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한국영화 기획①] 2018년 성적을 바탕으로 2019년 한국영화 흥행을 예측해보니
2019-01-23
글 : 김성훈
2019년 한국영화, 위기인가

모두가 공급 과잉 문제가 심각하다고 했다. 지난해 추석 시장에서 <물괴> <명당> <안시성> <협상> 등 한국영화 4편이 경쟁에 뛰어들면서 충무로 안팎에서 일제히 나온 얘기다. 결과는 모두가 아는 대로다. 순제작비가 적게는 100억원 이상 많게는 220억원에 이른 한국영화 4편 모두 관객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한국영화의 부진 탓에 지난해 추석 시장에서 불러들인 관객수가 전년도(2017년 추석 시장에선 <남한산성>(384만여명,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 <범죄도시>(688만여명), <아이 캔 스피크>(328만여명), <킹스맨: 골든 서클>(494만명)이 개봉했다.-편집자)에 비해 76% 정도에 그쳤다.

그로부터 두달이 지난 지난해 크리스마스 시장에서 추석 시장의 악몽이 되풀이됐다. <마약왕>(손익분기점 400만명), <스윙키즈>(손익분기점 370만명), <PMC: 더 벙커>(손익분기점 370만명) 등 한국영화 3편이 뛰어들어 각각 186만명, 146만명, 166만명을 동원하는 데 그치며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했다. 설, 여름, 추석, 크리스마스 등 한해 가장 큰 4개의 시장 중에서 한국영화가 두 시장 연달아 참패한 셈이다. “<마약왕>의 송강호와 <PMC: 더 벙커>의 하정우는 개런티만 7억원 이상 받는 특A급 배우인데 그들이 주인공을 맡은 영화가 손익분기점조차 넘기지 못한 건 충격”이라는 걱정과 불안감이 창투사 관계자들과 메인 투자자들 사이에 드리우고 있다. 그러면서 추석 시장과 크리스마스 시장에서 연달아 나타난 한국영화의 흥행 부진이 단순한 공급 과잉 문제 때문에 벌어진 현상은 아니라는 얘기가 나왔다.

“배우 잡기가 하늘의 별따기”

사실 지난해 한국영화 시장은 외형만 놓고 보면 위기론은커녕 예년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극장을 찾은 총 관객수는 2억1600만명으로, 6년 연속 총 관객수 2억명을 돌파했다. 전년도인 2017년의 2억1900만명에 비해 300만명 적은 수치다. 이중 한국영화 개봉편수는 660편(극장과 IPTV를 합친 숫자)으로, 역대 최다 편수를 기록했다. 다만 개봉편수와 상영편수가 해마다 늘어나는 반면에 지난해 한국영화는 1억1천만여명의 관객을 동원해 관객 점유율 50.9%를 기록했다. 이는 2014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전체적으로는 큰 변화가 없어 보이는 숫자지만 흥행작의 면면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통계가 몇 있다. 지난해 12월 6일 CJ CGV가 주최한 ‘영화산업 미디어포럼’에서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박스오피스 시장의 분위기는 전통적인 비수기인 4월과 11월에 각각 개봉한 영화들이 주도했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곤지암> <레디 플레이어 원> 등 3편은 4월에 개봉해 총 1400만명의 관객을 불러모았다. <보헤미안 랩소디> <완벽한 타인> <신비한 동물들과 그린델왈드의 범죄> 등 11월에 개봉한 영화 3편은 모두 합쳐 1700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4월의 1400만명과 11월의 1700만명은 최근 5년간의 해당 월 관객수 중 가장 많다. 여름 시장의 포문을 연 <인랑>을 포함해 <마약왕> <스윙키즈> <안시성> 등 100억원 이상의 제작비가 투입된 대작 영화들이 흥행 실패의 고배를 마신 것과 여러모로 대조된다.

