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한국영화 기획⑥] 이정세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영화사업 본부장 - 다양성이 산업을 건강하게 만든다
2019-01-23
글 : 이주현
사진 : 백종헌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이하 메가박스)은 그간 <동주>(2015), <미씽: 사라진 여자>(2016), <박열>(2017), <범죄도시>(2017), <기억의 밤>(2017) 등 내실 있는 중저예산 영화들을 선보이며 투자·배급사로 입지를 다졌다. 지난해엔 <변산> <리틀 포레스트> <너의 결혼식> <명당> <도어락> 등 5편을 선보였다. 소재와 장르 등에서 차별화를 꾀한 이 영화들은 흥행 결과와 무관하게 저마다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었다. “하늘 아래 새로운 이야기는 없다고 생각한다. 대신 그해, 그 시즌에 새로운 영화는 있을 수 있다.” 메가박스에서 투자한 작품 중 규모가 가장 컸던 사극 <명당>과 <동주> <박열>의 성공을 이을 것으로 예상됐던 이준익 감독의 <변산>이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했지만 이정세 메가박스 영화사업 본부장은 여전히 새로운 시도가 돋보이는 엣지 있는 영화를 고민하고 있었다.

-2018년 메가박스에서 선보인 영화들의 결과는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

=아쉬움이 크다. 비교적 제작비 규모가 컸던 <명당>이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했고, 늘 어떤 기대감을 안겨주는 이준익 감독의 <변산>이 감독의 영화 중 역대 최저 스코어를 기록했다. 반면 <리틀 포레스트> <너의 결혼식>은 결과가 만족스럽게 나왔고, <도어락>도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이중 <리틀 포레스트> <너의 결혼식> <변산>은 제작비와 행운이 함께 따른 영화였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순제작비 15억원으로 <리틀 포레스트>를 찍었는데, 이 예산으로 이렇게 멋진 배우들을 데리고 1년 동안 촬영할 수 있는 기회가 앞으로 또 올까 싶다. <너의 결혼식>과 <변산>도 마찬가지다. 성공을 했건 손해를 봤건 앞으로 계속 도전해야 하는 영화들인데, 제작비 상승을 고려하면 자꾸 자신이 없어진다. 손익분기점 100만명 내외의 영화는 1월부터 12월까지 언제든 좋은 날짜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손익분기점이 200만명을 넘어가면 비수기 때 개봉하기도 곤란하고, 성수기를 찾다보면 경쟁이 치열해진다. 앞으로도 이같은 시도와 모험을 계속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다.

-<명당>은 지난해 추석 시즌 <물괴> <협상> <안시성>과 경쟁했다. <안시성>이 손익분기점을 넘기긴 했지만 한국영화들이 승자 없이 출혈 경쟁을 한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왜 한국영화 대작들을 한주에 몰았냐고 하는데 그건 큰 영화들이 갈 데가 없어서다. 솔직히 대안은 없다. (웃음) (<명당>의 성적이 저조했던 것에 대해) 스스로 위안을 하려고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만약 3년전이었다면 세 영화 모두 손익분기점을 넘겼을지도 모른다. 그때는 지금보다 제작비가 낮았으니 말이다. 연간 관객수는 해마다 비슷하다. 관객은 늘지 않는데 제작비는 상승한다. 그러면 새로운 시장을 찾거나, 제작 비용을 줄이거나, 판매가를 높여야 한다. 제작비를 회수하려면 관객이 극장을 많이 찾는 성수기에 걸 수밖에 없다. 시기적으로 할리우드 대작영화들도 피해가야 한다. 최근엔 한국영화 배급사들이 할리우드 히어로 영화의 기본 관객을 500만~700만명으로 잡고 데이터를 돌린다. <어벤져스> 시리즈는 1천만명이 들 거라고 계산한다. 어쨌거나 한정된 시장에서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한국영화 위기설은 어떻게 생각하나.

