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빛나는 배우들②] 앨리슨 재니 - 극단적이고 돌출된, 그리하여 돋보이는
2018-03-14
글 : 장영엽 (편집장)
<아이, 토냐>

“내가 혼자 다 해냈어요.”(I did it all by myself) <아이, 토냐>의 라보나 골든 역으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직후, 배우 앨리슨 재니가 외친 수상 소감은 올해의 시상식에서 들을 수 있었던 가장 후련하고 통쾌한 말 중 하나였다. 물론 누구에게나 수상의 기쁨을 나눠야 할 동료나 가족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생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라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쥐었다는 것, (비록 유머의 형식을 빌렸다고 해도)이 찬란한 성취의 달콤함을 가장 먼저 누릴 자격이 스스로에게 있음을 인정하는 앨리슨 재니의 태도는 당당하고 멋졌다. 어쩌면 올해의 아카데미에서 가장 쿨했던 앨리슨 재니의 수상 소감은 시상식 시즌을 거치며 진화를 거듭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아이, 토냐>로 그녀는 골든글로브와 영국 아카데미, 크리틱스 초이스와 스크린 액터스 길드의 여우조연상을 휩쓸었기 때문이다.

<설국열차>의 메이슨 총리가 떠오르는 큼지막한 안경과 산소호흡기, 모피 코트와 어깨에 올려놓은 앵무새. 앨리슨 재니가 연기하는 <아이, 토냐>의 라보나 골든은 만화에서 툭 튀어나온 것 같은 외모의 소유자다. 첫째로 놀라운 점은 그녀의 모습이 영화적 과장이 아니라는 것이며(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라보나 골든’을 검색하면 영화 속 모습과 거의 흡사한 그녀의 사진을 볼 수 있다), 그다음으로 놀라운 점은 라보나가 입을 여는 순간 그녀의 강렬한 겉모습은 모두 잊게 된다는 것이다. 라보나 골든은 미국 피겨 역사상 가장 유명한 악녀, 토냐 하딩의 엄마다. 누구보다 빨리 트리플 악셀에 성공한 재능 있는 선수였지만 폭력과 가난으로 비뚤어진 유년기를 보내야 했던 토냐 하딩의 일대기에서 라보나는 가장 짙고 어두운 그림자다. 딸에게 “등신 같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고, 폭력을 일삼으며, 모성애보다 돈을 선택하는 비정한 엄마의 초상을, 앨리슨 재니는 그 어떤 편견도 갖지 않고 완성해냈다. “그녀에게서 인간다움을 찾아보기란 어려웠다. 정말로 어려웠다. 하지만 난 그녀를 연민했다. 그녀는 (폭력과 가난이라는) 끔찍한 환경이 만들어낸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재니는 말한다. <아이, 토냐>에 자문으로 참여한 토냐 하딩과 달리 모녀의 연을 끊고 잠적한 라보나 골든의 행방은 아무도 알 수 없었고, 앨리슨 재니는 실존 인물이 직접 말해줄 수 없는 빈칸을 상상으로 채워 연기했다. 그런 그녀의 노력에 대한 가장 큰 찬사는 <아이, 토냐>를 관람한 토냐 하딩의 이 한마디였을 거다. “당신은 우리 엄마를 빼다박았어요.” 58살의 미국 배우 앨리슨 재니는 장르와 매체의 폭이 넓은 배우라는 평가를 들어왔다. 그녀는 백악관 대변인으로 분한 드라마 <웨스트 윙>으로 에미상을 네번 수상했고, 성차별주의자인 남자 상사에게 복수를 다짐하는 오피스우먼으로 출연한 뮤지컬 <나인 투 파이브>로 토니상 후보에 올랐으며, 영화 <아메리칸 뷰티>(1999)와 <디 아워스>(2002)의 인상적인 조연으로 각인되었다. 183cm에 이르는 장신은 앨리슨 재니 평생의 콤플렉스였지만 20여년 전부터 그녀는 큰 키가 자신만의 장점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나는 어떤 작품에서건 가장 똑똑한 여성이거나 항상 술에 취한 여성이었다. 극단적인 캐릭터가 내게 주어진 역할이었고, 나는 그 역할을 꽤 잘해냈다. 권위적이거나 완전히 미친 사람들. 나는 그들을 사랑한다.” 덜한 것이 더 좋은 것이라는 명제는, 적어도 앨리슨 재니에겐 예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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