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위원들이 편두통을 앓아야 했다는 것. 그것이 바로 올해 영화제의 단점이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지난 5월 25일 막을 내린 72회 칸영화제를 결산하며 이렇게 말했다. 국적에 관계없이 모두가 입을 모아 ‘최고의 라인업을 선보인 한해’였다고 말하는 2019년 칸영화제 경쟁부문 상영작 중 어떤 영화에 손을 들어줄 것인지는 심사위원들에게 결코 간단치 않은 문제였을 것이다. 올해 영화제 경쟁부문의 심사위원장을 맡은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 또한 폐막식 무대에 올라 “매우 놀랍고 도전적”이었던 21편의 경쟁부문 상영작 중 단 몇편의 영화만 수상작으로 선정해야 한다는 점이 얼마나 불가능한 일이었는지를 말했다.
1980년대부터 꾸준히 칸에 초청됐던 짐 자무시의 <데드 돈 다이>로 시작해 올해 경쟁부문에 처음으로 초청된 프랑스 감독 쥐스틴 트리에의 <시빌>로 마무리된 2019년 칸 경쟁부문 라인업은, 지난 리포트(<씨네21> 1207호 특집 기사)에서 전했듯 거장과 재능 있는 신진 감독들의 영화를 함께 소개함으로써 근사한 조화를 이뤘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다르덴 형제, 켄 로치, 테렌스 맬릭, 마르코 벨로키오, 쿠엔틴 타란티노 등 칸과 역사를 함께해온 베테랑 감독들은 그들의 명성을 훼손하지 않는 원숙한 영화로 관객을 만났고, <아틀란티크>의 마티 디옵과 <레 미제라블>의 라즈 리의 경우처럼 첫 장편 극영화로 경쟁부문에 초청된 무서운 신예들은 칸이 그들을 왜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명확한 이유를 보여줬다. “올해 칸영화제는 위대한 축제가 되겠다 약속했고, 그 약속은 지켜졌다”는 프랑스 일간지 <르누벨옵세르바퇴르>의 평이나 “최악의 세상을 위한 최고의 영화축제”였다는 <가디언>의 반응은 2019년 칸영화제에 쏟아지는 호평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대세를 크게 거스르지 않은 수상 결과
폐막식이 열린 5월 25일 저녁까지 황금종려상의 향방을 쉽게 예측할 수 없었던 건 그래서다. 영화제 후반이 되면 자연스럽게 후보작이 좁혀지던 예년과 달리, 전반적으로 수작이 고르게 분포했으며 감독군의 세대 격차가 컸던 올해는 상을 받아도 이상하지 않을 작품들이 적지 않았고, 상을 받아야 할 명분을 가진 작품도 많아 시상식의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비록 영미권, 프랑스권 공식 데일리에서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페인 앤 글로리>와 봉준호의 <기생충>, 셀린 시아마의 <포트레이트 오브 어 레이디 온 파이어>가 가장 높은 평점을 기록하고 있었으나 결과를 장담할 수 없었다. 프랑스 일간지 <르푸앙>은 “올해 시상식의 서스펜스는 최고였다”며 멕시코 감독 이냐리투를 수장으로 내세운 심사위원단에게 어려운 결정권이 주어졌었음을 말했다.
결과적으로 이냐리투를 비롯해 배우 엘르 패닝, 마이모나 응디아예,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와 켈리 레이차트, 파베우 파블리코프스키, 엔키 비랄, 알리체 로르바케르, 로뱅 캄피요 감독 등 9명의 심사위원들이 내린 선택은 대세를 크게 거스르지 않았다는 것이 전반적인 평이다.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은 영화제 기간 내내 황금종려상의 가장 유력한 후보였으며,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아틀란티크>의 마티 디옵은 영화제 역사상 경쟁부문에 진출한 최초의 흑인 여성감독이라는 상징성과 더불어 올해 경쟁부문에 새롭게 진입한 감독 중 가장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던 인물이다. 감독상을 수상한 <영 아메드>의 다르덴 형제는 평단이 거론하던 수상 후보 목록에는 없었던 이름이지만 주제의 시의성과 영화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을 고려하면 충분히 납득 가능한 선택이었다고 보여지며, 심사위원상을 공동 수상한 <레 미제라블>의 라즈 리와 <바쿠라우>의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는 사회에 대한 통렬한 문제의식을 장르적으로 유려하게 풀어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봉준호 감독의 강력한 경쟁자였던 프랑스 감독 셀린 시아마는 각본상과 퀴어종려상 수상에 만족해야 했고,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은 자신의 분신을 훌륭하게 연기해낸 안토니오 반데라스에게 남우주연상을 안기는 것으로 이번 영화제를 마무리했다. <리틀 조>의 주연을 맡은 영국 배우 에밀리 비첨에게 돌아간 여우주연상은 다르덴 형제의 수상과 더불어 놀라움을 줬으며, 경쟁부문 상영 마지막날에 공개돼 잔잔한 호평을 받은 엘리아 슐레이만의 <잇 머스트 비 헤븐>은 심사위원들에 의해 특별 언급됐다. 특히 외신은 봉준호 감독의 황금종려상 수상에 만족감을 표하며, 지난해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어느 가족>에 이어 다시 한번 아시아영화가 황금종려상을 가져갔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프랑스 일간지 <르피가로>는 “봉준호 감독의 수상은 아시아영화가 지금 현재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존재임을 확실하게 각인시켰다”고 전했다.
