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평론가의 탄생을 축하하며 김소희, 송형국, 안시환 세 평론가에게 올여름 한국영화 세편에 대한 대담을 요청했다. 올해 초에 가졌던 <강철비> <신과 함께-죄와 벌> <1987> 대담에 이은 두 번째 이야기다. 한국영화의 흐름에 대한 담론은 멈추지 않는다.
-<인랑> <신과 함께-인과 연>(이하 <신과 함께>) <공작>으로 이어지는 여름 블록버스터 시즌이 끝났다. 올해 태풍들이 지나간 자리를 한번 되돌아본다면.
=송형국_ 태풍이란 표현이 어울릴까? (웃음) 지난해, 지지난해를 포함해도 ‘이 영화 죽인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 있었나 싶다. 그나마 이야기할 영화는 <버닝> 정도다. 습관처럼 한국영화의 위기를 이야기하지만 이제는 어디서 원인을 찾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제작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늘 새로운 걸 원한다고 하는데 평단과 언론에서 보기에 새로움은 아예 증발했다.
=안시환_ 일단 여름과 여름에 나온 영화들이 어울리는가를 먼저 거론하고 싶다. <신과 함께>를 제외하고 여름 시즌에 맞춘 기획영화가 있는가. 단순히 제작비가 크다는 것 말고는 여름 블록버스터라는 이름 붙일 이유를 찾을 수 없다. <인랑> <공작>의 경우 연출, 화법, 소재 모두 소위 말하는 여름영화와 어울리지 않는다. 단지 스타배우의 출연, 큰 제작비로 기획된 영화라는 이유로 여름에 배급하는 게 제대로 된 전략인가. 그걸 먼저 점검해야 할 것 같다. 지난겨울(2018년 1월. <씨네21> 1138호, ‘평론가 대담-<강철비> <신과 함께-죄와 벌> <1987> 어떻습니까?’)에 이 멤버가 모여서 대담을 했는데 그때 이야기 나눴던 영화들과 전혀 차이가 없다. 요컨대 기획과 배급에 전략이 부재한 것 아닌가 싶다.
송형국_ 동의한다. 이제 영화의 질을 논하기 이전에 배급의 차원에서 고민이 필요하다. 전체적으로 시장 크기를 고려하지 않은 치킨런 게임이 진행되는 것 같다. <공작>도 500만명 들었으면 꽤 흥행한건데 엄청난 수익을 안겨준 것은 아니다. 제작비 100억원 후반대의 영화가 지속적으로 쏟아져나오는 가운데 여름 시장 등 특정 시즌에 대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개별 작품을 논하기 이전에 그 부분부터 간단히 짚어보자. 최근 제작비의 상승을 보면 소위 말하는 대작 중심주의로 전환되고 있는 인상을 받는다. 100억원 후반대의 영화가 좁은 시기에 줄줄이 개봉 대기 중이다. 여름이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추석 시즌을 앞두고 100억원 후반대 한국영화가 같은 주에 세편이나 개봉한다.
송형국_ 이건 데이터를 잘 분석해야 하는데, <명량> <군도: 민란의 시대>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이 개봉했던 2014년을 시점으로 2015년 개봉했던 <암살>과 <베테랑>, 2016년의 <부산행> <덕혜옹주> <터널> 등 해마다 여름 시즌의 전체 관객수는 조금씩 증가해왔다. 이런 경험들을 토대로, 올해는 다 합해서 600억원 정도의 제작비가 같은 시즌에 집중된 거다. 손익분기가 되려면 어림잡아 1800만 관객, 단순 계산으로는 600만명씩 나눠야 하는 시장인데 몇년간 여름 시장이 크게 무너지지 않았던 경험만 보고 단순하게 제작비를 집중하는 습관이 이어지는 게 아닌가 싶다.
