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코미디가 그리는 남녀 관계가 진짜라고 믿었다. 결혼하고 나서 그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로맨틱 코미디>는 오랫동안 사랑했던 장르가 “남성 시선에서 이상화된” 여성상을 강요해왔다는 것을 깨달은 엘리자베스 생키 감독의 에세이적 다큐멘터리다. 역대 로맨틱 코미디 영화 클립만으로 구성된 이 작품의 제작비는 1만8천파운드(약 2700만원).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지난 10년간 밴드 및 성우 활동을 하며 번 돈을 투자해 일군 성과다. 영화의 BGM도 모두 엘리자베스 생키 감독이 작사했으며 제레미 웜슬리 프로듀서(감독의 남편이다.-편집자)가 작곡했다. 장르를 총체적으로 분석하면서 주류 로맨스영화가 백인 이성애자 중심으로 편협한 세계만 재현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는 “<로맨틱 코미디>를 만들면서 오히려 이 장르를 더 좋아하게 됐다”고 한다. “여전히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1989)는 남녀 관점을 밸런스 있게 다뤄서 좋아하지만, <500일의 썸머>(2009)는 강력한 여성 혐오가 느껴져서 더이상 볼 수 없게 된” 것처럼, 장르 팬으로서 지나간 작품을 소비하는 나름의 방식도 찾았다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수동적인 여성상이 요구되기 이전에는 진취적인 여성상이 나오는 영화도 많았다. <그의 연인 프라이데이>(1940)의 힐디(로절린드 러셀), <뜨거운 것이 좋아>(1959)의 슈가(마릴린 먼로) 같은 캐릭터를 좋아한다.” 특히 섹슈얼한 에너지가 충만한 배우로 기억되는 마릴린 먼로가 강한 여성상으로 재평가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엘리자베스 생키 감독이 생각하는 이 장르의 미래는 비관적이지 않다. “<세이빙 페이스>(2004)의 여성 캐릭터들이나 최근 <롱샷>(2019)의 미 최연소 국무장관 샬롯 필드(샤를리즈 테론)”를 좋은 예로 꼽으며, “<빅 식>(2017),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2018)의 대중적 성공 이후 보다 다양한 형태의 로맨스를 다룬 작품도 나올 것”이라며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차기작은 극영화나 TV시리즈 형태로 로맨틱 코미디를 생각하고 있다고. “백인 이성애자가 아닌 캐릭터가 나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