9명의 심사위원이 결정한 올해 영화제의 수상작 9편에는 공통적으로 세계에 대한 감독들의 근심이 담겨 있다. 심사위원장 이냐리투는 “사회적 또는 정치적 어젠다에 기반”해 영화를 심사하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세계의 암울한 풍경으로부터 비롯된 문제의식이야말로 수상의 영광을 가져간 9편의 영화를 추동하게 하는 힘이라는 걸 부인할 수 없다. 진정한 의미의 공생이 불가능한 자본주의 사회의 풍경(<기생충>)부터 난민 문제(<아틀란티크>), 여성 예술가에 대한 고찰(<포트레이트 오브 어 레이디 온 파이어>), 사회적 사각지대에서 발생하는 폭력(<레 미제라블> <바쿠라우>)과 광기에 가까운 종교적 신념(<영 아메드>)에 주목한 올해의 수상작들은 심사위원장 이냐리투의 말처럼 “예술이 어떻게 세계를 반영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동시에 이러한 수상 결과는 올해의 칸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장르를 비틀고 교란하며 변주하는 작가 감독들의 손을 들어주었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사회 풍자, 스릴러, 호러 등 가장 다채롭고 독창적인 방식으로 장르를 변주한 영화 <기생충>, 수사물과 로맨스, 고스트 스토리가 정교하게 얽힌 <아틀란티크>, SF와 서부극, 슬래셔 장르를 결합한 <바쿠라우>, 보디 스내처 장르를 헐겁게 차용한 <리틀 조>, 다큐멘터리적 필치로 인물과 사회를 조명하다가 격렬한 액션 시퀀스로 방향을 급선회하는 <레 미제라블>이 모두 이 범주에 포함될 수 있는 작품이다.
올해의 큰 발견 <바쿠라우> <포트레이트 오브 어 레이디 온 파이어>
특히 심사위원상을 공동 수상한 브라질영화 <바쿠라우>와 프랑스영화 <레 미제라블>은 작품의 분위기는 판이하나, 유혈 사태가 불가피한 무정부 상태의 사각지대를 조명하며 공권력을 비판하고 각성을 촉구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먼저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의 신작 <바쿠라우>는 가까운 미래의 어느 날, 갑자기 지도상에서 사라져버린 가상의 마을 바쿠라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마을이 GPS상에서 사라진 뒤, 근방에서는 총성이 울려퍼지고 한 무리의 무장한 외국인들이 바쿠라우 근처에 자리 잡는다. 사실 이들은 유희를 위해 민간인을 학살하는 헌터들이다. 마을 사람들은 그들에 맞서 살아남기 위해 총을 잡고 잔혹한 서바이벌 게임에 뛰어든다. 피가 흐르고 살점이 떨어지는 <바쿠라우>의 세계는 과연 이 영화를 연출한 감독이 <네이보링 사운드>와 <아쿠아리우스>를 연출한 그 사람이 맞는지 반문하게 할 정도로 과격하고 폭력적이다. 전작에서도 갑작스러운 외부 세계의 침투가 커뮤니티에 미치는 영향을 꾸준히 탐구해온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는 <바쿠라우>에서 서부극이 잘 어울릴 법한 황무지로 관객을 데려간다. 사회적으로 야기된 불안감을 이성의 영역에서 해결해보고자 했던 두편의 전작과 달리, 멘돈사 필류는 외부의 위협으로 아노미 상태가 된 공간에 무기를 든 주인공들을 데려다놓고 이제는 목숨을 건 투쟁만이 답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학살자로 대변되는 외국인들은 해외 자본을 더욱 적극적으로 끌어오겠다고 선언한 ‘브라질의 트럼프’ 자이르 볼소나루 대통령의 정책에 대한 명백한 메타포다. 당할 것인가, 맞설 것인가. 후자를 택한 <바쿠라우>의 주민들은 옷을 피로 물들이며 싸운다. 이처럼 장르에 힘입어 더욱 과감하고 대담하게 혼란의 사회상을 펼쳐 보이는 <바쿠라우>는 브라질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의 한층 더 깊어진 근심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한편 프랑스 감독 라즈 리는 <레 미제라블>에서 내부로부터의 폭력을 조명한다. 작품의 무대가 되는 몽페르메유는 감독의 고향이자 영화의 제목인 <레 미제라블>의 원작자 빅토르 위고가 머물렀던 곳이며, 지난 2005년 20세기 프랑스 역사상 가장 과격한 시위가 벌어졌던 센생드니주에 속해 있는 도시다. 