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발견한 새로운 한국영화들, 감독들②] <에듀케이션> 김덕중 감독 - 감동이라는 클리셰에서 자유롭게
2019-10-23
글 : 이주현
사진 : 최성열

“이 영화가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없었다.” 김덕중 감독의 <에듀케이션>은 올해 부산영화제 뉴커런츠 상영작으로 세상에 처음 공개됐다. 뉴커런츠는 아시아의 재능 있는 젊은 감독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국제경쟁 섹션. 뉴커런츠 초청이라는 경사가 있기 전까지 김덕중 감독은 단국대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 졸업작품이자 자신의 첫 번째 장편영화인 <에듀케이션>을 어떻게 세상에 공개할 수 있을까 그 방법을 고민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부산영화제로부터 “뜻밖의” 연락을 받았다. “부산영화제라니! 내겐 아득하기만 한 영화제였는데.” 그런 부산영화제에서 <에듀케이션>은 ‘올해의 배우상’까지 수상하는 영광을 누린다.

<에듀케이션>은 장애인 활동지원 서비스를 하는 성희(문혜인)와 중증 장애인 어머니를 둔 10대 현목(김준형)의 만남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김덕중 감독의 경험이 영화의 출발점이 되었다. 김덕중 감독은 20대 때 석달 정도 장애인 활동지원 서비스를 한 적이 있고, 영화에도 등장하는 노들장애인야학에서 영상취재 일을 한 경험도 있다. “장애나 장애인 활동지원 이야기가 내게는 익숙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겐 생소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더불어 지금까지 한국영화에서 더 이야기되어야 하지만 덜 이야기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직업적 책임감과 전문성을 갖추지 않은 사람들이 장애인 활동지원 서비스를 하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가 영화의 밑바탕에 깔려 있지만, <에듀케이션>은 장애인 이슈를 사회적으로 환기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영화는 아니다. 장애인 이슈는 뒷전에 물러나 있는 모양새고, 이 시대 젊은이들의 초상을 극사실적으로 소묘한 캐릭터들이 전면에 배치돼 흥미로운 행동과 반응을 보여준다.

영화는 성희가 아무렇지 않게 사람들 틈을 비집고 새치기해 버스를 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어지는 장면에서도 성희는 장애인 활동지원 서비스 담당자에게 막무가내로 떼를 쓰며 요구한다.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는 장애인 여성에게 담배를 물려주는 장면에선 기어이 웃음이 새어나온다. 장애 여성이 담배를 물렸다 빼는 동작이 너무 빠르다고 불평하자 성희는 답한다. “담배는 스피드야!” 장애나 사회복지를 테마로 하는 영화에는 클리셰가 있다. 선의와 감동에 대한 강박 같은 것들. <에듀케이션>엔 그런 클리셰가 없다. 대신 영화는 비논리적인 주장과 이상한 현실 회피가 몸에 밴 인물들의 예측 불가능한 행동을 사실적으로 담아낸다. 다큐멘터리의 한 토막 같은 연기와 미장센은 의도의 적중 여부를 떠나 그 자체로 신선하다. 울퉁불퉁한 이야기와 거칠거칠한 캐릭터 그리고 그 질감을 생생하게 살려낸 배우들의 연기. <에듀케이션>의 가장 큰 매력이 바로 여기 있다.

“캐릭터가 우선이라 생각했다. 제작비가 많지 않아 프로덕션의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영화의 총체적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서라도 주인공 캐릭터가 중요했다. 거의 모든 장면에 주인공 성희가 등장하는 만큼, 캐릭터가 중심을 잃어버리면 영화도 엉망이 될 거라 생각했다.” 김덕중 감독의 말처럼 영화를 앞서서 이끌고 가는 것은 주인공 성희다. 성희는 오랫동안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고, 돈을 모아 스페인으로 떠날 생각을 하고 있으며, 장애인 활동보조인으로서의 직업적 의무감이나 책임감 없이 ‘아르바이트’의 개념으로 일을 한다. 그러다 그녀가 만난 10대 현목은 성희를 가사도우미쯤으로 여기며 집 안을 한껏 어지르는 대책없는 청소년이다. “성희는 내 안의 나쁜 모습을 극대화한 캐릭터라 할 수 있다. ‘내 삶이 너무 어렵고 힘드니, 불쌍한 나는 조금 이기적으로 행동해도 돼.’ 그런 마음을 부풀린 캐릭터랄까. 반면 현목은 순수한 악의 모습을 생각했다. 사람들의 동정심을 이용하기도 하는 철없는 미성년이라는 코드가 중요했다.”

<에듀케이션>이 선사하는 깊은 몰입감은 낯선 캐릭터를 더욱 특별하게 빚어낸 배우들의 연기 덕이 크다. 아니나 다를까 <에듀케이션>의 두 배우 문혜인과 김준형에게 제24회 부산영화제 ‘올해의 배우상’이 돌아갔다. 연기하고 있다고 인식되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연기를 하는 배우 문혜인의 존재감은 남다르다. 문혜인의 연기는 너무 매끈해서 감탄하게 되는 연기와는 거리가 멀다. 김용삼 감독의 단편 <혜영>(2016)에서도 보여준 바 있는 편안하고 꾸밈없는 연기는 <에듀케이션>에 이르러 만개한다. 김덕중 감독 역시 <혜영>을 보고 “성희와 딱 맞겠다” 싶어 문혜인 배우를 캐스팅했다고 한다. 반면 김준형 배우는 캐스팅 당시 단편영화 한편을 찍어본 게 전부인 신인 중에서도 신인이었다. 김덕중 감독은 “20대 배우가 10대를 연기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경험이 부족하더라도 10대의 배우를 캐스팅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김덕중 감독은 뻥 뚫린 고속도로가 아닌 굽이길을 갈지자로 걸어 영화라는 길에 이르렀다. 영상취재와 연극 기획 일을 하다가 감독이 되려면 무릇 다양한 경험을 쌓아야 한다는 생각에 우즈베키스탄에 봉사활동까지 갔다. 그러다 돌아와 단편 <더 헌트>(2016)를 찍고 단국대 대학원에 입학했다. “아직은 감독으로서 나만의 스타일과 색이 뭔지 모르겠다.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산업 안에 존재하는 영화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첫 영화에 자신의 스타일을 새기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김덕중 감독은 <에듀케이션>에 자기만의 색을 입혔다. <에듀케이션>을 보고 나면 김덕중 감독의 개성 있는 캐릭터들을 또 다른 상황, 또 다른 장소에서 다시 만나고 싶어질 것이다.

<에듀케이션>은 어떤 영화?

성희(문혜인)는 장애인 활동지원 서비스를 하고 있다. 새롭게 배정받은 곳은 현목(김준형)의 집. 현목의 집에는 몸을 움직일 수 없어 하루 종일 누워 있는 중증 장애인인 현목의 엄마가 있다. 성희는 별 어려움 없이 활동시간을 채울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10대 현목은 집 안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청소를 요구하는 등 성희를 불편하게 만든다. “활동보조사가 가사도우미는 아니거든요.” “활동하시는 게 없는데 뭘 보조해요?” 만날 때마다 티격태격하던 두 사람. 시간이 흐르면서 성희는 관심을 필요로 하는 현목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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