안시환_ 한 가지 더 보태면 여기에 한국만의 특수한 상황이 끼어든다. 과연 블록버스터의 실패를 감독이 져야 할까. 한국은 유독 감독의 권한이 프로듀서를 압도하는 경우가 있어 그런 인식이 이어지고 있는데, 사실 대규모 제작비가 투입되는 기획영화일 경우 감독보다 프로듀서가 중요하다. 감독의 욕망을 프로듀서가 얼마나 조율할 수 있는지가 핵심인데 한국에서는 이게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결과에 대한 책임도 온전히 감독에게 전가된다. 이런 현상은 전반적인 포지션의 문제로 이어진다. 제작비의 양극화가 뚜렷해지고 있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돌리는 느낌이다.
송형국_ 대표적으로 일본영화가 이런 양극화가 이어진 끝에 현재 산업 자체가 붕괴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우리도 그럴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생각한다.
감독의 인장이 더이상 작동하지 않는 시대가 왔다
-개별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매년 도돌이표처럼 한국영화의 질적 하향을 이야기한다. 진짜 그런가.
=김소희_ 모든 영화를 본 게 아니라서 개인적인 체험에 국한해서 이야기하겠다. 내 기준에서 비평을 쓰고 싶은 작품이 있었나를 자문해보면 아예 없진 않았다. 새로운 시도, 산업적 경향 등도 중요하지만 비평가로서 중요한 건 각자에게 어떤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영화들이다. 올해는 <버닝>이 그랬고, <공작>도 일정 부분 그런 면이 있었다. <마녀>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송형국_ 그럼에도 전반적으론 새롭진 않다는 게 내 생각이다. 최근 몇년 사이 끊임없이 실망스럽다. 2000년 초반까지 활약하던 감독들의 기세는 꺾이고 이를 이어받을 새로운 감독은 나오지 않는다. 그런 정체가 몇년째 이어지고 있고 올해가 고비인 것 같다.
안시환_ 기본적으로는 동의한다. 한편으로는 감독의 권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증가하고 있음을 느낀다. 2017년 <군함도>와 2018년 <인랑>이 좋은 예시다. 작품보다 작품을 둘러싼 상황이 이슈가 되고 있다. 류승완과 김지운은 2000년대 들어 한국영화를 이끈 감독이다. 두 감독의 공통점은 대중적, 비평적 지지가 공존했던 감독이라는 거다. 물론 평단의 부정적인 평가도 많았다. 평단의 지지가 무너졌을 때 이들을 이끌어준 건 대중적 지지였다. 그런데 버팀목이었던 대중적 지지가 거의 조소의 대상으로 바뀌었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내겐 일련의 현상이 일종의 가학적 쾌락으로서의 놀이처럼 보였다.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을 넘어, 깎아내리면서 발생하는 모종의 힘이 ‘우리가 너를 무너트릴 수 있어’라는 폭력적인 형태로 나타난 거다. 소위 말하는 ‘<리얼>급’이라는 조롱에는 권위의 해체를 넘어 작품을 훼손시키는 지경에 이르는 가학성이 묻어난다.
김소희_ 단순히 김지운 감독에 대한 공격이라기보다는 배우들의 발언과 부정적인 이미지가 기폭제가 되었다. 작은 걸 찾아내서 키우고 공격하는 과정들이 반복되는 사이 영화 자체에 대한 반감에서 영화를 만든 사람, 영화를 지지하는 관객으로 대상도 확산되어갔다. 나는 그게 꼭 김지운 감독에 대한 반감이라고 보진 않는다. 사실 김지운 감독이 누군지도 모르는 젊은 관객도 꽤 많을 거다. 그보다는 권위에 대한 반감에 가까워 보인다. 평단에서야 누가 영화를 만들었냐가 중요하지만 젊은 관객은 감독이 누구인지 전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좋게 말하면 영화 자체로 평가하는 거고 나쁘게 보면 역사나 연속성 같은 요소들이 더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송형국_ 동의한다. 김지운이냐 류승완이냐 하는 건 전문가들에게나 중요하지 댓글을 다는 관객에겐 별 상관없는 이야기다.