영화는 몽페르메유의 빈민가 소년들과 그들의 커뮤니티에서 왕처럼 군림하는 경찰간의 갈등을 조명한다. 우연한 계기로 경찰과 빈민가 소년 사이에 갈등이 촉발되고, 경찰은 소년에게 연막탄을 발사한다. 사건이 상부에 알려질까 두려워한 경찰들이 입막음에 급급한 사이, 빈민가 소년들의 억압됐던 분노가 임계점에 다다르기 시작한다. <레 미제라블>의 감독 라즈 리는 다큐멘터리로 경력을 시작한 감독답게 시간을 들여 빈민가 사회가 어떤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지 들여다본 다음, 사건을 발생시킨 뒤 갑자기 액션영화의 속도감으로 영화의 후반 20여분을 질주한다. 세대와 사회적 계층, 인종 등 그들을 구분짓던 모든 테두리를 무장해제시키며 무섭게 끓어오르는 젊은 세대의 분노는 처절하면서도 오싹하다. 프랑스 버전의 스파이크 리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레 미제라블>은 소외된 자들이 처하는 각종 불합리한 상황들을 통해 그들에게 무자비하게 자행되는 폭력이 어떻게 더 큰 폭력을 낳는지 보여준다. 라즈 리 감독은 마크롱 대통령이 이 작품을 보아야 한다고 언급하며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경찰의 혼란스러운 모습을 통해 지난 6개월간 프랑스에서 벌어졌던 시위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의 수상작 중에서 가장 아쉬운 결과를 낳은 작품은 셀린 시아마 감독의 <포트레이트 오브 어 레이디 온 파이어>다. 18세기를 배경으로 여성 예술가의 삶과 사랑을 탐구하는 이 영화는 이미 많은 매체들이 지적했듯 더 큰 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한 수작이었다. 셀린 시아마 본인 역시 시상식에서 “시나리오작가로서의 일을 그만두려던 시기에 이 상을 받았다”며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을 정도다. 영화는 여성 예술가들의 권리가 느리지만 조금씩 신장되던 18세기 중·후반, 한 여성과 그 여성의 결혼 초상화를 의뢰받은 여성 예술가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다. 노에미 메를랑이 연기하는 여성 화가 마리안느는 아버지에게 사업을 이어받아 초상화를 그리는 진취적인 여성이다. 그는 아버지의 고객에게서 초상화의 대상이 되길 거부한 자신의 딸을 그려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결혼을 거부한 언니의 죽음으로 인해 수도원에서 살다가 불가피하게 결혼 시장에 나오게 된 엘로이즈는 해본 것보다 하지 못한 것이 더 많은 여성이다. 화가로서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엘로이즈에게 접근한 마리안느는 곧 그와 가까워진다. 엘로이즈의 어머니가 집을 비운 5일간, 마리안느와 엘로이즈는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단 5일의 시간이 남아 있을 뿐이다. 칸영화제에서 최초로 퀴어종려상을 수상한 여성감독의 영화가 된 이 작품은 남성감독들이 연출한 레즈비언 로맨스 영화에 무엇이 결여되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게 한다. 불필요한 감정 소모의 과정과 쓸데없이 긴 격정의 러브신을 배제한 이 영화는 오히려 두 여성의 사랑이 그들에게 굳게 닫힌 기회의 문을 어떻게 돌파할 수 있게 해주는지에 주목한다. 또한 셀린 시아마는 두 여성주인공을 통해 상호 균등한 예술가와 뮤즈의 관계를 보여준다. 프랑스 초상화의 “규칙, 관습, 아이디어”에 기반하던 마리안느의 초상화는 엘로이즈와의 관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리고 두 사람의 변화무쌍한 관계를 기록한 여인의 초상화는 영원히 아름다운 상태로 그들을 박제한다. 이 작품에는 최근 사회적으로 공론화되고 있는 낙태 문제에 대한 감독의 소신이 포함되어 있다. 여성의 시선을 담은 레즈비언 로맨스 영화는 어떤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셀린 시아마의 이 우아하고도 품격 있는 시대극은 교과서적인 대답이 될 것이다.
