인 이야기의 전반부에 해당하는 영화다(<그것>의 원제는 <It: Part 1 -The Losers’ Club>이다). 1958년의 과거와 1985년의 현재를 오가는 원작의 전개 방식과 달리, 영화 <그것>은 일곱 친구가 처음으로 페니와이즈라는 악의 실체와 대면하게 되는 유년 시절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출 예정이다. 말더듬이(빌), 뚱보(벤), 가난한 소녀(비벌리), 흑인(마이크), 유대인(스탠리), 안경잡이(리치), 약골(에디). <그것>의 주요 등장인물인 일곱 아이들은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소년 소녀들이다. ‘루저클럽’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이들은 비 오는 가을날,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무참하게 살해당한 빌의 동생 조지의 죽음을 시작으로 마을에서 종종 일어나는 어린이 살인사건의 배후에 페니와이즈라는 피에로의 존재가 있음을 알게 된다.

스티븐 킹의 소설과 영화 <그것>의 가장 큰 차이는 시간적 배경에 있다. <그것>의 제작진은 소설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1958년이 아닌, 1989년 여름이라는 시간적 배경을 선택했다. “(소설의 시간적 배경인) 1950년대는 스티븐 킹이 성장했던 시기다. 그의 작품은 킹이 경험했던 유년 시절의 공포에 대해 다루고 있다. 스티븐은 늘 말해왔다. ‘당신이 아는 것을 쓰라’고.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1980년대의 성장담 말이다. 그리고 당시에 우리가 두려워했던 감정을 다시금 일깨우고 싶었다.” 안드레스 무시에티 감독과 남매 사이이자 이 작품의 프로듀서를 맡은 바바라 무시에티의 말이다. 그녀의 말대로 1973년생인 무시에티 감독은 자신의 유년 시절이었던 1980년대를 배경으로 그가 직접 경험했던 공포의 감정을 되살려내고자 했다. 작품의 시간적 배경을 바꿨다는 건 <그것> 같은 영화에는 무척이나 파격적인 선택이다. 이 작품의 절대악, 페니와이즈의 특징은 상대방이 가장 두려워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데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의 제작진은 소설의 배경인 1950년대를 경유한 아이들이 두려워했을, 고전적인 괴수의 이미지를 줄이고 1980년대를 살았던 아이들이 느꼈을 법한 새로운 유형의 공포를 창조하는 데 주목했다고 한다. 다시 말해 영화 <그것>이 그려낼 공포는 늑대인간이나 미라를 보며 자라난 아이들보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어메이징 스토리>와 <환상특급> <그렘린>을 보며 성장했을 아이들에 근접한 유형의 공포일 것이다. 무시에티 감독은 “원작의 팬들조차 깜짝 놀랄 만한” 모습으로 변모한 페니와이즈를 이 영화에서 보게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영화 <그것>의 가장 중요한 관전 포인트 중 하나는 페니와이즈라는 절대악에 대한 묘사다. 1990년 스티븐 킹의 동명 원작을 바탕으로 한 TV용 영화 <피의 피에로>에서 페니와이즈는 맥도널드를 대표하는 아이콘 로널드를 꼭 닮은 모습으로 등장했었다(그렇다고 해서 팀 커리가 연기한 <피의 피에로>의 페니와이즈가 우스꽝스럽기만 했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예고편을 통해 짧게나마 엿볼 수 있었던 무시에티의 영화 속 페니와이즈는 보다 서늘하고 날카로운 느낌이다. 안드레스 무시에티 감독은 이 캐릭터가 선사할 공포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덧붙인다. “페니와이즈는 어둠 속에 숨어만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는 누군가의 앞에 나타나고 중심부에 위치하는 악당이며 자기만의 쇼를 벌인다. (중략) 페니와이즈가 무서운 이유는 그가 모습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캐릭터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의 영향이 도처에 존재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페니와이즈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상상하는 건 그의 실체보다 더 무섭다.” 이 기념비적인 캐릭터를 연기할 인물로 마크 라일런스, 리처드 아미티지, 휴고 위빙과 틸다 스윈튼 등이 거론되었지만 영화의 제작진은 넷플릭스의 호러 미드 <헴록 그로브> 시리즈로 주목받은 빌 스카스가드를 선택했다. 그의 연기를 두고 “매일 새로운 위협을 발견하는 느낌이었다. 그는 캐릭터에 미스터리를 가져오고 호기심을 유발한다. 그는 본능적으로 페니와이즈의 광기와 과장성을 탐험할 줄 안다”고 평한 안드레스 무시에티의 말은 스카스가드 버전의 페니와이즈에 대한 중요한 힌트가 되어준다.

스티븐 킹의 <그것>은 호러 스토리인 동시에 아이들의 성장담이기도 했다. 영화 <그것> 역시 원작의 복합적인 결을 반영하려 했다고 프로듀서 세스 그레이엄 스미스는 말한다(소설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 <링컨: 뱀파이어 헌터>를 집필한 그가 맞다). “우리는 <그것>을 통해 아이들이 정말로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조명하고 싶었다. 우리는 등장인물들이 많은 일들을 경험하며 변화하는 과정을 포착하려 애썼다.” 누군가의 죽음과 엄습해오는 공포를 경험하며 아이들은 자란다. 물론 <그것>의 아이들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다. 영화 속 대사처럼 “혼자 다니는 아이는 괴물들의 쉬운 먹잇감”이 된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그들이 맞설 거대한 심연의 정체가 궁금해진다.

사진 워너브러더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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