안시환_ 요컨대 누구의 영화인가를 더이상 따지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게 생각해야 할 지점 같다. 누구의 서명이나 인장도 필요 없는 시대, 말하자면 영화가 정말 상품이 되어버린 시대에 접어든 게 아닌가. <인랑>은 그 과정에서 나온 희생양 같다. <인랑> 자체가 저주받은 걸작이라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니다. 아니, 이건 걸작도 아니고 저주받지도 않았다. 하지만 <인랑>이 크게 흥행했다고 해도 이상하진 않을 것 같다. 이 영화는 분명 블록버스터의 요소들을 골고루 가지고 있다. 걸작도 아니고 김지운의 필모그래피 속에서도 빛나는 영화가 아니지만 이렇게 혹독한 평가 속에 사라질 영화는 아니다.
<인랑>은 재평가받을 수 있을까
송형국_ <인랑>이 실망스러웠던 입장에서 말하자면, 처음부터 끝까지 안 맞는 옷을 입고 있는 느낌이었다. 가장 큰 패착은 한국의 상황에 맞춰 각색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전반부 애니메이션과 짧은 프롤로그에서 설정을 전부 ‘설명’해버린 후 이후엔 그냥 퉁치고 진행된다. 특기대라는 집단의 설정도 한국적인 상황에 맞지 않고 인간 늑대가 짐승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도 비약이다. 프롤로그 애니메이션의 경우 약간 과장해서 상상한다면 남북회담 이후에 급조한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엉성하다.
김소희_ 매력 있는 배우들을 모아놨는데 반대로 캐릭터의 매력을 살리지 못했다. 인물이 메시지를 위한 도구로 소모되는 측면은 사실 모든 영화에 있기 마련이지만 <인랑>의 경우 전체적인 조율에서 실패했다. 배우들의 매력이 충분히 드러나기 전에 메시지를 ‘설명’ 해버린다. 결과적으로 현재 벌어지는 사건을 보고 있는 게 아니라 예전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기분이다. 오늘, 지금이라는 동시대성이 사라진 게 결정적 패착이 아닌가 싶다. 결과적으로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느껴져 이입하기가 힘들다.
안시환_ 남북 문제 등 한국 상황으로 변용한다는 걸 지나치게 의식해서 기계적으로 접근한 것 같다. 원작처럼 조직간의 암투 또는 정체성의 혼란쪽에 포커스를 맞춰도 충분히 설득력 있었을 텐데 이도 저도 아닌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이건 인간늑대들이 결정적인 순간에 늑대의 길을 선택해버리는 이야기다. 파토스도 거기서 발생하는데 김지운의 <인랑>에서는 거기에 집중하는 대신 멜로를 선택했다. 그럴 수는 있다. 하지만 그나마 멜로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원작은 원작대로 못 살리고 나름의 선택을 했는데 그마저 설득력을 잃은 셈이다. 몇몇 편집에서는 김지운 감독답지 않게 투박해서 만들다가 말았다는 느낌까지 받았다.
김소희_ 멜로는 엔딩을 위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보면서 <쉬리>(1999)가 생각났다. 멜로적 감성을 지닌 두 사람이 총구를 겨눴을 때의 파토스 같은. 그런데 <인랑>은 갑자기 정반대의 길로 가버린다. 멜로가 강조되는데도 오히려 색이 죽어버리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기존의 남북 관계 영화와 다른 길을 가고 싶었던 것 같은데 멜로면서 멜로가 아닌 이상한 결과물이 나왔다.