“산업에 빨간불을 켜야 한다.” “지난해 추석 시장에서 이상 신호가 감지됐으니 올해 추석 시장까지 한 텀을 지켜봐도 늦지 않다.” 현재 충무로는 당장 산업에 비상 깜빡이를 켜야 한다는 시장 위기론과 아직 긍정적인 신호도 있다는 신중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최근 급변하고 있는 영화산업은 영화인들에게 진화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위기감을 안겨준다. 일단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안을 포함한 여러 원인으로 제작비가 전년도에 비해 50% 이상 상승하면서 손익분기점이 훌쩍 뛰어오른 동시에 흥행에 대한 부담감도 덩달아 커졌다. 한 제작자는 “최저임금법 시행령도, 주 52시간 근무제도 스탭 처우를 개선하고 안정적인 근로 환경을 갖추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그럼에도 영화산업은 여전히 도제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까닭에 최저임금법이 막내급 스탭뿐만 아니라 전체 스탭들의 인건비를 덩달아 상승하게 했다”며 “법 시행의 취지에는 전적으로 공감하나 영화산업의 특수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많다”고 말했다. 에이스메이커웍스, 메리크리스마스, 스튜디오 썸머(사나이픽처스와 영화사 월광이 행남사로부터 투자를 받아 설립한 투자·배급사로, 이재필 전 CJ엔터테인먼트 투자팀장이 대표를 맡았다.-편집자) 등 신생 투자·배급사가 영화산업에 뛰어들면서 제작 편수가 늘어났고, 지난해부터 종편들이 잇달아 드라마를 편성하기 시작하면서 2020년에는 공중파, 종편, 넷플릭스, 웹드라마 모두 합쳐 드라마만 무려 200여편에 이를 거라는 예상이 나왔다. 그러면서 주연이고 조연이고 가릴 것 없이 배우들의 올해 일정표가 꽉 찼다. 2019년 1월부터 12월까지 편성된 공중파, 종편 드라마, 웹드라마 150여편의 캐스팅은 거의 다 끝나간다. 배우가 영화 흥행의 주요 관건인 현재 산업 상황에서 영화 프로듀서들은 “배우 잡기가 하늘의 별따기”라고 울상이다.

넷플릭스 같은 OTT(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사업자가 국내 시장에 안착한 뒤로 TV와 극장, 영화와 드라마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영화 관람 방식이 다양해지고, 선호하는 이야기가 까다로워지며, 눈높이가 높아진 관객은 영화 관람 패턴이 바뀌어 영화인들에게 복잡한 고민거리를 안겨준다. 한 대기업 투자·배급사 임원은 “올해 대작 영화들이 잇달아 흥행에 실패한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관객이 이야기의 스케일만 크고 서사 전개 패턴은 비슷한 영화들에 흥미를 잃은 것”이라며 “그 점에서 현재 한국 영화산업은 이미 위기가 시작됐다. 그것이 올해 내놓는 한국영화들의 어깨가 무거워진 이유”라고 말했다. 소재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한국영화가 식상해졌다는 문제제기도 있다. 한 여성 제작자는 “지난해 여름 시장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대작 영화가 실패한 건 제작비 규모가 올라갈수록 부담을 느낀 투자·배급사가 자꾸 서사에서 안정적인 선택을 하기 때문이다. 이야기 전개가 뻔하다 보니 할리우드영화나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에 눈높이가 맞춰진 젊은 관객을 전혀 만족시키지 못한다”며 “최근 여성 관객이 원하는 동성애나 여성 서사, 게임 같은 쌍방향적인 형식을 시도한 <블랙미러: 밴더스내치>처럼 과감한 시도를 해야 한국영화를 식상하게 느끼는 젊은 관객의 취향을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많은 영화인들은 ‘감독 및 배우 패키징’ 시대는 지났고 ‘기획’의 중요성이 커졌다고 한목소리를 낸다. 한 제작자는 “믿고 보는 감독과 배우들이 지난해 흥행에 실패했다”며 “이제는 좋은 기획을 가진 영화가 살아남을 확률이 크다”고 강조했다.

젊은 관객을 읽어라

산업 안팎에서 환경이 급변하는 탓에 수익을 올리기가 여러모로 쉽지 않은 상황에서, 여전히 한국 영화산업에 기회와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분석도 있다. 조성진 CJ CGV 전략지원담당은 “지난해 4대 시장에서 대작 영화들이 흥행에 실패한 이유는 기시감이 많이 들고 서사 전개 패턴이 비슷해 관객이 눈길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대로 <곤지암> <완벽한 타인> <너의 결혼식> 등 장르를 독특한 시선으로 풀어낸 저예산 영화의 흥행은 현재 젊은 관객이 어떤 콘텐츠를 좋아하는지 길잡이가 되어준다”고 설명했다. 그는 “넷플릭스가 안방에 침투하고 유튜브가 대세로 굳어지면서 영화와 드라마의 경계가 무너졌다. 요즘 젊은 관객은 영화와 드라마를 구분하기보다 하나의 콘텐츠로 생각하는 것 같다. 관객의 콘텐츠 관람의 패턴 변화가 극장에는 위기일 수 있다”며 “하지만 <보헤미안 랩소디>가 새로운 싱어롱 상영 문화를 만들어내고 관객을 극장으로 이끄는 현상을 지켜보며 이제 극장은 단순히 영화를 관람하는 공간이 아니라 체험하는 곳이라는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추석 시장과 크리스마스 시장에서 한국영화가 연달아 참패한 현상이 위기의 전조인지, 아니면 일시적인 우연의 반복인지는 올해 충무로가 내놓는 결과에 달려 있다. 분명한 건, 반복된 실패는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또, 패키징이 중요한 시대는 끝났다. 기획이 올해 충무로의 화두다. 그게 지금부터 한국영화와 한국 영화산업을 바라보는 관전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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