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 버틀러 Ross Butler
“네가 외로움을 느끼기는 해?” 넷플릭스 드라마 <루머의 루머의 루머> 시즌1에서, 주인공 한나는 학급 동료 잭 뎀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서글서글한 성격과 우월한 신체 조건을 가진, 교내에서 가장 인기 많은 운동선수. 이것이 극중 잭 뎀시의 이미지다. 하지만 원하는 건 무엇이든 손에 넣을 수 있을 것 같던 잭의 단순하지 않은 내면을 풍성하게 담아내고 있다는 것이 이 드라마의 성취다. 그건 바로 배우 로스 버틀러(위 사진 왼쪽)의 안정적인 연기력 덕분이다.
1990년생으로 싱가포르에서 태어나 미국 버지니아에서 자란 로스 버틀러는 영국·네덜란드인의 피를 이어받은 아버지, 중국·말레이시아계 어머니를 두었다. 아시안계 미국 배우로서 그의 장점은 독보적인 피지컬이다. 너드와 무술인, IT 전문가 등 여전히 아시아계 배우들에게 주어지는 역할이 협소한 할리우드에서, 우월한 신체적 조건을 가진 로스 버틀러는 <루머의 루머의 루머> <리버데일> 등을 통해 백인 남자배우들의 전유물이었던 ‘운동선수 출신의 인기남’ 역할을 소화할 수 있는 보기 드문 배우로 평가받고 있다. “할리우드에 롤모델로 삼을 아시안계 남자배우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버틀러는 아시안 캐릭터에 한정하지 않고 더 넓은 범주의 오디션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차기작은 DC의 신작 슈퍼히어로영화 <샤잠!>이다. 메인스트림 영화 속 그의 활약상이 궁금해진다.
민디 캘링 Mindy Kaling
배우, 각본가, 프로듀서, 감독, 코미디언, 베스트셀러 작가…. 다재다능하다는 수식어는 이럴 때 써야 한다. 1978년생 인도계 미국 배우, 민디 캘링은 메이저 네트워크 방송사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드라마를 기획하고 그 쇼의 주연을 맡은 최초의 유색인종 여성이다. 그녀는 자신과 비슷한 모습의 유명인사를 미디어에서 접할 기회가 드문 미국의 젊은 아시아계 시청자들에게 성공적인 롤모델로 자리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2년, 민디 캘링은 친구 브렌다와 함께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배우 맷 데이먼과 벤 애플렉을 패러디한 공연 <맷 앤 벤>을 올렸는데, 이 작품이 그해 공연계에서 크게 히트하며 그녀는 주류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진입할 수 있었다. 지금의 민디 캘링을 있게 한 두편의 대표작은 미국 시트콤 <오피스>와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드라마 <민디 프로젝트>다. 이 두 작품을 통해 캘링은 속사포 같은 말투를 지닌, 누가 뭐래도 내 갈 길을 가는 ‘마이웨이’ 스타일의 현대 여성을 보여준다. 판타지와는 저 멀리 떨어져 있는 결함 많은 인물이지만, 민디 캘링의 연기는 이제까지 미국 대중문화가 간과해온 익숙한 여성들의 삶을 현실감 있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최근 판타지영화 <시간의 주름>, 하이스트 무비 <오션스8>에 출연하며 매체와 장르의 폭을 넓히고 있는 그녀의 행보가 어디까지 뻗어나갈지 주목해보자.
콘스탄스 우 Constance Wu
지금 현재 할리우드에서 가장 뜨거운 아시안계 미국 배우들을 떠올린다면, 36살의 대만계 미국 배우 콘스탄스 우의 이름은 그 목록의 가장 위쪽에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미국 엔터테인먼트 업계 역사상 20여년 만에 주요 출연진 대부분을 아시아계 배우들로 캐스팅해 화제가 된 두편의 작품, 시트콤 <프레시 오프 더 보트>와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스>의 주인공이 바로 그녀이기 때문이다. 수십년간 할리우드에서 아시아계 배우들이 맡는 역할이란 주로 “주인공의 베스트프렌드이거나 쿵후 전문가”였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극의 중심을 이끄는 아시아계 배우로서 콘스탄스 우의 존재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중요하다. 이 두 작품에서 그녀가 보여주는 모습은 미국 매체들이 부주의하게 묘사하곤 했던, 전형적인 아시안계 미국인의 모습에서 약간씩 비켜나 있다. <프레시 오프 더 보트>의 제시카는 낯선 플로리다의 지역사회에 하루빨리 적응하기 위해 잘 타지도 못하는 롤러 블레이드를 신고 동네 주부들과 어울리는 의지의 여성이다.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스>의 레이첼은 싱가포르 상위 1%에 속하는 남자친구의 부유하고도 보수적인 집안에 마냥 휘둘리지 않을 만큼의 지성과 기지를 갖춘 전문직 여성이다. 아시아의 문화와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두루 경험한 아시안계 미국 배우만이 표현할 수 있는 무엇을, 콘스탄스 우는 지속적으로 고민하며 다양한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할리우드를 강타한 미투(#MeToo) 운동과 화이트워싱 논란 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온 콘스탄스 우는 앞으로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삶을 다양한 관점으로 그리는 작품”에 적극적으로 힘을 보탤 예정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