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발견한 새로운 한국영화들, 감독들①] <야구소녀> 최윤태 감독 - ‘편견’에 대해 더 이야기하고싶다
2019-10-23
글 : 장영엽
사진 : 최성열

“<씨네21>에 실린 <야구소녀> 프리뷰를 보고 새벽에 아내를 깨워 함께 기뻐했다.” 부산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 부문 상영작 <야구소녀>는 최윤태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첫 관객과의 대화(GV)를 앞두고 인터뷰에 응한 그는 우황청심환까지 챙겨먹었다며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영화제를 찾은 관객은 신인감독 최윤태가 자신의 첫 장편영화에 담은 진정성과 진심에 기꺼이 마음을 주었다. <야구소녀>는 올해 부산영화제 기간 동안 관객 사이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한국영화 중 하나다. 지난해 <메기>로 부산영화제에서 ‘올해의 배우상’을 수상한 배우 이주영이 주연을 맡은 이 작품은 프로야구선수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자 고등학생 수인(이주영)의 이야기를 다룬다. 한해가 다르게 벌어져만 가는 남학생들과의 물리적 힘의 차이는 수인을 좌절시키고, 주변에서는 여자가 프로야구선수가 되는 건 아무래도 어렵겠다며 포기를 종용한다. 하지만 청소년기 소녀의 좌절된 꿈과 여성에게 가로막힌 기회의 문을 얘기하며 비관적으로 흘러가리라 짐작되던 이야기는 뜻밖의 우회로로 향한다. 무엇보다 수인은, 다른 사람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는 소녀다. 모두가 불가능하겠다고 말할 때에도 그는 프로야구선수라는 자신의 꿈을 놓지 않고, 스스로의 잠재력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런 수인의 의연함은 닫혀버린 기회의 문 앞에서 세상에 냉소적인 태도를 갖게 된 주변 사람들까지 변화시킨다. 그리고 영화는,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치열하게 고민하는 이 소녀에게 현실적인 성취의 순간을 안겨준다. 백번의 도전 끝에 포수의 글러브에 내리꽂히는 단단한 한번의 스트라이크. <야구소녀>는 이처럼 묵직한 성취의 쾌감을 안겨주는 스포츠드라마이자 여성 성장담이다. 잔잔하지만 힘 있게 드라마를 이끌어가면서, 관객이 영화 주인공을 응원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연출력은 신인감독 최윤태의 이름을 주목하게 한다.

“야구보다 농구를 더 좋아한다”는 최윤태 감독이 <야구소녀> 이야기를 구상하게 된 건, 지난 2017년 야구하는 여학생의 인터뷰를 접하고 나서였다. “아내가 먼저 인터넷에서 이런 기사를 읽었다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야구선수를 꿈꾸는데, 여자로서는 프로야구선수가 될 확률이 거의 없으니 너무 안타깝다고 하더라. 마침 미국 프로농구가 드래프트를 진행하던 때였는데, 문득 여자 야구선수가 프로선수가 되기 위해 드래프트에 참가하는 이야기를 쓰면 의미 있는 작품이 나오겠다고 생각했다.” 야구라는 스포츠 경기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그는 국내 최초의 여자 야구선수인 안향미의 논문과 인터뷰를 읽고, 여자 야구선수들을 찾아가는 한편 현재 프로로 활동 중인 야구선수, 프로 진출에 실패한 선수, 고교 야구선수 등 야구와 관련된 사람들을 취재하며 <야구소녀>의 시나리오를 집필해나갔다. 그 과정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건 여자 야구선수들이 수없이 경험해야 했던 편견 섞인 부정의 언어였다고 최윤태 감독은 말한다. “‘너는 해봤자 안 되는 걸 왜 하냐’, 여자야구선수들은 이런 이야기를 일상적으로 들으며 야구를 했다. 프로야구에 도전하려 해도 도전조차 받아주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고.” 이처럼 시도해보기도 전에 당사자를 주저하게 만드는, 강력한 부정의 언어는 <야구소녀>의 에피소드 곳곳에 녹아들어 있다.

하지만 수인이 그러한 부정의 언어에 잠식당하지 않고, 자신의 물리적인 한계보다는 기술적인 장점을 찾는 데 주력하며 재능 있는 야구선수가 되어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 계기는 최윤태 감독의 자전적인 사연과 무관치 않다. “어렸을 때부터 언어장애가 있었다. 사람들과 소통하는 게 힘들어서, 유년 시절의 대부분을 집에서 책 읽고 영화 보며 보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부터 사람들과 원활하게 소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을 많이 했고, 영화와 책을 많이 보았으니 이야기를 써서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 내 장점이 될 수 있겠다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 나처럼 누군가에겐 단점으로 비치는 특성이 사실은 장점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세상의 편견을 유연한 태도로 돌파해나가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최윤태 감독의 자전적인 경험과 맞닿아 있다면, 주인공 수인에게 현실감을 불어넣는건 배우 이주영의 몫이었다고 최윤태 감독은 말한다.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자기 중심이 단단히 잡힌, 강인한 내면의 여자 배우를 원했는데 이주영 배우는 여기에 연기력과 운동 능력까지 갖추고 있으니 그야말로 적역이었다. 이주영 배우가 고민한 건 어떻게 하면 수인이 주체적으로 보여질지에 대한 것이었다. 물론 수인이를 돕는 수많은 사람들이 주변에 있지만 누군가에게 끌려다니는 게 아닌,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여성이었으면 한다고 이주영 배우는 생각했고, 그런 점에서 배우에게 많이 의지하며 캐릭터를 만들어나갔던 것 같다.”

<야구소녀>는 한국영화아카데미 장편제작 연구과정의 일환으로 완성된 작품이다. 하지만 최윤태 감독은 첫 장편영화 이전에 <가문의 영광> 시리즈 연출부, <죽어도 해피엔딩>의 조감독, <손님>의 현장 편집기사로 활동하는 등 15년여간 다양한 루트로 영화 현장을 경험했다. 하루에도 예기치 못한 위기가 몇번씩 닥쳐오는 현장에서, 그는 상업영화 현장에서의 경험이 크게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소외계층 소년이 겪는 시련과 갈등, 치유에 대한 단편영화 <시험비행>(2012), 아이들의 일상에 ‘현실’이 들어오는 순간을 조명한 단편 <가슴의 문을 두드려도>(2016), 장편영화 <야구소녀>로 이어지는 최윤태 감독의 영화 속 핵심 키워드는 ‘편견’이다. 살아오면서 수많은 편견을 직접 경험한 사람으로서, 앞으로도 ‘편견’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그는 말한다. 편견에 맞서고 한계에 도전하는 인물들에 대한 감독의 진심이 느껴지는 포부다.

<야구소녀>는 어떤 영화?

한때 천재 야구소녀로 불렸던 수인(이주영)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남자 학생들에게 뒤처지는 자신을 발견한다. 과거 상대도 되지 않았던 리틀 야구부 동기가 어느새 키 큰 소년이 되어 프로야구선수가 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모두가 그만두라고 말할 때에도 수인은 절대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의 바람은 ‘여자’ 야구선수가 아니라 프로야구팀의 일원이 되어 모두에게 인정받는 것이다. 한편 프로 진출이 좌절된 뒤 수인의 고등학교에서 일하게 된 최 코치(이준혁)는 수인에게서 과거 자신의 모습을 본다.

최신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