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제7회 <씨네21> 영화평론상 [6] - 우수상 수상자 정사헌 인터뷰
2002-05-17
글 : 김혜리
사진 : 정진환
“감독에게도 영감 주는 비평을 쓰겠다”

정사헌(28)씨는 영화와 담담하지만 오랜 연애를 했다. 고교 시절 시네필의 자부심은 대학이라는 대처에 나와 곧 무너졌지만, 그는 대학 1학년 때 영화평을 쓰겠다고 먹은 마음을 군복무 기간 동안 잘 간수했다가 제대 뒤 영상원으로 학적을 옮겼다. 그쯤이면 추억담도 많을 만한데 그의 머릿속은 온통 현재로 가득 차 있었다. 처음 반한 영화의 기억을 묻는 질문을, 대신 최근 관심을 두는 영화를 말하면 안 되겠냐고 부드럽게 물리칠 만큼. 그럴 만도 하다. 영상원 예술사 과정 영상이론과 졸업반인 그는 이제 영화와 어떤 식으로 동거하며 살아갈 것인가 현실적인 방도를 결정해야 하는 시점을 맞았다. 그러나 평론과 이론, 연출 가운데 어떤 길을 고르건 아직 영화는 생각할 거리가 너무 많이 남은 주제라는 ‘공복감’이 정사헌씨를 이끄는 에너지가 될 거라는 사실은 분명해 보였다. 지난해 <씨네21> 평론상 공모에 ‘한국영화에 나타난 리미날리티(liminality: 도피, 해방, 축제의 공간) 공간 분석’을 제출한 바 있는 그는 두 번째 노크로 문을 열었다. 근황에 관한 물음에 정사헌씨는 연신 긴장과 초조를 말했다. 그것들은 오래지 않아 시작하는 영화 글쟁이에게 요긴한 힘이 될 듯했다.

-이론 비평을 <꽃섬>이라는 영화 한편의 구조분석에 바친 특이한 응모작이었다.

=본래는 포스트누아르, 네오누아르론을 쓰려고 했으나 <꽃섬>을 본 뒤 생각을 바꿨다. 그것도 특정 장면, 버스가 산중에 이르는 신 때문이었다. 어떤 점이 재미있느냐는 친구의 질문에 “요새 영화로 드물게 진지하잖아?”라고 무심히 대답했다가 문득 내가 이 영화를 흥미로워한 이유를 제대로 규명하고 싶다는 욕구를 느꼈다. 무엇보다 판타지를 직조하는 방식에 끌렸던 것 같다.

-졸업 논문의 주제가 궁금하다.

=1960년대와 1990년대 한국영화를 대상으로 한 일종의 필름누아르 비교 연구가 될 것 같다. 문제의식을 좁혀가는 단계에 있다.

-어떤 영화평을 쓸 것인가.

=영화를 본 뒤 우선 내 자신에게 정직하고 그 정직한 감정을 끌어안은 채 글을 쓰되, 글 안에 들어가면 하나의 도취적인 순간까지 밀어붙이는 글을 쓰고 싶다. 영화에 대한 글이 굳이 아름다워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보다 다 읽고나면 한 줄기의 리듬이 느껴지는 글, 문체와 표현방식을 떠나서 글 자체의 에너지가 분출되는 글, 감독에게도 영감을 줄 수 있는 비평을 쓸 수 있다면 좋겠다.

-어떤 책을 읽고 있나.

=요즘은 영화감독들이 자신의 생각을 글로 풀어놓은 책에 손이 간다.

-평론가로서의 일에 기대하는 바가 있다면.

=지면이 뜻대로 주어지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학교에서 쓰는 텀 페이퍼 같은 글이 아니라 아주 적은 양이라도 정기적으로 책임을 갖고, 영화에 대해 글을 쓸 수 있는 창구가 필요하다고 느껴왔다. 그런 기회를 얻은 거라고 생각한다.

-어떤 부류의 영화를 좋아하나.

=고다르 후기 영화와 브레송의 컬러영화. 심심할 때마다 보는 영화는 브라이언 드 팔마의 <칼리토>. 최근 개봉작으로는 코언 형제의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를 재미있게 봤다. 글에도 드러나지만, 이미지보다 영화가 구조화되는 방식에 더 민감한 편 같다.

우수상 정사헌 당선소감

다시, 시작을 부추긴다

작별인사라고 던진 것이 그만 그 자리에 집을 지었다. 그러니 뭐라 말해야 할지 망설이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잃고 싶지 않은 것에게 보내는 작별인사의 절반의 의미는 되돌아 와주기를 바라는 기대일 것이다. 그렇게 된 걸까? 준비는 여전히 모자라지만, 계기는 다시 시작을 부추긴다. 약속을 하거나, 선언을 한다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힘든 일이다. 누구에게건 고마움을 표현한다는 건 더 지키기 힘든 약속이다. 하지만 어떻게든 영화를 벗어나지 않겠다고 최면을 거는 것은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공적인 매체와의 만남이, 나의 영화에 대한 시각과 언어가 부지런해지도록 책임지워줄 것이라고 또 한번 최면을 건다. 신춘문예의 당선소감을 보며 왜 그렇게 눈물들을 적시는지 의아해하며 피식거렸다. 그러면서도 심심할 때는 그 자리에 나를 세워보며 똑같은 몽상을 그려보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아주 ‘우아하게’ 그 몽상을 배반할 기회가 왔다. 그런데 똑같이 했다. 영화를 한편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