안시환_ 제일 뜬금없는 장면은 한상우(김무열)가 “네가 나하고 뭐가 달라?”라고 외치는 장면이었다. 원작에서 “왜”라고 하는 대사가 반복된다. 총을 쏘지 않는 행위가 늑대냐 인간이냐를 가르는 중요한 지점인데, 한상우를 스테레오타입의 악인으로 만들고 나서 그 대사만 뚝 떼어서 가져오니까 본의 아니게 조소가 터지는 거다. 맥락을 생략하고 기계적으로 옮겨왔을 때 일어나는 참사다.
-김지운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뒤져봐도 스토리텔링으로 칭찬받은 적은 별로 없다. 대신 이를 상쇄하고도 남을 비주얼텔링이 언제나 강점이었는데 이번에는 그런 부분에 대한 인정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왜 그럴까.
송형국_ 장면의 기술적 완성도가 딱히 떨어지지 않는데 그게 마음에 와닿는 건 별개의 문제다. 이전 영화들과 비교하면 설득력이 현저히 결여되어 있다.
김소희_ 가령 남산타워가 나오는 장면은 좋았다. 하지만 그것뿐, 영화 전체를 구원할 정도는 아니다. 전체적인 맥락에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조각으로 빛난다.
안시환_ 순간순간 빛나는 장면이 있긴 하다. 예를 들면 지하수로에서의 장면은 육중하게 다가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면 전반에 어떤 ‘정서’가 빠져 있다. 가령 <달콤한 인생>(2004)에는 장 피에르 멜빌 영화가 떠오르는 세련되고 묵직한 감성이 깔려 있다. 그게 비주얼과 맞아떨어질 때 정서적으로 작동하는 거다. 이번에는 강동원을 활용했지만 실패했다.
송형국_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의 욕심이 보이는 부분은 있다.
김소희_ 마지막에 경의선을 타고 달리는 장면은 만주 벌판이라는 상상의 공간을 실현 가능한 공간으로 바꾼다. 희망일지 절망일지 불확실하지만 끝내 거기로 가야 한다는 의지랄까.
안시환_ 김지운의 영화 중에 이렇게 끝나는 영화는 없었다. 이상한 타협이다. 자신이 그동안 보여줬던 고집을 버리고 상업적으로 이렇게 가야 한다는 결정을 내린 것 같다. 어떻게 보면 김지운답지 않는 결정인데 기획영화로서 그게 어울린다는 판단을 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프로젝트에 따라 이런 타협은 필요하다고 본다. 다만 이번 경우엔 그렇게 하면서 살려야 했을 부분을 살리지 못한 게 뼈 아프다.
-이창동 감독의 <버닝>의 흥행 실패에 이어 <인랑>도 실패하면서 2000년 중반 한국영화를 이끌던 세대들이 이제 그 활력과 영향력을 완전히 잃어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다.
안시환_ <버닝>과 <인랑>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버닝>은 지엽적인 문제가 작품 전체를 훼손했기 때문에 묻히기엔 너무 아까운 영화였다. 반면 <인랑>은 결이 다르다. 90만 관객에 그칠 영화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재평가를 받을 것 같지도 않다. 냉정하게, 김지운에 대해서는 작가주의라기보다는 하나의 상품 브랜드로서 이야기해 왔다고 생각한다. <인랑>은 김지운이라는 브랜드가 다소 타격을 입은 정도다. 그동안 평단의 지지보다 더 크게 대중적 지지로 유지되던 것이 이번에 타격을 입은 거다. 공통점이 있다면 예전에는 이름이 알려진 감독의 영화가 나오면 보려는 기대심리가 있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왜 그걸 보냐’는 식으로 반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장르의 부정적 효과를 보는 것 같다.
김소희_ <버닝>은 분명한 지지를 보낸 평자들이 많았고 비평적으로 크게 외면받지는 않았던 것 같다. 반면 <인랑>은 애초에 공격의 크기가 너무 거대해 평가가 불가능한 상태였다고 생각한다.
송형국_ 아직 섣불리 판단을 내릴 순 없지만 이제 누구 작품이냐가 중요하지 않은 시대가 된 것 같다. 브랜드가 통하지 않는 시대랄까. 그나마 남아 있는 건 봉준호 정도 아닐까.
