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제2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추천작③] <복수의 밤> <백사전> <하늘의 모든 신들> <영원한 족쇄> <이누가미의 결혼>
2019-06-19
글 : 송경원

<복수의 밤> Nemesis

군파윗 푸와돌위시드 / 타이 / 2019년 / 84분 / 월드 판타스틱 레드

복수는 반작용의 운동이다. 때리면 막고 당하면 당한 것 이상으로 갚아준다. 현실에서는 이뤄지기 힘든 단순하고 강력한, 일차원적 반응은 보는 이로 하여금 대리만족의 쾌감을 느끼게 한다. 과정이 너무 복잡할 필요도 없다. 바라는 건 오직 복수를 위한 정당한 이유와 길고 긴 응분의 시간이다. <복수의 밤>은 억울한 누명을 쓴 남자가 자신을 나락에 빠트린 이들을 찾아가 대가를 치르게 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부인을 살해했다는 혐의로 형을 산 남자는 촬영팀을 꾸려서 자신의 사건을 담당했던 의사, 변호사 등을 직접 찾아간다. 그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며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도록 하는 남자의 행보는 얼핏 가장 미운 사람들을 향한 속시원한 복수담처럼 보인다. 감독은 폭력이라는 마약에 쉽게 몸을 맡기는 대신 (강요된) 대화를 통해 세련된 긴장감을 쌓아나간다. 시스템 안에서 진실이 어떻게 날조되고 개인의 부도덕이 어떻게 책임을 회피하게 만드는지 적나라하게 고발하는 냉철한 영화다.

<백사전> White Snake

AMP 웡, 자오지 / 중국, 미국 / 2019년 / 99분 / 패밀리 존

인간을 사랑한 요괴. 여러 가지 차이로 인해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은 아마도 인류가 이야기를 발견한 이래 계속 반복되어온, 오래되고 강력한 테마일 거다. <백사전>은 중국 4대 민간 전설 중 하나로 천년을 수련한 흰 뱀 요괴 백소정과 순박한 선비 허선의 사랑을 다룬 이야기다. 송나라 때부터 구전된 설화는 중국 전통 경극을 비롯해 각종 소설, TV드라마, 영화 등을 통해 끊임없이 재창작되고 있다. <서유기>와 더불어 중국에서 가장 많이 영상화된 소재인 <백사전>이 애니메이션으로 다시금 옷을 갈아입었다. <백사전>은 기존 작품들과 달리 사건이 일어나기 전 백소정과 허선의 인연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다룬다. 시대배경도 500년을 거슬러 올라가 당나라 때부터 출발하는 <백사전>은 전생부터 이어진 인연이라는 테마로 절절한 순애보를 완성한다. 중국 애니메이션의 현재를 확인할 수 있는 이 작품은 유려한 CG 배경을 바탕으로 붓선을 강조한 수묵화의 아름다움까지 만끽할 수 있다.

<하늘의 모든 신들> All the Gods in the Sk

꽉스 / 프랑스 / 2018년 / 110분 / 월드 판타스틱 레드

어쩌면 신은 냉정하고 무신경한 사디스트의 얼굴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절망에 빠진 사람들은 말한다. 만약 진짜 신이 있다면 어떻게 이렇게 불평등하고 불행한 상황들을 내버려둘 수 있냐고. 반대로 생각해보자. 인간은 절망스러울 때 진심으로 신을 찾기에 신이 점점 더 인간을 가혹한 상황 속에 빠트리는 것은 아닐까. 시몽은 현실이 버겁다. 어린 시절 자신의 잘못으로 사고를 당해 평생 침대에 누워 지내야 하는 여동생 에스텔을 돌봐야 한다. 적당히 비겁하고 적당히 착한 그는 우주 저편에서 초월적인 존재가 내려와 모든 상황을 정리해줄 것을 간절히 바란다. 신경쇠약 직전의 남자의 희망은 믿음이 되어버리고 시몽은 언젠가 다가올 그날을 위한 준비를 하나씩 수행해나간다. 영화는 냉소적인 태도와 시선으로 믿음과 연약함, 현실의 부조리 등을 날카롭게 헤집는다. 건조할수록 더욱 커져가는 상상력의 힘을 확인할 수 있다.

<영원한 족쇄> Chained for Life

에런 심버그 / 미국 / 2018년 / 91분 / 월드 판타스틱 블루

우리는 왜 공포영화에 매혹되는가. <영원한 족쇄>는 이 도전적인 질문에서 출발하여 관객을 서서히 물들여가는 영화다. 여배우 마벨은 공포영화에 캐스팅된다. 유럽의 거장 감독들과 함께 작업할 수 있다는 기쁨도 잠시, 언론에서는 영화를 향한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시각장애인 역할을 맡은 마벨은 다른 장애인 배우들과 함께 연기를 하는데 작품의 수준, 연기력, 장애인을 다루는 방식 등 영화에 대한 구설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미국의 한 공포영화 세트장에서 전개되는 영화는 고전 공포영화들을 연상시키는 매혹적인 장면과 색감으로 가득하다. 버려진 병원에서 촬영을 할수록 기이한 소문이 나돌고 인물들의 불안은 증폭된다. <영원한 족쇄>는 ‘왜 공포영화에 매혹되는가’로 출발해 ‘어떻게 불안을 퍼트려나가는가’로 전환되는 영화다. 공포물에 대한 메타영화이자 애정고백. 우아하고 섬세하다.

<이누가미의 결혼> The Dog Bridegroom

가타시마 잇키 / 일본 / 2016년 / 245분 / 월드 판타스틱 레드

아즈사는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동화의 힘을 믿는 꿈 많은 여성이다.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하지만 세상은 그녀의 노력을 외면하듯 뜻대로 흘러간 적이 한번도 없다. 초등학교 교사인 아즈사는 원인 모를 병으로 직장에서 쫓겨날 처지에 놓이고, 설상가상 오랫동안 사귄 남자친구에게 이별 통보까지 받는다. 그 순간 하늘에게 계시가 내려온다. ‘아모레이섬에 가서 보물을 찾아라.’ 아즈사는 그길로 어릴 적부터 옛날이야기로 들었던 남방의 한 섬으로 모험을 떠난다. 아즈사는 긴 여정을 통해 사기꾼 혁명가, 히키코모리 가수 등 기이한 사람들을 만나며 스스로 신화의 일원이 된다. 4시간에 이르는 긴 상영시간에 겁먹을 필요는 없다. 동화와 외설, 장난과 심각함을 넘나드는 영화의 온도는 전반적으로 경쾌하고, 속도도 느리지 않다. 종잡을 수 없는 전개가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장르들이 뒤섞인 잔칫상이라고 이해하면 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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