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빛나는 배우들⑥] 비키 크리엡스 - 자기만의 리듬을 가진 배우의 발견
2018-03-14
글 : 장영엽 (편집장)
<팬텀 스레드>
비키 크리엡스(오른쪽).

비키 크리엡스. 그녀의 이름을 올해의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 후보 목록에서 볼 수 없었다는 건 아카데미의 가장 큰 패착이다. 룩셈부르크 출신의 이 낯선 배우는 폴 토머스 앤더슨의 신작 <팬텀 스레드>에서 대니얼 데이 루이스의 상대역으로 등장한다. 영화가 공개되기 전부터 대니얼 데이 루이스는 이 작품이 배우로서 자신의 마지막 영화가 될 것이라 선언했고,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대니얼 데이 루이스에게 집중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팬텀 스레드>를 보면 모두가 알게 될 것이다. 비키 크리엡스가 그리 호락호락하게 관심의 주도권을 넘길 배우가 아니라는 것을. 그 짐작이 확신을 넘어 놀라움이 되기까지, 그녀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 모닥불에 아른거리는 비키 크리엡스의 화사한 미소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그 미소의 의미를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는지 탐구하는 여정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팬텀 스레드>는 한 위대한 메소드 배우에게 작별을 고하는 작품이자, 한 전도유망한 유럽 배우의 발견을 축하하는 작품이라 해야 할 것이다.

배우로서 비키 크리엡스의 가장 큰 매력은 지루하지 않다는 것이다. 누구와도 같지 않은 애티튜드와 리듬감을 가진 그녀는 예상되는 반응에서 언제나 한 발짝 벗어나 있다. <팬텀 스레드>에서 그녀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을 예로 들어보자. 영국 어느 시골 마을의 웨이트리스인 알마(비키 크리엡스)는 머리를 식히기 위해 식당을 찾은 웨딩드레스 디자이너 레이놀즈(대니얼 데이 루이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부드러운 눈꼬리와 억센 턱, 붉은 뺨을 지닌 그녀는 테이블에 부딪히고 식기를 요란하게 내려놓는 등 온갖 부주의한 행동을 일삼지만, 이 불완전한 자연스러움이야말로 완벽한 오트쿠튀르의 세계에 몸담아왔던 레이놀즈에겐 새로운 활력이다. 모든 것이 줄자로 재단한 듯 정교하고 섬세한 대니얼 데이 루이스의 연기에 반응하는 비키 크리엡스의 느슨하고 정제되지 않은 리액션, 이 기묘한 불협화음이야말로 <팬텀 스레드>의 진정한 묘미다. 비키 크리엡스의 연기를 두고 <뉴욕타임스>는 “모든 면에서 대니얼 데이 루이스에 필적할 만하다”라고 평했다.

베를린을 기점으로 활동 중인 올해 36살의 배우 비키 크리엡스는 <팬텀 스레드> 이전 주로 유럽에서 제작한 영화에 출연해왔다. <위대한 비밀>(2011)과 <한나>(2011), <모스트 원티드 맨>(2014)과 <콜로니아>(2015) 등이 그녀가 조연으로 출연한 작품이다. 룩셈부르크에서 태어나 취리히예술대학에서 드라마를 전공한 비키 크리엡스가 미국 감독 폴 토머스 앤더슨에게 발견된 건 그녀가 호텔 방에서 손님의 이야기를 엿듣는 하녀로 출연한 독일영화 <하녀 린>(2014) 덕분이었다. “인생의 모든 경험이 모험이라고 생각한다”는 그녀는 영화 속 알마처럼 “강한 의지를 지녔으며 고집이 세고 소리내 말하길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내게 룩셈부르크는 너무 작았다. 그래서 늘 어딘가에 있을 세계를 상상하곤 했다.” 현재 비키 크리엡스는 할리우드라는 새로운 정거장에 도착했다. 소설 <밀레니엄> 시리즈의 4권 <거미줄에 걸린 여자>의 동명 영화로 이어질 그녀의 여정은 어떤 모험이 될 지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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