안시환_ 또 하나 거론하고 싶은 게 <버닝>에 대한 담론이 충분했느냐는 점이다.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좋아하면 좋아하는 대로 싫어하면 싫어하는 대로 좀더 이야기가 나왔어야 했다. 내겐 <버닝> 자체보다 평단의 둔감함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미적지근한 상태에서 다들 침묵해버린 게 아닌가 싶다.
송형국_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은데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막힌 상태가 아니었을까. 실체, 실제에 도달하기 위해 애쓴 영화라고 생각한다. 평론의 입장뿐 아니라 시인, 과학자, 감독 등 진리에 도달하는 여러 갈래 길에서 각자가 언어로 풀어줬으면 했던 영화다. 여전히 더 많이 이야기가 필요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김소희_ 그게 꼭 평단의 책임은 아니라고 본다. 평단과 관객이 함께 호흡을 해야 진행될 수 있는데 <버닝>은 이쪽 아니면 저쪽, 적극적 옹호 혹은 시대착오적 꼰대라는 이분법의 함정에 빠져서 이야기의 장 자체가 사라져버린 게 아닐까 싶다.
안시환_ 개인적으로 그런 침묵을 깨고 장을 만드는 게 평단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지금 <씨네21>에 바라는 점도 그런 거다. 영화비평 지면이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여러 영화들을 소개하고 있지만 비평의 연속성을 이어가기 힘든 측면이 있다.
<공작>과 <신과 함께>, 기획영화의 두 갈림길에서
-윤종빈 감독의 <공작>은 세편의 여름 블록버스터 중 평단과 흥행, 양쪽에서 가장 안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안시환_ 기존의 남북 문제를 다뤘던 영화와 완전 궤를 달리하는 수작이라 생각한다. 사건보다 인물의 행적에 집중한다는 측면에서 남북영화라기보다는 앨런 J. 파큘라 감독의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1976)이나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조디악>(2007)이 떠올랐다. 아쉬움이 있다면 굳이 여름 시즌에 개봉했다는 거다. (웃음) 다른 시기에 개봉했다면 좀더 확장되거나 반대로 좁고 깊게 파고들 여지가 있었던 소재였다.
송형국_ 윤종빈 감독의 영화 중 굳이 순위를 따지면 앞쪽은 아니다. 그럼에도 남북 관계 영화 중에 이런 접근은 없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 관습적인 서사와 낡은 이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갈등의 핵심은 인물들의 자가당착이라고 본다. 가령 조진웅이 맡은 최학성의 경우 국가를 위해 공작도 해야 하고 대선에서도 이겨야 하는데 둘 사이에서 자가당착에 빠진다. 김영진 평론가가 <씨네21> 지난 1171호 영화비평(‘<인랑>과 <공작>, 실패의 결말, 성공의 궤적’)에서 언급했듯 90년대의 애매모호한 시대 분위기와 맞아 떨어지는 발상이다. 겉으론 민주화가 됐지만 속까지 민주화가 되지 않은, 시대적 불일치가 첩보물의 긴장과 잘 결합되었다.
