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디즈니 픽사 신작 애니메이션 '소울' 아시아 첫 공개
2020-11-03
글 : 송경원
비주얼, 유머, 감성, 메시지까지 픽사스타일
<소울>

10월 26일 오후 8시, 어둠이 내리고 영화의전당 야외 스크린에 불이 켜진다. 디즈니·픽사의 신작 애니메이션 <소울>의 아시아 프리미어 상영 관람을 위해 삼삼오오 모여든 사람들의 얼굴은 기대와 뿌듯함으로 상기되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올해 부산영화제 예매 전쟁에서 가장 치열했던 작품이 <소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오픈 시네마가 야외상영관 600석의 관객을 받는 데 반해 <소울>은 보안상의 이유로 278석만 열렸다. 영화의전당 주변까지 삼엄한 보안 검색이 이뤄지는 가운데 드디어 <소울>의 상영이 시작됐다.

영화 상영에 앞서 감독을 맡은 피트 닥터가 <소울>을 만들게 된 계기에 대해 짧게 설명을 보탰다. 사춘기 소녀인 딸을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다는 전작 <인사이드 아웃>처럼 <소울> 역시 지극히 사적인 호기심에서부터 출발한다. “올해 23살인 아들이 태어났을 무렵 떠올린 아이디어가 있다. 갓난아기인 아들을 처음 볼 때부터 고유한 성격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것이 <소울>의 모티브가 됐다.” 기발한 아이디어를 확장시킨 <소울>은 영혼들이 성격을 트레이닝하는 ‘태어나기 전 세상’의 이야기를 다룬다.

조 가드너(제이미 폭스)는 재즈에 인생을 건 피아노 연주자다. 그는 언젠가 뉴욕 최고의 재즈 클럽에서 활약할 날을 꿈꾸지만 현실은 중학교에서 밴드를 담당하는 음악 선생이다. 조의 어머니는 조가 불안정한 연주자보다 정규직 교사가 되길 원한다. 어느 날 조는 재즈 클럽에서 대타로 연주할 기회를 얻지만 너무 기뻐 흥분한 나머지 그만 맨홀 구멍에 빠져 사망하고, 영혼들이 머무는 ‘태어나기 전 세상’으로 간다. 생에 미련이 남은 조는 어떻게든 지구로 다시 돌아가고자 애쓴다. 그러던 중 조는 수천년 동안 환생하지 않고 있는 말썽꾸러기 영혼 22(티나 페이)를 만나고 22의 멘토가 되어 영혼 상태에서 지구로 귀환할 방법을 찾는다.

피트 닥터와 캠프 파워스가 각본과 공동 연출을 맡은 <소울>은 적어도 두 가지 지점에서 놀라움을 안긴다. 하나는 디즈니·픽사의 검증된 스토리텔링 방식이다. 사후세계, 정확히 태어나기 전 세상을 그리는 아이디어도 기발하지만 그걸 성립시키는 것은 검증된 캐릭터 구도에 있다. 꿈과 열정에 매달리는 조와 지구에 가길 거부하는 허무주의자 22의 조합은 그것만으로도 풍성한 대화를 자아낸다. 둘이 티격태격하는 와중에 이어지는 논쟁은 삶의 여러 속성을 통찰하는 예리함이 있다. 무엇보다 그 과정을 재미있게 전달하는 균형 감각이 일품이다. 두 번째로 애니메이션을 대하는 픽사의 태도에서 정점에 선 스튜디오의 자신감이 엿보인다. 실사를 모방하며 기술력을 과시하는 대신 과장, 생략, 역동적인 움직임으로 대표되는 애니메이션의 특성을 최대한 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재즈를 소재로 한 만큼 풍성한 명곡의 향연도 빼놓을 수 없다. 한편 공동감독 캠프 파워스를 필두로 흑인 창착자들이 대거 참여한 디즈니 특유의 접근 전략 역시 감성의 디테일을 보태는 데 도움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인사이드 아웃>이 우리의 감정을 탐구했다면 <소울>은 내가 누구이고 어디서 오는지를 질문한다.” 피트 닥터의 설명은 이 영화의 핵심을 명쾌하게 짚어준다. <소울>은 죽음을 경험한 남자가 영혼이 되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아가는 이야기다. 주제 자체는 별다를 것이 없다. 삶은 소중하고, 지금을 즐겨야 하고, 당신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축복이라는 말씀. 서점의 자기 계발 코너나 힐링 코너에 가면 볼 수 있는 삶과 죽음에 대한 통찰이 담긴 닳고 닳은 문구의 나열, 반복이다. 하지만 가만히 영화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익숙하다 못해 식상한 이 격언들이 스며들어 가슴을 울리고 어깨를 토닥여주는 기적을 체험할 것이다. “비주얼, 유머, 감성, 메시지까지 픽사의 정점을 찍다”(<인디펜던트>)는 찬사에는 한치의 과장도 없다. 픽사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갱신하며 완벽의 영역으로 나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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