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스>는 시작에 불과하다. 지금 할리우드에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스>의 성공에 힘입어 추진력을 얻어 진행 중이거나 그 이전부터 기획에 들어간 아시아계 배우 주연의 프로젝트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이중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2020년 3월 27일 개봉을 목표로 촬영 중인 <뮬란>이다. 디즈니가 <뮬란>의 실사영화 제작 계획을 발표했을 당시 캐스팅 과정에서 ‘화이트워싱’을 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온라인 청원이 올라와 서명자가 10만명을 넘어서기도 했는데, 1년간 5개 대륙에서 1천여명의 오디션을 거친 결과 중국 배우 유역비가 캐스팅되면서 우려를 불식시켰다. 그외에도 견자단, 이연걸, 공리 등 아시아의 대표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소니픽처스가 제작하는 애니메이션 <위시 드래곤>도 아시아 배우들을 전면에 내세운다. 천일야화 속 지니 이야기를 재해석한 이야기로, 콘스탄스 우, 성룡, 나타샤 리우 보디조, 지미 웡, 바비 리 등이 목소리 연기를 맡았다. 2019년 7월 북미와 중국에서 동시 개봉한다.
개봉예정인 슈퍼히어로물 곳곳에서도 아시아계 배우들을 발견할 수 있다. 먼저 오는 10월에 공개되는 <베놈>에는 파키스탄 혈통의 영국 배우 리즈 아메드를 만날 수 있다. 그가 연기하는 칼튼 드레이크 박사는 라이프 파운데이션의 리더이자 베놈의 숙적이다. 오는 12월 개봉예정인 <아쿠아맨>에서 아틀란티스 군대를 이끄는 수장 머크는 <파워레인저>에서 블랙레인저로 분했던 중국계 배우 루디 린이 맡아 연기한다. 중국계 영국 배우 제마 찬은 내년 4월 개봉예정인 <캡틴 마블>에서 원작 코믹스의 빌런이었던 크리족 유전학자 닥터 미네르바 역을 꿰찼다. 2019년 1월 개봉이 잡힌 <헬보이> 리부트판에는 한국계 배우 대니얼 대 김이 출연한다. 그가 연기하는 벤자민 다이미오는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분노하거나 고통스러울 때 재규어로 변하는 군인으로, 화이트워싱 논란으로 에드 스크레인이 자진 하차한 캐릭터다.
미국에 이민 온 대만계 미국인 가족 시트콤인 <프레시 오프 더 보트>의 뒤를 이을 드라마 프로젝트들도 있다. <NBC>는 <슬리피 할로우>의 작가 및 책임 프로듀서였던 앨버트 김, 린 픽처스의 댄 린 그리고 워너브러더스TV와 함께 제목 미정의 가족 드라마를 개발 중이다. 미국 내 자회사 진출을 앞둔 한국 기업의 CEO가 죽기 직전 상속자가 따로 있다고 고백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로, 가족 경영을 유지하는 삼성 등 다국적 재벌 기업이 모델이다. 현대판 <아나스타샤> 같은 드라마가 될 전망이며 앨버트 김이 직접 대본을 쓰고 있다. <ABC>는 비올라 데이비스와 줄리어스 테넌의 제작사 주비 프로덕션과 함께 드라마 <오하나>를 개발 중이다. 키아나 데이븐포트의 1994년 소설 <샤크 다이얼로그>를 각색한 작품으로, 카후나라고 알려진 미스터리한 할머니가 죽었을 때 재회하는 네명의 아시아계와 혼혈인 미국 여성들이 등장한다. 그간 하와이를 배경으로 한 많은 작품이 백인의 입장에서 그려진 것과 달리 하와이 원주민들과 아시아계 후손의 관점을 보여줄 예정이다. 앨버트 김에 따르면 아직 기사화되지 않은 프로젝트들이 더 존재한다고 한다. 앨버트 김은 8월 18일 자신의 트위터에 “지난주, 아시아계 배우들을 캐스팅한 두편의 파일럿 방송이 판매됐다”며 “자신은 아시아계 및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주요 배역으로 등장하는 케이블 방송 프로젝트를 세개 더 알고 있다. 그 일은 곧 진행될 것이다. 계기는 마련되었다”고 밝혔다. 그의 말대로 할리우드에서 아시아계 배우들이 더 중요한 역할로 자주 등장하는 ‘계기’들은 진즉 마련되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