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드 돈 다이> The Dead Don't Die
짐 자무시 / 스웨덴, 미국 / 2019년 / 103분 / 월드 판타스틱 레드
무전기가 먹통이 되고, 동물들은 숲으로 가고, 언제부턴가 밤이 사라졌다. TV에 나온 위기론자들은 극지대의 시추 작업이 지구의 자전 주기를 바꾸고 치명적인 변화를 초래할 것이라 주장한다. 경찰 클리프(빌 머레이)와 로니(애덤 드라이버)는 이 혼돈에도 크게 동요하지 않고 닭 도둑이나 쫓는 경찰들이다. 마을의 장이사 젤다(틸다 스윈턴)는 사무라이 검을 휘두르지만 불교를 신봉하는 이상한 존재로, 어쩐지 좀비를 보아도 크게 당황하지 않는다. 소년원의 제로니모는 일찌감치 “지구의 자전축이 이동하면서 좀비 세상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지만 어른들은 그의 말에 관심이 없다. 주유소를 운영하는 바비(케일럽 랜드리 존스)와 사건 해결에 동참하는 또 다른 경찰 민디(클로에 세비니), 마을을 찾은 힙스터 무리 등 다양한 캐릭터가 공동묘지를 뛰쳐나온 좀비를 마주한 후 각자의 방법으로 대처법을 찾는다. 영화 내내 흐르는 컨트리풍 노래, 스터질 심슨의 <The Dead Don't Die>는 센터빌 마을의 풍경, 뛰지 않고 천천히 거리를 누비는 고전적인 좀비의 액션 스타일, 의도적으로 심심하게 짠 유머를 아우르는 이음새다. 좀비가 와이파이나 블루투스, 아이스 캔디를 찾는다는 농담을 포함해 소비주의에 찌든 현대사회를 바라보는 감독의 시니컬한 시선이 영화 전반을 지배하는데, 주류 자본주의사회에 흡수되지 않은 인물이나 어른들로부터 소외된 어린이 캐릭터를 통해 한 가닥 희망도 보여준다. 제72회 칸국제영화제 개막작.
<주디와 펀치의 위험한 관계> Judy and Punch
미라 폴크스 / 오스트레일리아 / 2019년 / 105분 / 월드 판타스틱 레드
주디(미아 바시코프스카)와 펀치(데이먼 헤리먼)는 꼭두각시 인형극을 하는 부부다. 자신이 세계 최고의 인형극 공연자라고 자부하는 펀치가 무대 위의 스타라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재능을 펼치는 것은 주디쪽이다. 어느 날 술에 취한 펀치가 아기를 죽이는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지고, 이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그는 아내까지 살해하려 한다. 숲속에 숨어 살던 부적응자 무리에게 발견돼 목숨을 건진 주디는 복수심을 안고 마을로 돌아온다.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주류사회에서 버림받은 이들과 주디의 연합은 단순한 복수극 이상의 테마를 담는다. 터무니없는 이유로 여자들이 ‘마녀’라 낙인 찍혀 죽음에 이르던 시대를 배경으로 자경단 모티브를 흥미롭게 활용했다. 스테디캠을 적절히 활용해 생동감을 살린 연출이 돋보인다. <바바둑>(2014)의 제니퍼 켄트에 이어 주목할 만한 호주 여성감독의 등장.
<로맨틱 코미디> Romantic Comedy
엘리자베스 생키 / 영국 / 2019년 / 78분 / 월드 판타스틱 블루, 웃기는 여자들, 시끄럽고 근사한
<로맨틱 코미디>는 10대 시절 로맨틱 코미디의 열렬한 팬이었던 엘리자베스 생키 감독의 에세이적 다큐멘터리다. 그는 장르의 이상적 결말이었던 ‘결혼’의 실체를 경험한 후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다고 고백한다. 이 괴리는 여성 관객에게 주로 팔린다는 이유로 평가절하되기도 했던 장르가 ‘남성적 시선에서 이상화된’ 여성을 숱하게 재현했다는 모순에서 온다. 반면 남성의 폭력은 종종 로맨틱한 행위로 미화된다. 또한 메이저 스튜디오 영화가 중산층 이성애자 백인 중심으로 제작됐다는 점을 말하고 있으나, <로맨틱 코미디>는 궁극적으로 이 장르의 한계를 말하는 작품이 아니다. 비백인 캐릭터를 내세운 <빅 식>(2017)이나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2018)의 성과를 언급하며 최근의 흐름을 짚고, 사랑과 인간성을 탐구하는 장르가 가진 항구적 매력을 강조하며 감독의 오랜 관심과 애정을 보여준다.
<사르가소해의 기적> The Miracle of the Sargasso Sea
실라스 추메르카스 / 그리스, 독일, 네덜란드, 스웨덴 / 2019년 / 121분 / 부천 초이스: 장편
2006년 그리스 아테네, 유능한 경찰 엘리자베스는 테러 용의자들을 심문하다 석연찮은 이유로 남성 상급자들에 의해 좌천된다. 표면적인 이유는 엘리자베스와 그의 어린 아들 디미트리스가 위험할 수 있다는 것. 10년 후, 그리스 서부의 메솔롱기 지역 사르가소해로 좌천된 엘리자베스의 삶은 망가져 있다. 지독한 알코올중독자가 된 그는 코카인 관련 수사를 하며 자연스럽게 마약을 흡입하고, 유부남인 의사와 잠자리를 갖는다. 한편 장어공장에서 일하는 리타는 클럽 가수로 일하는 동생 마놀리스로부터 모욕적인 대우를 받고 있다. 마을에 충격적인 살인사건이 일어나면서 엘리자베스와 리타, 전혀 닮은 구석이 없던 두 사람은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된다. 모호한 스토리 전개, 리타가 열렬한 교회 신자라는 설정에서 비롯된 영적인 이미지에서 종종 데이비드 린치의 그림자가 감지된다. 폭력에 억압됐던 두 여성이 새로운 활력을 얻는 과정을 ‘장어’에 은유한 아이디어가 신선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