=동의한다. 단지 몇편의 영화가 잘 안 돼서가 아니라 영화를 소비하는 사람들의 성향 혹은 태도가 바뀌었다는 걸 느낀다. 나 역시 콘텐츠 소비 방식이 달라졌다. 재밌는 드라마를 몰아보기하는데, 이틀동안 드라마 몰아보기할 때의 경험치와 작정해서 영화 한편 보러 갈 때의 경험치를 비교하면 그 경험의 가중치가 비슷하다. 그런데 20시간이 넘는 분량으로 한 캐릭터를 쭉 쌓아가는 드라마와 2시간 안에 캐릭터도 설명하고 이야기도 설명해야 하는 영화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드라마는 단단해 보이고 영화는 어설퍼 보인다. 점점 영화의 스토리를 만들기도 어려워지고 있다. 확실히 타 플랫폼에서 제작되는 콘텐츠들이 많이 강력해졌다. 또 <보헤미안 랩소디>나 <라라랜드> 같은 음악영화를 빼고 최근 국내에서 개봉한 할리우드 드라마 장르의 영화 중에 200만명을 넘긴 영화는 거의 없다. 흥행 상위권을 차지하는 건 마블 영화나 블룸하우스의 장르영화 정도다. 한국영화도 점점 그렇게 가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리틀 포레스트> <박열> <완벽한 타인> 등 독특하고 엣지 있는 영화들, 전통적으로 200만명 규모의 영화들이 점점 설 자리를 잃을까봐 걱정이다.

-신생 투자·배급사들이 생겨나면서 경쟁도 심화됐다.

=긍정적 측면은 좀더 다양한 한국영화가 제작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는 거다. 그만큼 투자자들이 긴장하고 있고 또 해야 된다. 반면 우려되는 건 내 건강이다. (웃음) 경쟁사가 많아져서 주말에 쉬고 싶어도 쉬지 못한다. 금요일에 시나리오 받으면 월요일까지 피드백을 준다. 그러면 주말이 날아간다. 나를 포함한 투자·배급 담당자들의 건강이 걱정된다.

-한국영화 콘텐츠의 완성도, 질적인 측면의 점검도 필요하다고 보나.

=재점검한다고 되진 않을 것이다. 스토리의 질은 알아서 좋아지는 것 같다. 창작자들도 새로운 콘텐츠를 소비할 거고 각성할 거다. 그 각성의 결과가 지난해에 덜 나왔을지 모르지만 자연발생적으로 조만간 더 탄탄한 이야기의 영화가, 지금의 관객과 더 호흡할 수 있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한다.

-2019년 한국영화의 경향 및 특징은 뭐라고 보나.

=특이하게도 호러 장르로 묶을 수 있는 영화가 4편 이상 개봉한다. 당연한 현상 같다. 과거에는 호러를 100만명 언저리의 관객이 보는 서브 장르로 여겼다. 그런데 <컨저링> 시리즈나 <겟 아웃>이 국내에서 성공했다. 호러 장르를 소비하는 관객이 최근 5년동안 200만~300만명으로 늘었다. 이런 경향을 유심히 지켜봐온 창작자들이 수년전부터 준비해온 결과물이 마침 올해 나타난 것이라 생각한다. 올해 각사의 라인업을 보면 확실히 지난해보다 영화가 다양해진 것 같다.

-지난해 메가박스가 선보인 5편의 영화도 모두 소재와 장르와 결이 달랐다. 그런 가운데 <리틀 포레스트> 같은 영화가 흥행하고 관객의 사랑을 받았다. 천편일률적이었던 한국영화가 최근 조금씩 다양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올해 라인업에서도 그런 다양성을 기대해도 좋을까.

=이럴 때 필요한 건 응원이다. 혹 새로운 시도가 실패하더라도 응원을 해줘야 한다. (웃음) 올해 라인업도 색깔이 다 다르다. 2월에 개봉하는 정재영, 김남길, 엄지원 주연의 <기묘한 가족>은 최근에 보지 못한 특이한 코미디영화고, 송강호, 박해일 주연의 <나랏말싸미>는 훈민정음 창제를 둘러싼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영화고, 전도연, 정우성 주연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서로 다른 욕망에 휩싸인 인간 군상을 볼 수 있는 범죄 스릴러 영화다. 웃기고 눈물나는 나문희, 김수안 주연의 <소공녀>(가제)도 있고, 강윤성 감독의 차기작 <롱리브더킹>은 웹툰이 원작인 영화다. 다양성이 영화산업의 제1 목표는 아니지만 다양성이 산업을 건강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다양한 시도에 칭찬을 많이 해주면 좋겠다.

● 타사 라인업 중 가장 기대작은?_ “<기생충>(배급 CJ엔터테인먼트)과 <남산의 부장들>(배급 쇼박스) 두편을 꼽고 싶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도대체 어떤 내용인지 공개된 게 없어서 순수하게 궁금하다. 우민호 감독의 <남산의 부장들>은 앞서 비슷한 소재의 영화가 있었기 때문에 그 소재를 어떻게 다뤘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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