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빛나는 배우들③] 시얼샤 로넌 - 낯선 땅에 도착한 여인
2018-03-14
글 : 장영엽 (편집장)
<레이디 버드>

누구에게나 그런 시절이 있을 것이다. 나는 왜 패션잡지 속 모델처럼 생기지 않았는지, 우리 집은 왜 저 그림 같은 집이 아닌지, 모두가 선망하는 저 애는 왜 나를 좋아하지 않는지 반문하던 나날들. 내게 선천적으로 주어진 모든 것들을 거부하고 언젠가 특별한 존재가 되고 말 거라고 다짐하던 순간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등에 노미네이트된 유일한 여성감독(그레타 거윅)의 영화 <레이디 버드>는 여기가 아닌 어딘가를 꿈꾸던 그 모든 순간들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그 중심에는 부모가 지어준 ‘크리스틴’이라는 이름을 거부하고 스스로 지은 이름, ‘레이디 버드’(시얼샤 로넌)로 불리길 원하는 한 소녀가 있다. 캘리포니아의 평범한 도시 새크라멘토에 살고 있는 그녀의 꿈은 ‘문화의 도시’ 뉴욕의 대학에 입학하는 것. 하지만 “철도 건너편 구린” 집에 살며 직장을 잃은 남편, 버클리대학을 졸업한 뒤 동네 마트에서 일하는 아들을 건사해야 하는 엄마에겐 딸의 꿈이 너무 벅차다. 그러거나 말거나, ‘레이디 버드’는 꿋꿋하게 자신의 갈 길을 가는 소녀다. “레이디 버드는 누군가가 자신을 바라봐주길 기다리지 않는다. 그녀는 자기 자신을 바로 보는 사람이다.” <레이디 버드>의 감독 그레타 거윅은 자신이 창조해낸 여자주인공의 특별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레이디 버드를 연기하는 미국 배우 시얼샤 로넌은 선망의 대상이거나 누군가의 스위트 하트인 10대 소녀가 아닌, 가장 보통의 존재로서의 10대 소녀를 설득력 있게 연기한다. 올해의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함께 오른 배우들이 맡은 캐릭터에 비해 강렬함이나 파격은 덜하지만 시얼샤 로넌의 ‘레이디 버드’는 관객 각자의 기억과 맞물려 가장 짙은 여운을 남길 인물이 아닌가 싶다.

흥미로운 점은 시얼샤 로넌이 ‘레이디 버드’처럼 평범한 학창 시절을 보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9살 무렵 배우 일을 시작한 그녀는 15살 되던 해 <어톤먼트>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고 20대 초반 <브루클린>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영화 현장이 학교보다 익숙했던 그녀에게 평범한 고등학생의 삶을 체험할 수 있는 방법은 드라마 <10대 마녀 사브리나>와 디즈니 채널의 <댓츠 소 레이번>을 보는 것이었다고. 그런데 또래로부터 늘 저만치 벗어나 있어야 했던 시얼샤 로넌의 삶은 곧 그녀가 연기한 영화 속 캐릭터의 모습이기도 한 것 같다. <한나>의 소녀 킬러와 뉴욕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브루클린>의 에일리스, 누군가에게 살해당했지만 떠나지 못하고 이승을 맴도는 <러블리 본즈>의 수지. 로넌이 연기하는 배우들은 대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거나 낯선 영역에 발을 디딘, 그 세계의 이방인들이었다. 그렇게 우리가 몸담고 있는 풍경을 달리 보이게 하거나 낯설게 느끼도록 만드는 신비로움이 아일랜드계 미국 배우 시얼샤 로넌의 매력이다. 25살에 이미 아카데미에 세번 노미네이트된 여배우가 된 그녀, 시얼샤 로넌의 신묘함을 공유할 수 있는 나날이 아직 우리에겐 많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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