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조 John Cho
“아시아계 미국인이 주연으로 캐스팅된 것은 할리우드에서는 혁명적 사건이었다.” <해롤드와 쿠마>(2004) 개봉 당시 존 조가 한 말이다. 한국계 미국 배우와 인도계 미국 배우를 투톱으로 기용해 흥행에 성공한 코미디영화 <해롤드와 쿠마>는 아시아계 미국 배우들의 가능성을 제시한 중요한 작품 중 하나다. 이후에도 존 조는 종종 ‘혁명적 사건’의 주인공이 됐다. 오디션을 거쳐 <스타트렉: 더 비기닝>(2009)에 1등 항해사 술루 역으로 승선한 일이나, 최근 2~3년 사이 백인 중심의 할리우드에 대한 비판이 계속될 때 아시아 배우도 블록버스터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의미로 전개된 SNS상의 캠페인 “존 조를 주연으로”(#StarringJohnCho)의 주인공이 된 일까지. 존 조는 아시아계 미국인의 긍정적 초상으로서 독보적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엔 제34회 선댄스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하며 화제를 모은, 한국계 미국인 가정에서 벌어진 실종사건을 그린 <서치>에 아빠 데이빗으로 출연해 ‘아시안 어거스트’(AsianAugust, 49쪽 기사 참조)에 일조했다. 차기작은 공포영화 <그루지>, 넷플릭스 드라마 <타이거테일>, 소니 애니메이션 <위시 드래곤>의 목소리 출연 등. 반갑게도 존 조의 활용법은 더욱 다채로워지고 있다.
켄 정 Ken Jeong
웃음을 선물하는 일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족보를 알 수 없는 댄스 실력과 알몸 시연을 마다하지 않으며 웃긴 놈(혹은 미친 놈)을 자처한 켄 정은 때로 웃음의 묘약을 선물하러 다니는 사람처럼 보인다. 데뷔 초 켄 정은 ‘미국에서 제일 웃긴 의사’로 소개되곤 했다. 한국계 미국인인 그는 명문 듀크대학에서 공부해 의사가 되지만, 코미디 쇼에 대한 애정을 숨길 수 없어 본업과 부업을 바꿔버린다. <행오버>(2009) 시리즈와 드라마 <커뮤니티>(2009~15)는 켄 정을 대체 불가의 코미디 배우로 만들었고, 시트콤 <닥터 켄>(2015~17)은 배우로서뿐만 아니라 기획자로서 켄 정의 능력을 재조명하게 만들었다. 켄 정은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시트콤으로 풀어내 <닥터 켄>의 제작자, 각본가, 배우로 활약했다. 최근엔 공연 도중 응급처치로 관객의 목숨을 살리는 일도 있었는데, 이제는 ‘미국에서 제일 웃긴 의사’가 아닌 ‘의사 면허를 지닌 코미디언 배우’로 소개되고 있다. <구스범스2> <보스 레벨> 등 차기작에서도 켄 정은 기꺼이 제 한몸 던질 준비를 하고 있다.
랜들 박 Randall Park
<앤트맨과 와스프>의 FBI 요원 지미 우의 임무는 가택 연금된 앤트맨을 감시하는 것. 하지만 결정적 순간엔 꼭 앤트맨보다 한발 늦어 앤트맨의 집 밖 활약을 돕는다. 지미 우의 인간적 면모는 랜들 박(왼쪽 사진 오른쪽)의 매력으로 치환됐고, 그의 마블 블록버스터 신고식은 성공적이었다. <앤트맨과 와스프> 이전에 랜들 박을 설명하는 단어에는 빠지지 않고 ‘김정은’이 등장했다. 김정은 암살을 소재로 한 코미디영화 <디 인터뷰>(2014)에서 특별한 분장도 없이 살을 찌운 것만으로 북한 최고 지도자와 흡사한 이미지를 창조해, 논란의 영화 속 논란의 캐릭터 덕을 톡톡히 봤다. 1990년대 미국에 정착한 대만 가족의 이야기인 시트콤 <프레시 오프 더 보트>(2015~18)로 대중적 인지도를 쌓기까지 긴 무명의 세월도 통과했다. 한국계 미국 배우로, UCLA에서 영문학과 문예창작을 공부하면서 학교 내 아시아계 미국인 극단을 설립해 작가로 활동하다 배우가 됐다. 최근엔 DC의 블록버스터에도 진출했다. <아쿠아맨>에서 해양학자 닥터 신 역을 맡아 <앤트맨과 와스프>에서 보여준 이미지와는 상반된 모습을 보여줄 예정이다. 평범함 속에서 비범함을 보여주는 랜들 박의 매력이 빛을 발하고 있다.
올리비아 문 Olivia Munn
올리비아 문은 중국계 베트남인 어머니와 영국과 독일 혈통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미국 오클라호마시티가 고향이고, 일본에서 생활한 적이 있으며, 오클라호마대학에서 저널리즘과 일본어를 공부했다. 배우가 되기 전 <폭스 스포츠>에서 인턴 기자로 활동한 경력도 있다. 동양적이면서 서구적인 흑발의 미녀인 올리비아 문은 건강미와 지성미를 어필하며 차츰 유명세를 얻기 시작했는데, 그 매력이 제대로 빛을 발한 작품이 드라마 <뉴스룸>(2012~14)이었다. <뉴스룸>이 배우 발견의 보고였듯, 올리비아 문 역시 경제 전문가이자 보조 앵커인 슬로언 새비스 역을 맡아 스마트한 커리어우먼의 모습을 멋지게 소화했다. <엑스맨: 아포칼립스>(2016)에선 텔레파시 능력과 검술 실력을 갖춘 사일록 캐릭터를 연기했다. 주로 커리어의 상승 곡선을 그려나가는 배우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블록버스터의 여전사’ 역할이 올리비아 문에게 주어졌던 것. 강인한 여전사의 이미지는 <더 프레데터>로 이어진다. <더 프레데터>에서 올리비아 문은 진화생물학자 케이시가 되어 무장한 남성들과 함께 외계의 빌런 프레데터에 맞선다. 그녀의 눈빛만큼 필모그래피도 점점 강렬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