김소희_ 앞서 <인랑>을 이야기할 때 정서를 언급했는데, <공작>이야말로 특정 정서, 시대의 공기가 성공적으로 작품에서 뿜어져 나오게 만든 영화다. <버닝>도 그랬고, 영화에서 정서적 요소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실감했다. <공작>의 경우 디테일, 사소한 물건들에서 정서가 출발한다. 예를 들면 롤렉스 시계, 넥타이핀, 안경을 들어올리는 동작 등등. 시대를 보여주면서도 자신을 숨기는 장면들이 체제와 이념을 넘어 특정한 무드로 표현되었다. 정리하면 자본주의랄까. 그런 점에서 영화 속 광고가 매우 중요하게 작동한다. 어떤 면에서 이 영화 자체가 스스로 하나의 광고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떤 걸 보여주는가보다 어떻게 보여지는가가 중요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시환_ 전반적으로 클래시컬하다. 윤종빈 감독은 고전적 연출을 가장 잘 살리는 감독 중 한명이다. 고집도 있다. 블록버스터에서 얼굴 중심으로 촬영하는 게 위험할 수도 있는데 이 영화는 클로즈업을 특히 잘 살렸다. 인물에 다가가는 방식이 고전적이다. 그런 경향을 초기작부터 꾸준히 지켜오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용서받지 못한 자>(2005)를 찍을 때랑 100억원 넘는 예산의 영화들을 찍을 때는 태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 사실 과거의 정서를 유지한다는 게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윤종빈 감독은 변화하는 가운데 핵심만큼은 놓치지 않고 있다고 본다.
송형국_ 블록버스터인데도 얼굴을 중시해줘서 좋았다. CG라는 새로운 기계복제시대에 예술의 고유성을 지켜낼 수 있는 자리는 인물의 얼굴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많은 것을 전해주는 것도 없다. 다만 배우들의 연기는 아쉬웠다. 황정민, 주지훈, 조진웅은 물론 연기를 잘하는 배우지만 이젠 캐릭터 그 자체보다 배우가 먼저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신과 함께>는 지난해 겨울에 이어 2부작으로 기획됐다. 여름 블록버스터, 기획영화라는 타이틀에 가장 어울리는 영화다.
안시환_ 반대로 말하면 비평적으로 이야기할 거리가 없는 영화이기도 하다. 윤종빈 감독의 경우 기본적으로 현실에 순응하는 인물들을 그린다. 딱 한번 벽에 부딪치고 되돌아오는 인물들, 예컨대 현실순응적인 아버지가 세상을 어떻게 버텨왔는가가 핵심이다. 때문에 박훈정 감독만큼이나 여성을 잘 못 그리는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영화에서 여성은 늘 기능적이다. 여성을 전면에 내세웠던 <비스티 보이즈>(2008)가 납득이 잘 안 됐던 이유도 여기 있다. 그런 측면에서 김용화 감독은 가장 현실적으로 대중의 기호를 잘 읽어내는 감독이다. 역설적이지만 애초에 모든 캐릭터가 기능적이라 논란의 여지도 적다. 1편에서 신파를 밀어붙여 승부를 보는 것도 기획 영화로서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 본다. 2편에서는 과거의 사연을 묶어낸다는 컨셉으로 밀어붙였는데 미흡함이 있지만 하이컨셉만큼은 확실히 부여잡고 간다는 측면에서 상업영화감독, 특히 기획자로서의 재능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김소희_ 기본적으로 말로 다 풀어나간다. 의외로 스펙터클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설명하는 영화였다. 이쪽이 진짜 구강액션을 펼친다. (웃음) 1편은 비주얼을 보는 생경함이라도 있었는데, 이번에는 시대 재현도 클리셰 가득한 설정이었고 이야기를 나열하다보니 지루한 면이 많았다. 그나마 반전도 예측 가능한 기계적 배치들이고. 그게 나쁘다는 가치판단의 문제가 아니다. 비평의 언어를 바라는 영화도 아니라서 솔직히 딱히 할 이야기가 없다. 어쩌면 그게 이 영화가 잘될 수 있었던 핵심이 아닐까.
송형국_ 내적 분석 대신 외적인 이야기를 좀 하자면 한국영화에서 CG가 어떤 의미인지 자문하게 됐다. 이제 어느 정도 티가 나지 않는 수준에 이른 것 같긴 한데 디테일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전편 <신과 함께-죄와 벌>(2017)에서 창조한 저승을 처음 볼 때야 신기할 수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CG에 대한 피로감이 커져 있는 상황에서 여전히 신기함을 보여주는 것 이상의 리얼리티가 없다. 특히 뭉개고 넘어가는 장면이 많아 아쉽다. 이건 이제 테크닉의 문제라기보다는 제작 관점의 문제가 아닐까. 볼거리로서의 즐거움 다음을 생각할 시기가 왔다고 본다. 한국영화라는 이유로 신기한 걸 보여주는 데 만족하고 장면의 디테일을 채우지 못하는 걸 너그럽게 용인해줄 수 있는 시기는 지났다.
