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2019년 한국영화⑯] <엑시트> 이상근 감독 - 작은 능력으로 재난에 대처하는 웃음을 잃지 않는 자세
2019-01-09
글 : 김성훈
사진 : 백종헌

이상근 감독은 인터뷰 내내 자신의 상업영화 데뷔작인 <엑시트>가 “보통 재난영화와 다르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 말은 재난영화의 공식을 답습하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과감하게 했다는 뜻으로 들린다. 스무고개처럼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가 던져준 힌트를 종합해보면 주인공 용남(조정석)과 의주(윤아)는 불청객 같은 정체불명의 유독가스를 피해 어느 날 밤부터 그다음 날 아침까지 하룻밤 사이 쉴 새 없이 도망쳐야 하는 상황이고, 그 상황만으로도 충분한 속도감과 오락적인 재미를 줄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류승완 감독이 연출한 영화 <다찌마와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2007)의 조감독 출신인 이상근 감독은 “장르의 틀 안에서 새로움을 끊임없이 찾아내 보여주는 감독이 되고 싶다”고 신예다운 패기를 드러냈다.

-제목만 보면 액션영화나 재난영화 같은데.

=원래 제목과 사건이 다른 시나리오를 작업하다가 외유내강으로 가지고 오면서 플롯과 캐릭터 그리고 사건이 완전히 바뀌었고, 이야기가 확장되면서 새로운 영화가 되었다. 사건은 달라졌지만 역시 가족을 재난 장르로 풀어나가는 이야기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공통적인건 재난영화를 비틀어보려 시도했다는 사실이다.

-평소 생각하던 보통 재난영화는 어떤 영화인가.

=인물의 역할만으로 보면 사건 내부 사람들은 구조를 요청하고 외부 사람들은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나. 단순한 역할 구분보다는 재난을 겪는 사람들 중에서 한 가족의 사연에 집중하는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었다. 국가가 재난에 빠진 사람을 구조하는 상황도 전형적인 설정이라고 판단해 이 영화에선 그 부분을 최대한 배제하려고 했다. 이런 시도가 관객에게 독특하고 신선하게 다가가길 바란다.

-주인공과 그의 가족이 유독가스가 뒤덮인 도심을 탈출하는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슈퍼마리오> 같은 횡스크롤 게임에서 주인공이 화면 좌우에서 밀려오는 공격에서 도망치는 이미지를 생각했다. 사용자가 조종하는 캐릭터가 다음 단계로 뛰어넘는 상황을 보여주는 동시에 캐릭터와 드라마를 병행해 보여주는 게 과제였다.

-조정석이 연기한 용남은 어떤 인물인가.

=청년 백수로 사회나 가족 사이에서 루저다. 사람은 누구나 작은 능력을 하나씩 가지고 있지 않나. 청소를 잘한다거나 문을 잘 여는 것처럼 사회적으로는 별로 쓸모없지만, 그런 능력이 재난 같은 특별한 때에 빛을 발하기도 한다. 용남도 그런 능력이 있다. 가수 이승환의 노래 <슈퍼히어로>의 가사가 와닿았고, 용남을 잘 설명해주는 것 같아 선곡했는데 최종 버전에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조정석의 어떤 면이 용남과 어울린다고 판단했나.

=재난영화지만 인물이 너무 진지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조정석씨에겐 재미있고 귀여우며 너스레를 떠는 면모가 있는데 그 모습 덕분에 시나리오에서 묘사됐던 용남이 좀더 풍성하게 표현됐다.

-성룡의 액션영화 같은 느낌도 있는 것 같다.

=되게 멋진 액션으로 접근하지 않았고, 몸을 잘 활용한다는 점에서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

-윤아가 맡은 의주는 용남의 조력자인가.

=한국영화에서 남성과 여성 캐릭터의 직업을 전형적으로 구분하는 시각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의주를 사건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한 것도 그 때문이다. 이야기에서 용남과 의주의 물리적인 출연 비중 또한 균형을 맞추기 위해 고민을 많이 했다. 의주가 재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두 남녀가 함께 달릴 수 있는 환경을 이야기 안에 마련한 것도 그런 고민의 결과다.

-재난의 원인이 왜 가스인가. 화재도 테러도 있지 않나.

=사람 관계에서 한치 앞도 볼 수 없다는 말이 있지 않나. 눈앞이 캄캄해지는 상황을 연출할 수 있는 대상이 가스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 뛰어다니는 이미지를 표현하고 싶었다. 그 과정에서 용남과 의주의 전사가 드러나고, 그러면서 감정이 점점 쌓인다.

-재난이 벌어지고 대피하는 과정에서 밉상 캐릭터도 등장하나.

=그런 캐릭터가 없지 않지만 전형적인 인물로 보일까 봐 관객에게 너무 미움받지 않도록 표현하는 데 신경 썼다. 주인공들과 끝까지 함께 갈 수 있는 인물로 보이길 원했다.

-재난을 겪는 인물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가 무엇인가.

=누구나 자신만의 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 가스를 피해 달리는 청춘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고 싶다. 이 영화는 누군가에게 성장 드라마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른 관객에겐 가족영화로 다가갈 수 있고, 젊은 관객에겐 자신의 이야기라고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 될 것 같다. 분명한 건 이제껏 나온 재난영화와 다를 거라는 사실이다.

시나리오 표지.

<엑시트>

감독 이상근 / 출연 조정석, 윤아, 고두심, 박인환, 김지영 / 제작 외유내강, 필름케이 / 배급 CJ엔터테인먼트 / 개봉 2019년

● 시놉시스_ 용남(조정석)은 일정하게 하는 일 없이 지내는 백수다. 어머니(고두심)의 칠순잔치에서 그는 우연히 대학 시절 동아리 후배인 의주(윤아)를 만난다. 의주는 칠순잔치가 열리는 컨벤션홀의 부지점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런데 이곳에 정체불명의 유독가스가 들이닥치면서 용남과 의주는 가족을 데리고 도심을 탈출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 가스에 주목하라_ 가스의 정체는 함구령이 내린 상태라 아직 밝힐 수 없다. 분명한 건 가스가 인물들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자 서사에 서스펜스를 쌓아올리는 중요한 장치라는 사실이다. 성룡 영화가 그렇듯이 인물들이 가스를 피하기 위해 우왕좌왕하며 우당탕하는 슬랩스틱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현장에서 최대한 가스를 구현하는 게 이상근 감독의 목표였다. 현장에서 가스를 뿌리되 가스가 미처 채우지 못하는 부분은 후반작업 때 특수시각효과로 구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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