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 컬처의 재미는 각자 보고 싶은 대로 의도를 넣어 해석하는 과정에서 빚어지기도 한다.
맞다. 팬들이 만들어가는 세계가 있다. 사실 원작자의 의도는 그리 중요치 않다. <스타워즈>만 봐도 새로 만들면 팬들이 반발하지 않나. 해석은 소비하는 사람들의 것이고, 원작자의 의도가 너무 강하면 오히려 즐기는 데 방해가 된다. <지옥> 웹툰이 책으로 출판됐을 때 작가의 말을 써달라는 요청이 있었는데 최규석 작가가 독자들의 해석을 방해하고 싶지 않다고 해서 쓰지 않았다. 완전히 동의한다. 인터뷰를 통해 작품에 대해 떠들곤 있지만 부디 최소한이길 바란다. 이런 유의 작품은 원작자의 손을 떠난 순간 이미 시청자들의 것이다. 그렇게 됐을 때 비로소 흥행했다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낡은 아파트와 연립주택, 미로처럼 오래된 골목 등 연상호가 사랑하는 공간들이 나온다.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곳이 좋다. 허름한 곳이 찍으면 멋있게 나오는 것도 좋아한다. 6화의 무대가 되는 아파트는 세트를 지었다. 사람들이 상황을 목격해야 하기 때문에 기능적으로는 <반도>의 경기장과 닮은 부분이 있다. 동시에 생활감도 묻어나야 하고. 정진수의 최후를 장식한 공간도 마찬가지다. 있을 것 같지만 없는, 없을 것 같은데 있는 곳. 보이는 것만으로도 세월이 묻어나는 공간. 내가 봐도 나는 폐허가 ‘되어가는’ 풍경에 끌리는 것 같다. 곤 사토시의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2003)처럼 현실성과 시간의 두께가 동시에 느껴지면서도 꽉 채워진 이미지가 좋다.
본래 서브 컬처를 기반으로 한 콘텐츠들은 설정 놀이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연상호의 콘텐츠는 언제나 사건보다는 리액션, 그러니까 사람 사는 이야기에 더 집중한다.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를 급하게 설명하려고 하다보면 뭔가 뒤틀림이 생기는 법이다. 아서 C. 클라크의 <유년기의 끝>이란 소설을 무척 좋아한다. 거기에 등장하는 외계인은 악마의 형상을 하고 있는데 불필요한 오해를 사고 싶지 않아서 모습을 감추고 있다. 악마의 모습이건 천사의 모습이건 외계인은 그냥 외계인이다. 작품도 마찬가지다. 내가 할 수 있는 부분까지 정확하게 표현하고, 나머지는 관객의 몫이다. 의도란 결국 각자 보고 싶은 욕망의 반영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알 수 없는 신(혹은 창작자)의 의도가 아니라 각자의 생각들이고, <지옥>은 관객의 해석을 통해 완성되는 시리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