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3. 박정자, 튼튼이, 유지 사제, 그리고 화살촉
2021-12-02
글 : 송경원
6가지 경로로 읽는 <지옥>, 연상호 감독의 코멘터리

1, 2, 3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은 고지를 당한 박정자 역의 김신록 배우다.

예전에 한 단편영화에서 처음 봤는데 그땐 그렇게 강한 인상을 받지 못했다. 나중에 <방법> 때 김용완 감독이 김신록 배우를 추천했는데 ‘나는 잘 모르니까 연출자가 판단하시라’고 했다. 그런데 드라마 1화를 보는데 너무 잘하는 분이 있는 거다. 그게 김신록 배우였다. 매 장면 캐릭터를 압도하는 에너지를 품고 있다. <지옥> 첫 촬영이 유아인 배우와 커피숍에서 만나는 장면이었는데 두려우면서도 부끄러웠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 애매할 수 있는 표현인데 잠시 생각하더니 내 머릿속에 있던 경직된 그림을 단번에 깨부술 놀라운 연기를 선보였다. 이론과 실전의 차이라고 해야 하나? 사실 현장에서 연기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흔드는 순간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사실 지옥의 고지를 받는 전반부의 박정자와 후반부의 튼튼이는 둘 다 기능적인 캐릭터다.

2화 초반에 새진리회가 박정자의 집을 찾아왔을 때 아들이 방문을 열고 나와 엄마를 변호하는 장면이 있다. 웹툰에도, 대본에도 그 장면은 박정자와 아들이 서로 끌어안고 오열하는 걸로 그려졌다. 웹툰에선 무리가 없었는데 막상 실사로 찍으려니 뭔가 어색한 거다. 한참 고민하고 있는데 김신록 배우가 이번에도 자기가 알아서 해보겠다고 하셨다. 그러더니 그 장면에서 아들을 방 안으로 데리고 가서 문을 닫고 막 혼내더라. 그 방은 녹음장비고 뭐고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었는데 혼내는 소리가 바깥까지 들렸다. 아, 그래 리얼한 건 이런 거구나 싶었다.

유지 사제(류경수)의 존재감이 상당하다. 후반부 실질적인 빌런인데 결국에 얄팍한 민낯을 드러낸다.

등장만으로도 뭔가 있어 보이길 바랐다. 김정철 의장(이동희)을 비롯한 새진리회 의장단은 일종의 블랙코미디에 가깝게 희화화된 캐릭터들이다. 반면 유지 사제는 정진수와 비슷한 느낌을 주길 바랐다. 왜곡된 신념에 사로잡힌 광신자의 면모가 있다.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 <레벌루션 No.3>를 좋아한다. 거기에 대기업 간부 출신으로 스토킹 범죄를 저지르는 남자가 있는데, 잡히고 나서 진짜 추잡한 모습을 보여준다. 엘리트라는 자의식과 비루한 범죄 사이의 간극이 진짜 비참해 보였다. 유지 사제의 부끄러운 모습이야말로 왜곡된 세계의 균열된 초상이다.

화살촉 BJ 이동욱 역의 김도윤 배우는 후반부 반전 카드로 등장한다. 사실 처음부터 BJ로만 나올 리 없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정진수와 이동욱, 그리고 유지 사제의 모습이 한 캐릭터 안에 섞여 있었다. 그중에 특정 부분을 분리해서 세명의 캐릭터에 각각의 역할을 부여한 거다. 최규석 작가가 제일 좋아한 인물도 이동욱이다. 원래 다시 등장할 예정이 없었는데, 이야기의 볼륨을 만들어가면서 후반부에 다시 등장하는 아이디어를 냈다. 박정민 배우가 제일 탐냈던 역할도 이동욱이다. (웃음) 김도윤 배우가 고생 많았다. 전반부 BJ 장면은 하루에 다 몰아서 찍었다. 이후 6화 촬영을 할 때까지 긴 시간 동안 캐릭터를 어떻게 표현할지 혼자 많이 고민했다고 하더라. 김도윤 배우가 겉모습과 달리 상당히 예민한데 배우로서 그의 그런 면을 신뢰한다.

한 가지 의문은 민혜진 변호사가 이동욱의 정체를 몰랐을까 하는 점이다.

민혜진은 기본적으로 천사의 고지를 받은 인물을 신뢰한다. 고지를 받은 당사자는 얼마나 불합리한지를 알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그걸 다른 식으로 해석하고, 또 한번 뒤틀릴 수 있는 게 인간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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