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몬드> <서른의 반격>을 쓴 손원평 작가의 장편 연출 데뷔작인 <도터>(가제)의 시나리오 표지에는 ‘언제든, 당신에게도 올 수 있는 사람’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해석하기에 따라 멜로드라마 속 운명의 상대로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도터>(가제)는 이 문구를 미스터리 스릴러로 접근하는 영화다. 잃어버린 딸을 되찾은 가족이 겪게 되는 갑작스럽고 낯선 일상의 변화 속에는 말 그대로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근원적인 공포와 비밀이 숨겨져 있을지 모른다. <인간적으로 정이 안 가는 인간>(2005), <두 유 리멤버 미 3D>(2012) 등의 단편으로 주목받은 뒤 한동안 소설가로 대중과 만났던 손원평 감독은 배우 캐스팅과 함께 본격적인 제작 준비에 돌입했다.
-2018년 초 <씨네21>과 가진 인터뷰에서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와 연애소설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당시 준비 중이라고 언급했던 독보적인 여자 캐릭터가 주인공인 미스터리 스릴러가 바로 <도터>(가제)다. 그리고 문학잡지 <악스트>에 <일종의 연애소설>을 연재 중이다. 두 작품을 병행하면서 지난 한해를 바쁘게 지냈다.
-‘딸’을 지칭하는 영어 제목 <도터>(가제)가 의미하는 바부터 짚어보자.
=아직 확정한 제목은 아니지만 대안으로 마음에 드는 제목도 없어서. 뜻을 잘못 알아듣고 도 닦는 터를 이야기하느냐는 사람도 있었다. (웃음) 잃어버렸던 딸이 돌아오면서 가족 내에서 일어나는 미스터리이기에 ‘딸’이라고 지었다.
-어떤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쓰게 된 시나리오인가.
=잃어버렸던 아이가 돌아와서 가족에 잘 흡수되지 못하고 낯설게만 느껴지는, 낯선 존재가 가족이란 이름으로 돌아왔을 때의 긴장감을 시나리오에 담고 싶었다. 소설 <아몬드>를 쓸 때 생각해놨던 아이템인데, 마침 <아몬드>에도 잃어버렸다가 가족의 기대와 다르게 돌아오는 남자아이가 등장한다. 아이를 낳으면서 관심을 갖게 된 테마인데 소설에서는 부모의 마음으로 미래를 내다보는 방식으로 풀었고, 영화에서는 미스터리하게 풀어내려 한다.
-기획 당시에는 완성된 시나리오와 다른 점이 있었나.
=미스터리라는 장르, 어른이 되어 돌아와서 위협을 준다는 테마 정도만 공통적이었다. 처음에는 엄마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아들이 돌아오는 이야기를 구상하기도 했고, 지금과는 반대로 딸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아들이 돌아오는 구성을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딸로 바꿔 1년 정도 시나리오를 더 개발했다.
-최종적으로 잃어버렸다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아이의 성별을 딸로 결정한 배경은 무엇인가.
=미스터리한 캐릭터, 다른 작품에서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인물 구도가 주는 새로움, 긴장감을 담고 싶었다.
-아내와 사별한 남자가 잃어버린 줄 알았던 동생을 찾게 되는데, 어른의 상실감 내지 트라우마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은 걸까.
=낯선 존재를 맞닥뜨리는 상황을 만들다보니 트라우마를 설정했을 뿐 일부러 그런 의도로 캐릭터를 디자인하지는 않았다. 시나리오를 쓸 때 평론가들이 해석할 여지를 기획하며 쓰지는 않는다. 내가 주목한 것은 트라우마 자체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 입장에서 인물을 그릴 때 현재의 인물이 유아기나 아동기에 자신이 겪었던 경험이 어떻게 반영되는지를 궁금해하긴 했다. 우리가 부모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고 살았는지가 중요하다고 보는데 <아몬드>에도 그런 생각이 반영되어 있다. <도터>(가제)에서 트라우마보다 더 주목하고 싶은 것은 가족이라는 개념이다. 가족의 가치가 퇴색돼간다고는 하지만 누구에게나 가족사가 있고 또 그것이 누구에게나 특별한 역사가 되듯이 보편적이면서도 특수한 가족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장르적인 방향이나 스타일에 있어 비슷한 소재나 레퍼런스로 삼은 영화가 있을까.
=할리우드영화 중에는 홈 스릴러, 즉 외부의 누군가에 의해 우리 집이 위험해진다는 테마의 <오펀: 천사의 비밀>(2009), <스텝파더>(2009), <요람을 흔드는 손>(1992) 같은 영화들이 있다. 한국영화 중에는 그런 구도의 영화가 별로 없다고 여겨져 흥미가 생겼다. 장르적 틀 안에서 이 일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현실감을 주면서 미스터리를 유지할 수 있는,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 시작했다.
-대부분 일상적인 공간에서 사건이 전개되다 보니 장르적인 긴장감을 어떻게 표현할지가 궁금하다.
=바로 그러한 일상적인 공간의 작은 비틀림만으로도 일상이 생경해지는, 그런 긴장감을 묘사해보고 싶다.
-김무열, 송지효 배우가 남매로 캐스팅됐다.
=김무열 배우는 옆에서 지켜보고 있으면 배우로서 어떤 조급함도 없는, 평생 연기만 하기를 꿈꾸는 마인드가 스스로의 연기를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배우라는 생각이 든다. 그가 맡은 역할은 아이를 가진 부모이면서 비밀을 파헤치려는 인물이기에 관객이 그에게 보편적으로 감정이입할 수 있을 것 같다. 감정의 스펙트럼이 일상적이지만 그래서 더 어려운 연기를 보여줘야 한다. 송지효 배우는 최근에 출연 중인 예능 프로그램에서의 이미지가 각인된 것 같은데 아마 <도터>(가제)에서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녀의 데뷔작이 <여고괴담 세번째 이야기: 여우계단>(2003)이었는데 가만 보면 은근히 그늘진 모습을 표현할 수 있는 마스크를 지녔다. 그런 비밀스러운 면모를 더 끌어올려 보려고 한다. 본인도 그런 면에서 기대하고 있다. 목표가 있다면 이 영화를 통해 주연배우뿐만 아니라 조연·단역배우들까지도 새로운 모습으로 보여졌으면 한다.
-현재 영화의 제작 진행 상황은 어떤 단계인가.
=주연인 김무열, 송지효 배우의 캐스팅을 완료했고, 조연배우 오디션을 보는 중이다. 콘티 작업을 하면서 시나리오 수정을 약간 하고 있고. 2월 초에 크랭크인하려고 준비 중이다.
<도터>(가제)
감독 손원평 / 출연 김무열, 송지효, 예수정, 최상훈 / 제작 BA엔터테인먼트 / 배급 에이스메이커 / 개봉 2019년
● 시놉시스_ 유망한 건축가 서진(김무열)은 30년 만에 잃어버린 여동생 유진(송지효)을 찾았다는 연락을 받는다. 기적처럼 찾은 딸을 보며 기뻐하는 부모와 달리 서진은 유진이 낯설기만 하다. 그러는 사이 유진은 아무 위화감 없이 가족들을 서서히 장악해나간다.
● 독보적인 여성 캐릭터를 꿈꾼다_ 손원평 감독은 <도터>(가제)를 통해 “독특하면서도 독보적인 여성 캐릭터”를 만날 수 있고, 또 “이상한 여자로 인한 남녀의 대결 구도”를 볼 수 있으며, “일상적인 공간 안에서의 생경함을 통해 전해질 미스터리”에 빠져들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