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추석에 친구들과의 메신저방에서 가장 뜨겁게 공유된 글이 김영민 교수의 칼럼이었다. 칼럼의 제목은 ‘추석이란 무엇인가’였다. 명절에 오랜만에 만난 친척이 당신의 미래에 대해 집요하게 물어온다면 도리어 그들에게 근본적 질문을 하라는 내용이었다. “너 취직 언제 할 거니?”라고 묻는 친척에게 “당숙이란 무엇인가요?”라 되묻고 “결혼 언제 할거냐?”고 묻는 엄마에게는 “결혼이란 무엇인가요?”라고 반문하라는 것이다. 이 칼럼의 마지막 문장은 이러하다. 칼럼이란 무엇인가. 이쯤되면 가늠이 되겠지만 이 글의 8할은 우아한 농담으로 이루어져 있다. 김영민 교수의 에세이집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는 신문에 연재한 글을 모은 책이다. 교수님들이 신문에 쓴 칼럼을 그다지 즐겨 읽지 않지만 글쓴이가 김영민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는 가르치려들지 않고, 글에 특별한 교훈을 넣어 우매한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겠다는 강박도 없다. 책의 제목만 보면 비관주의자의 선언처럼 읽힐 수도 있지만 그는 시시한 것의 힘을 믿을 뿐이다. 특히 새해에 ‘행복’의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는 부분에서 크게 공감했다. “오래 지속될 수 없는 것을 바라다 보면 그 덧없음으로 말미암아 사람은 쉽게 불행해진다. 따라서 나는 차라리 소소한 근심을 누리며 살기를 원한다. 이를테면 ‘왜 만화 연재가 늦어지는 거지’, ‘왜 디저트가 맛이 없지’라고 근심하기를 바란다. 내가 이런 근심을 누린다는 것은 이 근심을 압도할 큰 근심이 없다는 것이며 따라서 나는 이 작은 근심들을 통해 내가 불행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친구를 만나서, 제자와 함께, 또는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고 여행을 가서, 그가 보고 느낀 것들은 대개 평범하고 소소한 것들이고, 그 소소함이 공감을 자아낸다. 커다란 근심에 압사되지 않고 작은 고민들로 일상을 채워나가는 저자의 책을 연말에 만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시시한, 그러나 소중한
역사상 가장 뛰어난 권투 선수 중 한 사람이었던 마크 타이슨은 이렇게 말했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 사람들은 대개 그럴싸한 기대를 가지고 한해를 시작하지만, 곧 그 모든 것들이 얼마나 무력하게 무너지는지 깨닫게 된다. 링에 오를 때는 맞을 것을 각오해야 한다. 따라서 나는 새해에 행복해지겠다는 계획 같은 건 없다.(2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