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16일, BL 웹드라마 <시맨틱 에러>가 왓챠에 공개됐다. 리디북스에서 연재된 동명의 웹소설을 드라마화한 작품으로 리디 콘텐츠의 첫 영상화 사례다. 처음 <시맨틱 에러>의 영상화 소식이 발표됐을 때 원작 팬들 사이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지만, 현재까지(3월3일 기준) 왓챠 시청순위 1위를 굳건히 유지 중이다. 2주 넘게 1위를 지킨 데에는 원작 독자들의 관심이 주요했겠으나 새로운 시청자층을 지속적으로 포섭했기에 가능한 결과로 보인다.
최근 1~2년 사이 BL 콘텐츠의 영상화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왓챠 콘텐츠 개발 담당 김요한 이사는 “숏폼, 미드폼 콘텐츠가 폭발적으로 제작된 환경”을 이유로 꼽는다. 대중성 대신 특정 타깃, 소수 취향을 공략하는 콘텐츠들이 제작되면서 BL 장르 영상물도 증가한 것이다. 하지만 적은 자본으로 제작되다보니 작품성, 완성도 측면에서 아쉬움이 제기되면서 큰 반향을 얻진 못했다. 그러다 최근 완성도를 높여 유의미한 결과를 얻은 BL 드라마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웹드라마 <너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는 2020년 5월 공개 당시 일본 라쿠텐TV의 종합드라마 부문 1위에 올랐고 그 인기에 힘입어 영화로도 제작됐다. 와이낫미디어에서 제작한 <새빛남고 학생회>는 지난해 6월 공개 이후 왓챠 시청순위에서 1위를 기록했으며 유튜브 조회수 또한 현재까지 1화 138만회, 2~5화 평균 70만회에 이른다. 김요한 이사는 “<새빛남고 학생회>는 물론 일본 BL 드라마 <30살까지 동정이면 마법사가 될 수 있대>와 같은 작품을 서비스하면서 BL 장르 팬층이 확실하고 유입에 대한 기대 효과가 높다는 것을 확인”했고, 그것이 <시맨틱 에러>의 독점 서비스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전한다.
캐스팅에 적극적인 배우도 늘어
BL 웹드라마 중에서도 <시맨틱 에러>가 눈에 띄는 반응을 얻은 데에는 원작의 영향이 컸다. 2017년 리디에서 연재된 <시맨틱 에러>는 2018년 리디북스 BL(Boy’s Love) 부문 대상 수상작이다. 이후 “BL 장르의 교과서”라고 불리며 오디오 드라마, 웹툰,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매체로 변주됐고 꾸준히 사랑받으며 흥행력과 확장 가능성을 이미 입증했다. 리디의 자회사이며 <시맨틱 에러> 영상화 세일즈를 진행한 오렌지디의 정은선 대표는 “캐릭터와 서사가 뚜렷하고, 기본적으로 산뜻한 캠퍼스 로맨스물”이라는 점을 <시맨틱 에러>의 경쟁력으로 꼽는다. 이러한 작품의 매력은 유지하되 시청자 풀을 늘리기 위해 택한 방법은 수위를 12세이상관람가로 낮추는 것이었다. “원작이 19세이상관람가로 연재됐기 때문에 기존 웹소설 독자들은 아쉬움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 덕에 BL 장르가 낯선 시청자들의 유입도 가능했다고 본다.” <시맨틱 에러>를 연출한 김수정 감독이 연출 시 가장 신경 쓴 부분도 “BL 장르를 처음 접해본 시청자들도 유쾌하게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때문에 초반 에피소드를 청춘 시트콤처럼 연출했고, 로맨스물이 갖는 주인공의 텐션을 놓치기 않기 위해 이미지적으로 고민을 많이 했다고 전한다.
BL 영상물은 캐스팅이 어렵다는 통념도 더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인기 웹소설 <시맨틱 에러>가 영상화된다는 소식에 몰려든 오디션 참가자는 150여명이었다. “‘이게 된다고?’ 싶을 정도로 오디션 콜에 응답해줬고 그중엔 아이돌도 많았다. 좋은 결과를 얻은 기존의 작품들이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배우들도 BL 영상물이 자신의 연기를 보여주고, 또 하나의 새로운 도전이라고 받아들이는 추세다.”(김수정 감독)
BL 작품 영상화 판권 문의 늘어
시청자층은 어떨까. <시맨틱 에러>의 기존 웹소설, 웹툰 독자는 드라마를 얼마나 관람했을까. 정은선 오렌지디 대표는 “오픈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데이터상 정확히 분석된 바는 없지만, 댓글 등의 반응을 토대로 보건대 신규 유입층과 더불어 웹툰, 웹소설의 독자가 거의 그대로 옮겨간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또한 <시맨틱 에러> 드라마의 시청자들이 역으로 리디북스에서 원작 웹소설, 웹툰을 구독하는 경우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2020년 발표한 ‘웹소설 이용자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웹소설 독자 중 BL 장르 독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9.9% 정도다. 수치상 10% 내외에 불과하지만 정은선 대표는 BL 독자가 BL 콘텐츠에 대한 소비력과 충성도가 높다는 데에 주목한다. “BL 장르물은 로맨스, 로맨스 판타지 장르에 비해 확장성이 약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BL 소비자가 BL 콘텐츠 소비에 지출을 아끼지 않고 충성도도 높은 편이기 때문에 BL 콘텐츠 영상화의 성공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BL 소비자의 또 다른 특징은 팬덤 문화다. 혼자 감상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SNS, 혹은 커뮤니티에 자신이 재밌게 본 작품을 공유하고, 타인과 자유롭게 감상을 나누며 2차 콘텐츠 또한 활발히 제작한다. 김요한 이사는 이들의 “영업력”을 BL 소비층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원인 중 하나로 분석한다.
BL 콘텐츠 영상화에 투자되는 자본도 증가할 예정이다. 정은선 대표는 “최근 BL 장르 판권에 대한 대형 제작사의 의뢰가 많아졌”고 “대형 제작사의 경우 대중성을 위해 <시맨틱 에러>처럼 캐릭터와 서사가 확실한 것들을 선호하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티파니에서 모닝키스를> <한양 다이어리> <어쩌다가 전원일기> <유어타임> <상사의 몸을 사로잡는 방법>은 이미 매칭이 완료되었으며 <신입사원>은 올 하반기에 만날 수 있다. BL 영상 콘텐츠 시장은 실상 이제 시작 단계다. 하지만 <시맨틱 에러>와 같은 BL 장르의 슈퍼 IP가 이미 다양하게 확보된 상황임을 고려할 때, 대규모 자본이 유입되고 작품을 소비하는 소비자층이 계속해서 늘어난다면 BL 영상 콘텐츠 시장의 규모가 커지는 것도 머지않은 일이다. 웹드라마 <시맨틱 에러>의 성공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