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씨네21 추천도서 <메리 수를 죽이고>
2018-12-18
글 : 이다혜
사진 : 오계옥
<메리 수를 죽이고> 오쓰이치, 나카타 에이이치, 야마시로 아사코, 에치젠 마타로 지음 / 김선영 옮김 / 비채 펴냄

‘메리 수’라는 용어가 있다. 드라마 <스타트렉>에서 유래한 용어로, 2차 창작을 하는 작가들이 자기 소망을 투영한 오리지널 캐릭터를 그렇게 부른다. 자기의 분신 같은 인물을 자기가 좋아하는 작품의 주인공들과 어울리게 하고 그들의 사랑을 받게 하는 것이다, 노골적으로. 당연히 그 과정에서 원작의 설정이 뒤틀리기도 하고, 읽는 쪽에서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작가의 자기애가 흘러넘치는 광경이 펼쳐진다. 나카타 에이이치의 <메리 수 죽이기>는 2차 창작을 하던 여자 고등학생이 주인공이다. 기사라기 루카라는 펜네임으로 제법 인기를 끌게 되지만, 어느 날 작품 속의 메리 수에 대한 지적을 받은 뒤 고민이 시작된다. 도무지 메리 수를 없애기 어렵다는 결론에 다다르자, 아예 메리 수에게 원하는 걸 현실 세계의 자신이 실현시키기로 마음먹는다. 욕망을 투영할 대상을 자기 자신으로 삼기로. 그리고 현실의 자신이 사랑받게 되자 창작으로부터 멀어진다. <메리 수 죽이기>는 창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재치 있는 소설이다. 나카타 에이이치의 또 다른 소설 <소년 무나카타와 만년필 사건>은 만년필 도난사건을 풀어내는 무나카타의 활약을 그린 단편. 오쓰이치의 <염소자리 친구>는 이와이 지의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을 연상시키는, 학교폭력으로부터 시작하는 이야기다. 야마시로 아사코의 <트랜스시버>는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으로 아내와 아들이 실종된 남성을 주인공으로 한다. 목소리 송수신이 가능한 장난감인 트랜스시버를 가지고 놀던 세살 아들은 말이 능숙하지 못해 말하는 단어가 제한적이었다. 아내와 아들이 떠난 뒤 술에 빠져 살던 그는 어느 날 아들이 가지고 놀던 트랜스시버를 통해 아들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전개는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지만, 슬픔이 옅어지지는 않는다. 여러 작가의 단편을 모은 단편집 <메리 수를 죽이고>에는 미스터리와 판타지가 섞인 개성 있는 작품들이 실려 있다.

소망

메리 수는 소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작품 세계에 나타난다. 그러니까 내가 더 바라지 않으면 된다. 현실 세계에서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을 집필로 채우는 게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 똑같이 채운다. 성공하면 나는 보다 순수하게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다. 메리 수를 뿌리뽑고 죽이기 위한 방법. 그것은 굼뜨고 호빵 같은 나라는 인간을 지우는 일이었다.(<메리 수 죽이기>, 19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