안시환_ CG의 아쉬움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동의한다. 아직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긴장을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는 상황에서도 CG에 발목 잡혀 스펙터클의 전시에 매몰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건 비단 <신과 함께>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지만 <신과 함께>는 이 점을 압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여전히 담론의 장이 필요하다
-그 밖에 상반기 한국영화 중에 꼭 언급하고 싶은 영화가 있다면.
김소희_ <공작>에서 배우가 캐릭터를 가리는 지점, <인랑>에서 정서가 부재하는 면과 비교해서 <마녀>를 언급하고 싶다. 배우 김다미의 존재감은 <박쥐>(2008)의 김옥빈을 연상시켰다. 캐릭터가 상황 자체를 즐기고 있는 게 느껴지는데 그게 배우랑 섞여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정병길 감독의 <악녀>(2017)가 시도했던 것과 비교하면 그 차이가 명확하다. <마녀>를 보면서는 기술과 캐릭터가 절묘하게 결합되었을 때 피어나는 불꽃 같은 활력을 느꼈다. 한편으론 이 정도의 비약적인 상상력을 다룬 영화가 아니면 좋은 여성 캐릭터가 나오기 힘든 건가 하는 생각에 씁쓸하기도 했다.
안시환_ 나는 <마녀>가 서사적으로 실패라고 생각했었다. 인물이 가진 복합적인 상황과 딜레마들을 그냥 뭉개고 밀어붙인다고 해야 할까. 순간적인 상황에만 반응하는 캐릭터가 불균질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김소희 평론가의 말을 듣고 나니 그 지점들을 일종의 스파크처럼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즐긴다’는 표현이 흥미롭다.
김소희_ 캐릭터가 반드시 서사에 복속하거나 기능하는 게 아니라 자신만만하게 쭉 뿜어져나오는 느낌이 있다. 배우의 힘이기도 하고 상황의 결과이기도 한데. 두루뭉술하게밖에 표현 못하겠다. (웃음)
안시환_ 심리적으로 망설여야 하는 순간에 고민 없이 치고 나가서 도리어 해방감을 느낄 수도 있겠다. 길티 플레저 같은 느낌이랄까. 에너지는 확실히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마녀>는 소수지만 확실히 충성도 높은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한편으론 영화 전체를 볼 때보다 유튜브 등에서 특정 시퀀스를 조각내서 볼 때 더 반응이 좋은 것 같다. 하나의 맥락보다 장면의 쾌감을 중시한다고 해야 할까. 젊은 관객과 일대일로 등치시킬 순 없겠지만 유튜브, 넷플릭스 같은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시대에 걸맞은 어떤 감각이 있는 것도 같다.
안시환_ <마녀>에 대해 생각하지 못한 지점을 발견하고 돌아간다. 비평 글로도 이런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자리가 좀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이후는 <씨네21>의 몫이다. (웃음)
송형국_ 블록버스터영화에 대한 대담을 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평론가와 대중의 괴리는 언제나 존재한다. 평단과 언론은 그 나름의 기능이 있으니 그 간극을 구태여 좁힐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다만 담론의 장은 언제나 부싯돌의 역할로서 필요하다. 그게 구태여 여름 블록버스터를 두고 이렇게 모여 하나 마나 한 이야기를 나누는 이유가 아닐까. (웃음)
-어쩌면 하나 마나 한 이야기를 끝내 하고야 만다는 게 비평의 본질일 수도 있을 것이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