셀린 시아마의 영화와 더불어 수상권에서 멀어져 아쉬움을 남긴 작품은 쿠엔틴 타란티노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다. 타란티노는 영화제 중반 이후 잠잠했던 크루아제트 거리를 뜨겁게 달군 올해 영화제의 빅 스타였으며 영화에 대한 반응도 대체로 호의적이었으나, 가장 훌륭한 연기를 선보인 개에게 수여하는 ‘팜도그’상 이외에 본상을 받지 못해 안타까움을 남겼다. 시간 관계상 이 영화를 보지 못했으나, 본지 김현수 기자에 따르면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자신이 애정하는 1960년대 미국에 대한 향수를 가득 담아 타란티노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방식의 이야기로 완성된 것 같다. 타란티노는 <에스콰이어>와의 인터뷰에서 “알폰소 쿠아론에게 1970년과 멕시코시티, 그리고 <로마>가 있다면, 나에게는 LA와 1969년이 있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타란티노의 <로마>와도 같은 작품이다. 로스앤젤레스에 바치는 그의 헌사가 어떤 방식으로 완성되었을지는 이어지는 지면에 실린 인터뷰를 통해 짐작하며 국내 개봉을 기다려봐야겠다.
극장에서 경험 가능한 영화적 체험들
이 지면에서 마지막으로 언급할 영화는 테렌스 맬릭의 <히든 라이프>다. <투 더 원더> <나이트 오브 컵스> 등 시원찮은 반응의 로맨스영화를 만들며 서서히 잊혀지는 듯 보였던 이 미국 거장은 올해 칸에서 공개한 신작 <히든 라이프>를 통해 <트리 오브 라이프> 시절로 완전히 복귀했다는 평을 들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으로 징용되길 거부해 감옥에 갇힌 채 생을 마감한 한 오스트리아 남성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이 영화는 시적인 풍경과 숭고한 아름다움, 상실과 아픔, 절대자에 대한 탐구 등 테렌스 맬릭 고유의 영화적 요소를 계승하고 있다. 맬릭의 다른 작품이 그렇듯, 러닝타임이 3시간에 달하는 <히든 라이프>는 대형 스크린으로 완전히 몰입해서 보지 않을 바에는 아예 보지 않는 것이 나은 영화다. 이번 작품에서 맬릭이 와이드 앵글 렌즈로 담아낸 오스트리아의 광활한 자연은 마치 극장 안에 금방이라도 이슬이 맺힐 것 같은 몰입감을 준다. 주인공 프란츠는 오스트리아의 시골 마을에서 아내, 두딸과 함께 행복하게 살던 농부다. 그의 삶은 단순하고 정직하다. 일군 만큼 거두고, 거둔 만큼 다시 일구는 생활의 반복이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의 그림자가 프란츠가 사는 시골 마을에도 그늘을 드리운다. 마을에 전사자를 암시하는 십자가 표시가 하나둘씩 세워질 무렵, 양심에 어긋나는 일이기에 징병을 거부하는 프란츠의 태도는 마을 사람들의 공분을 산다. <히든 라이프>는 자연과 동화된 프란츠의 단란한 삶을 보여주는 데 3분의 1가량을, 프란츠의 선택이 마을 사람들과 갈등을 겪는 과정에 3분의 1가량을, 감옥에 갇힌 프란츠가 갖은 고난을 견디며 신념을 시험받는 장면에 3분의 1을 할애한다. 이를 통해 맬릭은 자신의 신념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며, 그 신념을 지키기 위해 개인이 어떤 것들을 포기해야 하는지에 대해 관객이 물리적으로 체감할 수 있게 한다. <버라이어티>는 “이 작품은 마치 성당에 들어가는 것처럼 관객을 몰입하게 한다”며 “이 작품이야말로 대형 스크린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대변해준다”고 말했다.
올해의 칸에서 만난 영화들도 <히든 라이프>와 궤를 같이하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된다.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서라면 도무지 발견할 수 없었을 디테일과 영화적 몰입의 즐거움이 올해 5월 칸에서 만난 작품들에는 있었다. <버라이어티>는 올해 칸의 라인업이 “영화만의 강점을 보여주었다”며 “숫자로만 측정될 수 없는”, “원초적이며 시대를 뛰어넘는 사랑의 감정”을 사람들은 영화에 대해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슈퍼히어로 프랜차이즈물이 전세계 극장가를 점령하고,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가 극장의 존재를 위협하는 시대, 칸은 여전히 극장에 대한 애정과 영화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견고한 도피처가 되어주고 있었다. 언제까지나 이러한 안전지대에 머무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다소 나이브하고 낭만적으로 느껴질지 몰라도, 올해의 칸이 각국에서 모여든 영화 관계자들에게 제공한 영화적 체험은 꽤 강력하고 달콤했다. 72회 칸영화제가 “정치적이고 로맨틱할 것”이라던 예술감독 티에리 프레모의 예언은, 이로써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