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2017)은 여러 면에서 ‘기억’과 결부된 영화다. 아녜스 바르다와 사진작가 JR의 주된 작업은 기억을 붙이는 일이다. 두 작가는 포토 트럭을 타고 프랑스 여러 지역을 순회하며 주민들의 사진을 찍거나, 보관하고 있던 사진을 확대해 주민들의 자취와 숨결이 배인 건물들의 벽에 붙인다. 그들은 곧 철거될 광산촌의 마지막 주민인 자닌의 얼굴 사진을 집 정면에 도배해 그녀의 강인함을 아로새기고, 예전 광부들의 확대된 사진들 또한 나란히 부착하며 황량한 집들에 숨결을 불어넣는다. 사진을 부착하는 작업은 두 작가에겐, 지난한 삶을 견뎌낸 노동자들을 향한 경외감의 표시이며, 짧은 순간이지만 서로 맺게 된 우정에 대한 보답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의 터전에 그들의 존재 자체를 각인시키는 일이다. 허물어지고 사라질지라도, 바르다와 JR은 주민들이 살았던 장소에 사람들에 관한 기억을 되돌려 준다.
바르다와 JR은 시골의 작은 마을뿐 아니라 대규모 공장이나 항만을 찾아가 거대한 일터 한 길목에 노동자들의 모습을 새긴다. 특히 항만에서의 작업은 흥미롭다. 두 작가의 작업 방식은 보통 사진의 기존 프레임을 없애고 사람들의 윤곽만 오려 건물 벽에 붙이는 것으로, ‘그 사람들’의 자취가 배인 ‘그 장소’에 그들의 기억을 보관한다. 그런데 항만에서는 항만노동자들의 아내들 사진을 거대하게 확대해 쌓아 올린 컨테이너에 부착한다. 항만이란 공간의 특수성 때문이기도 했을 테지만, 압도적인 규모가 더욱 필요했었던 것 같다. 그들은 거대한 여성 토템을 만들어 남성들의 전유 노동 공간이라고 여기는 장소에 여성이 당당히 서있도록 한 것이다. 이는 바르다의 여성 운동가로서의 면모가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는 대목이다. 그러니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은 또한 아녜스 바르다의 기억을 담는 영화이기도 하다.
실은 바르다의 기억과 바르다에 관한 기억 때문에 이 영화를 보는 내도록 눈물을 참기 힘들다. 영화를 보는 동안 우리의 시선은 이 영화에 담긴 바르다의 모습 이외에 다른 시간 속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볼 수 있는 건 아니니 다른 시간 속으로 기억이 연장되어 간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바르다가 JR을 처음 만났을 때 선글라스를 벗지 않는 JR의 습관 때문에 그녀는 장 뤽 고다르를 떠올린다. 그는 바르다를 위해 영화에서 선글라스를 벗고 반짝이는 눈을 보여준 적이 있다. 우리는 고다르가 나오는 영화의 장면을 보며 고다르와 바르다의 우정을 기억해내지 않을 수 없다. 누벨바그의 기수들, 바르다가 사랑하고 그녀를 사랑했던 많은 이들이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가장 사랑했던 사람 자크 드미. 그는 오래전 세상을 떠났고 바르다는 <낭트의 자코>(1991)에서 쇠약해져 가는 그의 모습을 담았다. 바르다는 그럴 수만 있다면 세포 하나하나 담고 싶었던 것처럼, 그의 눈이며 손이며 주름진 살갗을 닿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서 카메라에 담았다.
그러니 JR이 바르다의 눈과 손과 발을 찍을 때 자크 드미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이제 바르다의 신체가 JR의 카메라에 찍힌다. 그리고 그녀를 세상으로 이끌었던 발과 세상 구석구석으로 요리조리 눈길을 돌리던 바르다의 눈이 찍힌 사진이 열차와 함께 떠나간다. 한 평생 고수하던 그녀의 헤어스타일은 변함이 없지만 머리가 하얗게 새기 시작한 지는 오래됐다. 그녀 스스로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죽음이 기다려지기까지 한다고 말하지만, 아직은 그녀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세계를 계속해서 보여주길 바라는 마음을 거둘 수 없다. 공적인 시간과 사적인 영역, 픽션과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넘나들며 세상의 간극을 더욱더 밝은 눈으로 볼 것을 유쾌하게 권유하던 감독의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은 아녜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과 아녜스 바르다를 사랑해 온 우리들의 얼굴이 만나는 장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