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함을 연기한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가장 어려운 연기 중 하나가 일상의 얼굴을 극 속으로 끌어들이는 일이다. 대개 영화는 극적인 사건을 중심으로 얼개를 짜기 마련이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자연스레 바깥으로 밀려난다. 하지만 결국 가상의 세계인 영화가 현실을 마주보고 설 수 있도록 바닥을 다지는 건 바로 이와 같은 잉여의 시간들이다. 불가피하게 이 시간들을 상영시간 안에 끌어들이지 못할 때 영화는 종종 배우에게 기댄다. 어떤 배우들은 극중에서 매우 평범하고 무난한 역할을 수행하며 기꺼이 배경을 자처하지만 때로는 주인공보다 더 강렬하게 각인되어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올해 아카데미에서 이 일상의 얼굴을 가장 자주, 제대로 들이민 배우는 단연 마이클 스털버그다.
그런 의미에서 90회 아카데미를 대표할 배우를 한 사람만 꼽으라면 마이클 스털버그를 고르겠다. 마이클 스털버그는 올해 작품상에 오른 영화 중 무려 세편에 얼굴을 비췄다.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에서는 과학의 가치를 믿는 이중 스파이 호프스테틀러 박사 역을 맡았고, <더 포스트>에서는 <뉴욕타임스> 편집인 로젠탈 역을 맡아 짧지만 선명한 족적을 남겼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는 생애 첫사랑과 정체성의 흔들림을 겪는 소년 엘리오의 아버지 펄먼 역을 맡아 영화를 실질적으로 완성시킨다. 이쯤 되면 남우조연 부문에 왜 언급이 되지 않았는지 의아할 정도다. 동시에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기도 한다. 마이클 스털버그는 스스로 도드라지지 않는다. 대신 한발 비껴선 채 이야기와 현실을 잇는 다리 역할을 기꺼이 자청한다. 예컨대 <더 포스트>에서 <워싱턴포스트> 발행인 캐서린(메릴 스트립)과 얼핏 대립하는 듯 보이는 로젠탈은 결국 언론이라는 소명 아래 연대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대법원 판결을 마치고 법정에서 나올 때 언론(현실)의 스포라이트는 로젠탈에게 쏟아지지만 카메라(영화)가 따르는 건 캐서린의 걸음이다. 이 결정적 순간을 묘사하는 방식이야말로 영화와 현실의 차이이며 마이클 스털버그가 스스로의 평범함을 이용해 영화를 떠받치는 방식이다.
사실 이 비범한 연기에 평범함이라는 단어는 적절치 않다. 차라리 ‘자기만의 속도’라고 해두자. 마이클 스털버그가 맡은 역할들은 영화의 흐름에서 살짝 비껴나 자기만의 호흡을 지킨 채 극중 인물들을 가만히 지켜봐준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펄먼은 스스로의 불안을 내비치는 일 없이 엘리오를 가만히 기다려준다. 마치 관객처럼.
그리하여 영화의 막바지 펄먼의 현명한 조언이 흘러나올 때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엘리오는 물론 관객마저 가만히 다독인다. 펄먼의 그 대사로, 마이클 스털버그의 그 온화하고 속 깊은 눈빛으로 영화는 드디어 완성되는 것이다. 이 대사 하나만으로도 마이클 스털버그는 올해의 배우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는 어디에도 있지만 누구와도 닮지 않은 얼굴로 영화를 현실 속에 침투시키는 희귀한 배우다. 모두가 스스로 빛나는 별이 되길 바라는 할리우드에서는 특히 귀한 재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