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발견한 새로운 한국영화들, 감독들⑤] <남매의 여름밤> 윤단비 감독 - 공감과 위로 머금은 가족영화
2019-10-23
글 : 김현수
사진 : 최성열

“다만 몇명이라도 그들의 마음에 깊게 다가갈 수 있는 영화였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만들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분들이 위안을 얻었다고 해줘서 고마웠다.” 올해 부산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 비전 부문에 초청된 영화 <남매의 여름밤>의 윤단비 감독은 자신의 영화에 공감과 지지를 보내준 관객에게 오히려 감독 자신이 위로를 받았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단국대학교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 7기 졸업작품인 <남매의 여름밤>은 영화제 기간 내내 관객의 열띤 응원에 힘입어 폐막식에서 넷팩상(아시아영화진흥기구, NETPAC)과 KTH상, 한국영화감독조합상, 시민평론가상 등 4관왕을 수상했다.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이 SNS에 “올해의 베스트”라거나, “지난해 부산에 <벌새>(2018)가 있었다면 올해는 <남매의 여름밤>이다”라는 식의 찬사를 쏟아냈던 반응과 더불어 겹경사를 맞은 셈이다. 제목에서 연상되듯 어느 평범한 남매가 여름방학 기간에 겪는 일상의 이야기를 다룬 <남매의 여름밤>은 아이들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어른들의 사정, 그 지난한 가족 갈등의 역사를 파고드는 영화다. 부산영화제 정한석 프로그래머가 이 영화의 소개글을 쓰면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향력을 확연히 감지하게” 되는 영화라고 했는데 그 표현이 딱 어울린다. 아이들의 눈을 통해 바라보는 가족의 민낯, 어른들의 역사를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2011)이나 에드워드 양 감독의 <하나 그리고 둘>(2000), 멀게는 허우샤오시엔 감독의 <동동의 여름방학>(1984) 같은 영화들, 그러니까 동아시아의 거장감독들이 천착했던 미학적 형식과 주제의식을 계승하는 영화라 할 수 있다.

갑작스레 이사를 가야 할 처지에 놓인 두 남매, 옥주(최정운)와 동주(박승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 집에 얹혀살려는 다소 유약해 보이는 아빠(양흥주)의 무거운 어깨처럼 언제 무너져내릴지 모를 불안한 세계다. 그런데 영화는 관객을 위태로운 가족의 위기 속으로 마구 내몰거나 어떤 가족의 해체 과정을 밀도 있게 묘사하는 데는 크게 관심이 없는 듯 보인다. 때로는 관조적으로 느껴지는 담담한 카메라와 낭만적이라고까지 여겨질 만큼 천진한 아역배우들의 연기가 한 남매의 여름방학에 찾아온 위기를 다소 안심하고 바라보게 해준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가 다루는 갈등의 깊이가 얕거나 미학적 장치가 허술하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이야기의 시작은 할아버지의 유산을 탐내는 가족들의 블랙코미디였다. 그런데 기획을 발전시키는 단계에서 스탭 회의를 하다가 ‘솔직하지 못한 이야기 같다’는 의견을 듣고 진지하게 고민하게 시작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는 뭘까. 내가 마음속 깊이 지닌 어떤 트라우마와 직면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진정성을 획득하고자 영화의 방향을 완전히 틀어 다시 시작했다.” 애당초 1학기에 시나리오 심사를 거쳐 1학기 말에 촬영하고 2학기에는 편집과 완성을 해야 하는 스케줄이었지만 윤단비 감독은 시나리오를 뒤집고 다시 시작하는 바람에 촬영 일정을 지키지 못해 다른 감독들이 촬영을 끝내고 편집하는 동안 늦게 촬영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적은 예산의 영화라 사실상 도와주듯 작품에 참여한 스탭들의 애정과 진솔한 채찍질이 없었다면 지금의 <남매의 여름밤>은 나올 수 없었을지 모른다.

윤단비 감독이 <남매의 여름밤>을 만들면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연출 포인트 중 하나는 “다른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가 그들의 어떤 기억, 경험을 환기시켜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거였다. 이는 <남매의 여름밤>이 사건을 다루는 방식과 연관이 있다. 영화는 관객으로 하여금 어떤 심각한 갈등이나 혹은 어떤 관계의 이면에 깊이 다가가게 하지 않고 옥주의 시선 즈음에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서 보게끔 유도한다. 윤단비 감독이 의도했던 관객과 영화 사이의 그 거리와 공백이 <남매의 여름밤>에 더욱더 공감하게 만들어준 것이다. 이같은 미학적 접근은 일정한 거리두기를 시도하는 미니멀한 촬영방식에서도 드러난다. 이에 대해 감독은 “스토리보드를 만들지 않고 김기현 촬영감독과 영화에 대해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촬영 전에 인물을 공간에 어떻게 배치할 것인지 각만 잡아놓고 들어갔다. 아무래도 내가 좋아하는 에드워드 양, 오즈 야스지로 등 여러 아시아 감독들의 영화에서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안녕하세요>(1959)를 보고는 “마치 그가 나를 잘 알고 있는 것 같은” 감동을 받았던 윤단비 감독은 연극영화과에 진학해 연출을 공부하고는 몇편의 상업영화 현장에서 데이터 매니저로 일했다. 현재 <7번방의 선물>(2012), <82년생 김지영> 각본을 집필한 유영아 작가를 주축으로 한 팀 ‘글뫼’에 소속되어 영화와 드라마 대본 작업을 함께하고 있는 윤단비 감독은 곧 있을 서울독립영화제 초청과 몇 군데의 해외 영화제 출품을 앞두고 있다. “아직 졸업 전이라 본격적인 배급 논의는 하지 못한 상태”지만 극장에서 더 많은 관객과 만날 기회를 기다리는 중이다. “다음 영화도 저예산 규모의 비슷한 결을 가진 영화를 했으면 좋겠는데 어른들의 이야기를 할지, 연애 이야기를 한번 해볼지 고민 중이다. 그러니까 아직 진행하고 있는 이야기가 없다는 뜻이다. (웃음)” 마지막으로 <남매의 여름밤>은 10대의 시선에서 가족의 위기와 해체를 바라보는 <벌새>, <영주>(2017), <살아남은 아이>(2017) 같은 최근의 한국독립영화들과도 궤를 같이한다. 이같은 젊고 신선한 감독들의 날카롭고 묵직한 시선의 궤적은 2019년의 한국 독립영화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줄 중요한 움직임으로 기록될 것이다.

<남매의 여름밤>은 어떤 영화?

남매인 옥주(최정운)와 동주(박승준)는 가세가 기울어진 탓에 아빠와 함께 여름방학 기간 동안 할아버지 집에 잠시 기거하게 된다. 마침 남편과 소원해진 고모도 캐리어를 끌고 할아버지 집을 찾는다. 마치 전화위복이 되었다는 듯, 다섯 식구 대가족이 되어버린 옥주와 동주는 잠시 화기애애한 일상을 보낸다. 아빠와 고모가 옥주의 할아버지 집에 머무는 기간이 길어지자, 두 사람은 병세가 심해지는 할아버지의 요양원행을 알아보기 시작하고 이 사실을 눈치챈 옥주는 화를 낸다. 어느 여름방학 동안 벌어지는 어른들의 갈등과 변화를 아이들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 영화다. 나른하지만 위태로운 가족의 위기를 관조하듯 바라보는 카메라의 시선과 연출이 신인감독 영화답지 않게 안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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