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영화 '크루즈 패밀리: 뉴 에이지' 무려 80일간 북미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조엘 크로포드의 데뷔작
2021-05-05
글 : 이지현 (영화평론가)

검은 늪에 빠져 죽음에 이르기 직전, 가이(라이언 레이놀즈)의 부모는 어린 아들을 떠나보내며 “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 너의 새로운 ‘내일’을 찾아라”라고 이른다. 꼬마 가이의 길고 외로운 여행이 그렇게 시작된다. 오랜 시간 혼자서 둥근 지구를 걷던 가이의 눈앞에 마침내 ‘크루즈 패밀리’의 큰딸 이프(엠마 스톤)가 나타나자 그는 외로움에서 벗어난다. 청소년기의 두 사람은 이내 사랑에 빠지고, 가이는 이프 가족의 새로운 구성원이 된다.

하지만 ‘가족의 화합’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아버지 그루그(니콜라스 케이지)에게 가이는 그저 훼방꾼이나 다름없다. 언젠가 자신의 딸이 독립해 가정을 이룰 것을 걱정해 밤잠을 설칠 정도로 그는 ‘딸바보’ 아빠다. 그러던 어느 날 그루그가 벽 너머의 풍요로운 구역을 발견한다. 먹을거리와 놀거리가 넘치는 낙원과도 같은 그 장소로 이동하지만, 알고 보니 그곳은 ‘배터맨 패밀리’의 영토다. 때마침 어린 가이를 기억하는 배터맨 부부 덕분에 크루즈 패밀리는 그곳에 머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배터맨 부부에겐 또 다른 속내가 있다. 예의 없고 미개한 크루즈 일가를 쫓아낸 뒤, 그들은 가이를 자신들의 딸 던(켈리 마리 트랜)과 연결시키려 한다.

2013년 <크루즈 패밀리>가 등장하기 훨씬 이전부터 원시시대를 배경으로 한 애니메이션은 존재했다. <고인돌 가족>(1994)이나 <아이스 에이지>(2002)가 대표적으로, 이 영화들은 모두 석기시대나 빙하시대의 인류와 동물들을 묘사하고 있다. 이들과 비교해 <크루즈 패밀리: 뉴 에이지>는 원시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의 장점을 그대로 활용하면서 동시에 코믹한 상황을 최대한 유도하는 작품이다.

언뜻 <아바타>(2009)가 떠오르는 화려한 배경을 바탕으로, 모든 캐릭터들이 과잉된 행동을 보인다. 특히 현대적 요소가 가미된 부분에서 유머 코드는 빛이 난다. 예를 들어 배터맨 부부의 행동은 자식의 일거수일투족을 관리하는 ‘헬리콥터맘’의 존재처럼 그려지며, 이프를 생각하는 그루그의 모습은 ‘빈둥지증후군’을 가진 아버지의 성격인 양 섬세하게 묘사된다. 전반적으로 10대의 러브 스토리에 집중되는 스토리 라인이 다소 평이하고 진부하지만 상업적으로는 너무나 다채롭다.

곳곳에 각종 패러디 요소도 숨겨져 있다. 브뤼헐의 그림 <게으름뱅이의 천국>(1567) 속 상황이 배터맨 가족의 모습에 겹쳐 보인다거나, 1980대 인기 만화 시리즈였던 <썬더캣츠>와 흡사한 과거를 고백하는 할머니의 모습도 재미있다. 신문물에 빠져든 청소년기 아들이 ‘윈도우 창’ 너머로 ‘앵그리 버드’를 관찰하는 상황도 우스꽝스럽고, 동남아의 고급 휴양지에 머무는 듯 행동하는 배터맨 부인의 모습도 볼거리다. 그녀가 버릇처럼 내미는 여행가방 세트는 볼 때마다 웃음이 터진다.

<크루즈 패밀리: 뉴 에이지>는 2006년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 합류한 후 작가 경력을 쌓은 조엘 크로포드의 데뷔작으로, 북미에서만 무려 80일간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스토리텔링에 뛰어난 감독 덕분인지 현실과 가상을 결합해 내놓은 흥미로운 아이디어들이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타이밍’에 나타나서 관객을 즐겁게 한다.

1편 제작비 1억3500만달러와 비교해 절반 수준인 6500만달러가 투입된 영화로, 코로나19 시대임에도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여 저력을 인정받은 바 있다. 더빙은 전작과 마찬가지로 엠마 스톤, 라이언 레이놀즈, 니콜라스 케이지가 참여했다. 주요 배역 외에 동물 캐릭터의 활약도 돋보인다. 호랑이와 닮은 ‘앵무랑이’와 회색빛의 ‘거미늑대’ 그리고 ‘악어강아지’ 등 선사시대 애완동물들은 극장을 나와서도 생각날 정도로 아기자기하다. 환상적인 생물로 가득한 매혹적인 신세계에서, 상상 이상의 즐거운 시간이 놀랍도록 가볍게 지나간다.

CHECK POINT

7년 만의 속편

1편의 성공 이후 시작된 프로젝트는 무려 7년간 이어졌다. 조엘 크로포드 감독은 <쿵푸팬더>(2008), <슈렉 포에버>(2010), <트롤>(2016)의 작가 출신으로, 기존 연출작은 2016년작 <트롤>의 스핀오프 단편이 유일하다. 전작이 다소 교육적이었던 것과 비교해서 이번 영화는 작가의 역량 덕분인지 더 유머러스하고 상업적이 되었다.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최초의 성공작은 <이집트 왕자>(1998)다. 이후 <슈렉>(2001),<마다가스카>(2005),<쿵푸팬더>가 잇따라 성공하며 드림웍스는 디즈니와 어깨를 견주게 된다. 특히 드림웍스는 어른스러운 디테일에 뛰어난데, 이번 영화에서는 음악이 그렇다. <True>와 <I Think I Love You> 등 1970, 80년대 러브 테마가 곳곳에서 들린다.

에덴동산의 크루즈 패밀리

그루그는 인생 최고의 기억으로 ‘바나나 맛’을 꼽는다. 크루즈 패밀리에게 모든 것을 허용하는 배터맨 가족이지만, 단 하나 ‘바나나’만큼은 절대 손대지 못하도록 금지한다. 이처럼 ‘금기시된 과일’의 테마는 ‘아담과 이브 이야기’를 떠올리게 만든다. 어쩌면 이 영화의 별명을 ‘에덴동산의 크루즈 패밀리’라 불러야 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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