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서울대 사회학과 입학, 88년 졸업, 93년까지 노동운동을 했고 현 대입학원 영어강사. 불혹의 나이에 20년 전 꺾였던 꿈에 다시 도전한 변성찬씨의 경력에는 고단한 시대의 흔적이 역력히 드러난다. 질풍노도의 시기가 지나자 남은 것은 저녁 7시부터 밤 12시30분까지 이어지는 학원수업이었고 낮과 밤이 뒤바뀐 생활에서 그는 영화라는 출구를 찾아냈다. 극장을 찾을 기회가 거의 없는 일상이지만 변성찬씨는 귀가하는 새벽 2시부터 아침 6시까지 비디오를 보며 영화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처음엔 여흥과 오락일 뿐이던 영화가 본격적인 탐구의 대상이 된 것은 <공동경비구역 JSA>를 보고 나서다. 할리우드 못지않은 세련된 한국영화가 쏟아지면서 그의 몸에서 발언하고픈 욕망이 꿈틀댔다. 혼자 책과 영화를 보고 인터넷 영화동호회에서 대화를 나누며 영화평론의 가능성을 타진했던 변성찬씨가 이번에 <씨네21>에 보낸 원고는 대중적으로 공개하는 그의 첫 작품이다.
-언제부터 영화평에 관심을 갖게 됐나.
=대학에 들어갈 때 문예평론에 청운의 뜻을 품었지만 시절이 수상하여 다른 길로 빠졌다. 영화는 주로 생업에 종사하면서 비디오로 빌려 보는 정도였다. 영화평에 관심을 가진 것은 정확히 얘기하자면 <공동경비구역 JSA>를 보고 나서다. 우연히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고 할리우드 콤플렉스가 해소되는 느낌이 들었다. 평론이라는 것이 풍부한 텍스트가 있어야 가능한 것인데 <공동경비구역 JSA> 이후로 새로운 한국 감독들에 주목하게 됐다.
-영화평을 통해 자신이 해야 할 이야기는 어떤 쪽이라고 생각하나.
=이른바 한국영화의 르네상스가 큰 자극이 됐다. 나는 그것이 돈보다 사람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가능성 있는 감독들이 제대로 알려지고 소진되지 않도록 하고 싶다.
-기존 평단에 대해 느낀 불만이 있었나.
=불만이라기보다 일반 관객에게 너무 어렵다는 느낌이 많았다. <씨네21>도 예외는 아니다. 확실히 알고 있지 않으면 얘기가 어려워진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것은 일종의 게으름일 수도 있다. 또 하나는 한국영화를 평하면서 그 잣대로 지나치게 외화를 인용하는 것에 대한 반발이다. 접하기 힘든 외화들을 논거로 들이대는 식인데 관객에게 좀더 친절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이론비평을 홍상수 작가론으로 택한 계기는.
=주변에 홍상수 영화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팬이 있다. 그를 보면서 이렇게 저렇게 할 이야기가 많은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홍상수 작가론을 쓰기 시작하면서는 힘든 점이 많았다. 워낙 많은 사람이 언급한 작가라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난감했다. 인터넷 영화동호회에서 여러 사람과 이야기를 나눈 것도 도움이 됐다. 놀라운 것은 홍상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젊은 층이라는 사실이었다. 홍상수 영화를 좋아하는 네티즌들의 모임에 나가서 진짜 민망했는데 적어도 30대가 여럿 있을 줄 알았는데 전부 20대였고 중고등학생도 있었다. 그들이 홍상수 영화의 어떤 점에 끌리는 것인지 궁금했고 의욕을 갖게 했다.
-작품비평을 <복수는 나의 것>으로 택한 계기는.
=<공동경비구역 JSA> 이야기를 했지만 박찬욱 감독에게 기대가 가고 관심이 많다. 정서적으로는 이창동, 허진호 감독의 영화에 끌리지만 박찬욱, 장진, 봉준호, 장윤현, 민병천 등 장르적 다양화를 꾀하는 감독들에 관심이 많다.
최우수상 변성찬 당선소감
한국영화 르네상스를 나누기를
‘합격’ 통보를 처음 받았을 때의 느낌은 말 그대로 ‘민망함’이었다. ‘답안’ 제출 시한이 임박할수록 자신의 ‘준비’ 부족을 절감했고, 결국 무모한 제출을 감행한 뒤 내가 기대했던 최대치는 “마지막 순간에 탈락한 두 분” 정도에라도 낄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내가 불혹의 나이에 마음이 흔들려 철없이 영화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것은 ‘한국영화의 르네상스’였다. 영화를 좋아했으면서도 늘 ‘태평양 콤플렉스’를 느끼며 성장해온 나(또는 우리 세대)에게 있어 한국영화의 부활은 그만큼 반갑고 가슴 벅찬 일이었다. 나는 그 부활의 원동력이 근본적으로 ‘자본’의 힘이 아니라 ‘사람’의 힘이다라고 하는 ‘순진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결국 나의 때늦은 결심은 한국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는 많은 감독들과 기술진들에게 빚지고 있는 셈이다. 나는 ‘그들’과 새로이 형성되어가고 있는 한국영화 관객이 조금 더 다양하고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하는 데 일조할 수 있는 ‘한국영화광’이고 싶다. 그러러면 그 대화의 매체인 ‘영화라는 언어’에 대해서 좀더 공부하고 깨우쳐야 할 것이다. 본격적인 ‘준비’를 시작할 용기를 준 <씨네21>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