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도맹수(김도윤)의 삶엔 답이 없다. 사채업자의 빚 독촉에 시달리는 그는, 매일 밤 영웅들이 나오는 액션영화를 보다 잠드는 아내 리아(장진희)를 지켜보며 열등감과 죄책감에 사로잡힌다. 빚의 압박이 극심해지자 맹수는 아내에게 위장 이혼을 제안하고 둘은 잠시 헤어지는데, 얼마 못 가 운명의 장난처럼 로또 복권 1등에 당첨된다. 올해 부산영화제 뉴커런츠 부문에 초청돼 KTH상을 수상한 봉준영 감독의 데뷔작 <럭키 몬스터>는 “초능력으로 돈을 받은 남자가 아내를 구하려는 슈퍼히어로영화”다. 도스토옙스키의 잠언 “돈은 주조된 자유다”를 인용한 봉준영 감독은 “이제는 돈이 자유를 넘어서 거의 초능력 수준의 가치로 자리 잡았다”고 세태를 진단한다. 이런 문제의식은 <럭키 몬스터> 속 맹수가 인간관계나 생활의 질을 비롯한 삶의 모든 조건을 돈에 저당잡힌 것으로 묘사되면서 더욱 명징하게 처리된다. 여기에 감독은 확성기를 들고 비틀린 현실을 부각해줄 영화적 장치를 더했다. 바로 악마처럼 맹수의 머릿속을 맴돌며 극단적인 생각을 추동하는 또 다른 인격 ‘럭키 몬스터’(박성준)다. 라디오 DJ처럼 실시간으로 방송을 일삼는 이 목소리는 어느새 환청을 넘어 환영으로 나타나 영화의 기이함을 더한다.
봉준영 감독은 한국영화아카데미 재학 시절에 만든 단편영화 <헤르츠>(2016)에서 이미 환청을 소재로 활용한 적 있다.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파이트 클럽>(1999)처럼 인물의 내면을 표현해줄 대상이 필요했다. 환청에 가까운 소리들이 중간 지점 무렵에 시각화되고, 이후에는 마치 생방송 토크쇼 같은 형태를 취하는 점진적인 증폭의 구성을 취했다.” 두 남녀가 같은 환청을 듣게 되면서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가는 <헤르츠>는 실은 더 큰 규모의 SF영화를 만들고자 했으나 예산 문제로 사운드를 적극 활용하게 된 경우였다. 한국영화아카데미의 장편 기획 과정을 통해 탄생한 <럭키 몬스터> 역시 “예산 운용이 매우 절박한” 영화였다. 이는 봉준영 감독이 B급 누아르를 표방한 양식적인 미장센의 완성도를 중시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럭키 몬스터>는 적은 예산 내에서 조밀하고 알차게 짜인 프로덕션의 완성도에 특히 눈길이 가는 작품이다.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2002), 존 부어먼 감독의 <포인트 블랭크>(1967) 같은 작품들이 가진 하드보일드한 색채, 주인공을 희화화하고 엇박자의 코미디를 더하는 태도까지 봉준영 감독의 취향을 한껏 담고 있다. “상업영화처럼 스탭들에게 좋은 처우를 해주지 못하는 데서 오는 압박감도 있었고, 원하는 퀄리티를 뽑아내기 위해 선택하고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많았다”는 감독. 그는 특히 조명이 영화의 완성도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더욱 앵글에 신경썼다. 우리 영화엔 생각보다 돌리숏(트래킹)이 많은데, 이를테면 로케이션 수를 줄이고 한 장소에서 안정적으로 시간을 투자해서 장면 구성에 집중하고자 했다.” 고심 끝에 완성된 <럭키 몬스터>의 세계는 동시대 같기도 하고 90년대 같기도 한 묘한 시대감을 준다. “시대배경을 일부러 애매하게 표현한” 데에는 자본주의의 폐해에 스스로 몸을 적시는 인간 도맹수가 보다 본질적인 의미로 해석되었으면 하는 감독의 바람이 있었다. 보편의 인간형으로서 겉보기엔 매우 소심하지만 내면에 억압된 광기를 품고 있는 인물을 구상하던 차, 나홍진 감독의 <곡성>(2016)에서 천주교 부제 양이삼을 연기한 배우 김도윤이 봉준영 감독에게 완벽한 확신으로 다가왔다.
흠잡기 어려운 장르적 완성도와 달리 <럭키 몬스터>에는 염려스러운 지점도 있다. 부패한 초능력으로서의 돈과 한 남자의 오랜 열등감이 애꿎은 피해자를 양산한다는 점이다. 특히 무기력한 아내이자 로또 당첨에 의기양양해진 도맹수의 트로피처럼 활용되는 아내 리아 캐릭터가 그렇다. 감독은 “인간의 이상한 면에 관심이 많다. 사람에 대해 마냥 긍정적으로 바라보지는 않는다. 염세와 절망이 큰 시대다”라고 말한다. 그는 맹수가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굉장히 유아적인 캐릭터”라는 데 방점을 찍었다. “SNS에서 자신을 뽐내고 과시하는 사람들의 존재감이 커 보이지만 그들은 빙산의 일각일 뿐, 그 아래쪽에서 반대급부로 점점 더 억눌리는 집단의 규모가 훨씬 거대해지고 있다.” 잘 보이지 않지만 어쩌면 대다수일 사람들, 봉준영 감독이 그중 집어낸 꽤 극단적인 표본은 <럭키 몬스터>에서 장르적 쾌감과 현실의 불쾌감을 동시에 낳고 있다. 봉준영 감독은 30대가 지나 한겨레영화학교에서 처음 단편영화를 찍으며 영화를 배웠다. “그전엔 만화를 즐겨 보던 소비자에 가까웠던” 감독은 자신을 “이상한 걸 되게 많이 찾아보던 사람”이라고 수식했다. 편집은 유튜브로 배웠고, 쿠엔틴 타란티노를 무척 좋아하며, 그에게 디지털영화는 “나같은 사람도 영화를 할 수 있게 된 무척 중대한 변화”다. 데뷔작으로 단번에 장르적 뚝심을 내보인 봉준영 감독의 다음 목표는 미스터리 공포물이다. “호러 장르로 규정하면 너무 좁아질 것 같고, 영화적 체험을 위해 맘껏 달려나가는 작품을 쓰려고 한다.”
<럭키 몬스터>는 어떤 영화?
다단계 회사에서 영업직으로 일하는 도맹수. 그는 사채업자에게 쫓기고 있고, 위장 이혼에 합의한 아내 리아는 집을 나간 뒤 연락이 닿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좌절한 맹수의 삶에 로또 1등 당첨이라는 엄청난 사건이 도래한다. 영화는 소심한 맹수의 또 다른 자아 ‘럭키 몬스터’가 시종 시끄럽게 라디오 방송을 펼친다는 설정을 동원해 비정한 심리극을 펼친다. B급 누아르를 표방한 단단한 장르적 터치와 아내를 찾는 로드무비 구조 속에서, 소시민에게 오랜 시간 내재된 분노와 피해의식이 뿜어져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