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VR)과 공연이 만났다. 지난 6월 28일, 비욘드 리얼리티 섹션이 열리는 부천아트벙커B39에서 특별한 무대가 마련됐다. 대만 출신의 싱잉 천 감독이 연출하고 슈이 추 안무가가 춤을 춘 VR 영상 <애프터이미지 포 투모로우> 상영이 끝난 뒤, 슈이 추가 야외무대에서 영상 속 안무를 그대로 재현했다. 막 VR 장비를 머리에서 벗은 관객은 “와” 하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이 영상은, 종이로 뒤덮인 방에서 춤을 추는 남자(슈이 추)를 통해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기억이 클라우드에 저장된 메모리일까, VR일까 아니면 궁극의 인식일까라는 거대한 질문을 던진다. 싱잉 천 감독, 슈이 추 안무가가 VR 영상 밖에서 공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두 사람을 만나 첫 공연을 끝낸 소감부터 물었다.
-어젯밤 공연이 근사했다.
=싱잉 천_ 영상 속 안무를 실제 공간에서 공연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부천으로부터 좋은 제안을 받았다. 부천아트벙커B39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둘러보았는데 이곳이 과거 쓰레기 소각장이자 공장이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영화를 찍은 곳 또한 대만의 오래된 종이공장 자리였다. 많은 종이들을 아트벙커의 소품으로 배치한 것도 그래서다. 공간적인 연결성이 우연히 맞아떨어진 셈이다.
=슈이 추_ 영상을 완성한 뒤 어디서도 공연한 적 없었는데, 어제 공연해보니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어제 공연 당시 바람이 솔솔 불어와 소품으로 배치한 신문지가 날리는 풍경을 보니 시청각뿐만 아니라 오감으로 작품과 소통할 수 있어 좋았다.
싱잉 천_ 바람까지 계산한 것은 아니다. (웃음) 부천에 도착하자마자 공연할 야외무대부터 보았다. 매일 빛과 바람이 모습을 조금씩 달리해 이 미세한 차이가 공연과 관객에게 영향을 끼칠 거라고 보았다.
-이번 작품은 대만 가오슝 필름 아카이브가 VR 프로젝트를 함께 만들자고 제안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다. <신 인간 개> <작일적기억> <타이베이 팩토리> 등 극영화를 통해 대만의 현재를 카메라에 담아온 당신에게 VR 연출은 어떤 경험이었나.
싱잉 천_ VR 프로젝트 제안을 받으면서 흥미로웠고, 이 새로운 매체를 통해 무엇을 시도할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다. 전작을 통해 주인공이 어딘가로 떠나는 이야기를 많이 다뤘다. 예전에 작업한 바 있는, 대만 최고의 현대무용 안무가 중 한명인 슈이 추에게 작업하자고 제안했고, 시나리오를 함께 써내려갔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글로 기록했고, 이후 영상을 만들다가 지금은 기억이나 추억을 인터넷 클라우드에 업로드하는 시대가 되지 않았나.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경험이 메모리인지, VR인지 아니면 궁극적인 인식인지를 이 작품을 통해 질문하고 싶었나.
-안무를 구상하는 과정에서 어떤 고민을 했나.
슈이 추_ 죽음이라는 레이어를 하나씩 걷어내면 결국은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는 게 아닐까. 물리적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건 불가능하지만, VR 영상 속 안무를 통해 관객이 그러한 생각을 직접 체험할 수 있었으면 했다. 예전에 호텔 방에서 한명의 관객 앞에서 공연한 적 있는데 VR 장비만 사용하지 않았을 뿐이지 그것이야말로 진짜 VR 같은 체험이었다. 그 작품을 했던 경험이 안무를 구성하는 데 많은 영감을 주었다. 이번 작품은 나를 포함한 대만 무용수 66명이 종이만 있는 공간에서 단체로 춤추는 광경을 가까이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남자의 방, 66명의 안무가가 춤을 추는 종이공장 등 공간이 중요한데.
싱잉 천_ VR 프로젝트가 처음이었던 까닭에 공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관객이 진짜처럼 느낄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다. 머릿속으로 생각한 아이디어와 실제 VR 기술을 접목했을 때 이미지가 달라 배우 배치, 카메라와 피사체의 거리 등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써야 했다. 홍콩의 VR 스튜디오로부터 기술적인 도움을 많이 받았다.
-차기작은 무엇인가.
싱잉 천_ 극영화 트리트먼트를 쓰고 있다. 이번 영상을 작업하면서 VR과 관련된 새롭고 흥미로운 아이디어가 많이 생겼다. 어제 공연을 계기로 갤러리든 공원이든 공연 투어를 하면 어떨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VR은 계속 발전하고 있는 분야라 앞으로 배워야 할 게 많다. 좀더 지켜볼 생각이다.
슈이 추_ 이번 공연을 통해 이 작품이 계속 확장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이 공연을 다른 곳에서 선보인다면 그곳의 공간에 맞게 새로운 형식으로 진화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작품이지만 관객은 공간에 따라 각기 다른 체험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