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Apple TV+ '파친코' 공개! 우리 안의 선자,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찾아나가는 여정
2022-03-31
글 : 김현수

Apple TV+가 선보이는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는 시대를 견뎌낸 한국 가족의 이야기다. 1915년 일제강점기 치하를 배경으로 한 부산 영도의 허름한 하숙집 부부의 이야기에서 시작해 1989년 일본의 도쿄, 오사카 등지에서 파친코 사업으로 일가를 이룬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를 가로지르는 하나의 키워드는 디아스포라다. 이것은 버려지고 넘어진 한국인들의 이야기면서 동시에 그들이 어떻게 다시 일어서서 고향으로 돌아오는지를 다룬다. 시대를 버티며 견뎌낸 한국인 이민자 가족의 대서사를 다룬 이민진 작가의 소설 <파친코>가 원작이다.

이민진 작가는 어릴 적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간 한국계 미국인으로, 변호사를 하다가 일본계 미국인 남편을 만나 4년간 일본에서 생활했고, 십수년간 취재와 연구를 거쳐 <파친코>라는 소설을 완성했다. 출간 이후 많은 화제를 모았고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2017년 베스트 도서 10선, 2017년 전미도서상 소설 부문 최종 후보에까지 올랐다. 소설 <파친코>가 한국 이민자 가족 서사를 다루는 유일한 소설은 아니다. 그 이전에도 많은 문학, 영화 등에서 한국 이민자 가족을 다뤄왔다. <파친코>가 주목하는 것은 동북아 역사에서 식민지배와 전쟁의 피해로 국가에 내쳐진 자이니치(재일 조선인) 세대의 생존기다. 하숙집 부부의 딸로 태어난 선자가 선교사 남편을 만나 일본으로 건너가 가족을 이루고 살아가는 이야기다. 소설의 영상화 판권을 갖고 있던 제작사 미디어 레스에 의해 각본을 맡게 된 수 휴 총괄 제작가 겸 각본가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이주한 경험 때문에 자신이 겪어온 삶과 옆에서 지켜봤던 어머니의 삶이 소설에 담겨 있음을 깨닫고 “<파친코>의 심장이고 영혼”인 선자라는 캐릭터를 부각시킬 수 있는 각색 방향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 땅의 모든 선자들에게 바치는 이야기”로 만들겠다는 그의 포부는 드라마의 첫 장면에서부터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은, 가족들은 견뎠다. 여기 몇 세대에 걸쳐 견뎌낸 한 가족이 있다”라는 안내 자막과 함께 시작하는 <파친코>는 선자의 엄마 양진(정인지)의 굳은 표정에서 시작한다. 세 차례나 임신해서 아이를 낳았지만 모두 얼마 살아보지도 못하고 숨을 거둔 탓에 그녀는 자신의 아이들의 박복함을 굿으로 달래보고자 한다. 양진이 선자를 낳던 시대는 서슬 퍼런 일제강점기 시절이다. 부산 영도에서 하숙집을 운영하는 선자의 부모는 딸에게 부모될 자격에 대해 가르친다. “네 숨이 붙어 있는 동안에는 뭔 짓을 해서라도 세상 드러븐 것들이 너를 건들지 못하게 할 거”라는 아버지의 다짐은 선자가 단단한 여성으로 자라는 밑거름이 되어준다. 하지만 생선 중개상 한수(이민호)가 선자의 눈앞에 나타나면서 그의 일생은 달라지고 만다. 생선 중개상 한수는 부산과 오사카를 오가며 사업을 벌이는 남자였고 고급스러운 양복과 중절모와 구두로 치장한 채 선자의 마음을 뒤흔들어놓는다.

드라마 <파친코>는 각기 다른 세명의 배우가 연기하는 선자의 시절을 교차 편집을 통해 동시에 보여주면서 그녀가 살아온 인생의 굴곡이 얼마나 급격하고 거센지를 강조하고 나선다. 그러면서 선자의 손자인 솔로몬 백(진하)이 장성하여 성공한 금융가로서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되는지를 선자의 과거 장면과 대비시키며 극을 진행한다. 후대의 솔로몬이 자이니치로서 여전히 도시의 삶 속에서 무시와 차별을 당하면서도 돈만 좇는 삶을 살고 있다면, 과거의 선자는 제대로 된 의복도 갖추지 못하고 흰 쌀밥이 너무 귀해서 일본 순사들의 눈치를 보며 구할 수밖에 없는 극빈한 삶을 살아간다. 시청자들은 1930년대 선자와 1980년대 솔로몬의 모습을 보며 조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선자의 아픔과 자이니치로서 성공을 꿈꾸는 솔로몬의 아픔 사이의 간극, 길고 고통스러웠던 디아스포라의 역사를 되새기게 될 것이다. 수 휴 총괄 프로듀서가 직접 각본까지 맡으면서 가장 공들인 것이 바로 이 전개 방식이다. 연대기 순으로 진행되는 원작 소설의 전개 방식 대신 좀더 영화적인 전개 방식을 택했다. 소설 <파친코>는 1880년대 후반 선자의 어머니 양진과 아버지 훈이가 처음 만나던 시절부터 시작해서 선자를 낳고 키우는 과정, 그리고 선자가 한수와 남편 이삭을 만나 일본으로 건너가 두 아들 노아와 모자수를 무사히 길러내기까지의 과정, 성격이 전혀 다른 두 아들 노아와 모자수가 성공을 위해 다른 길을 선택하다 맞닥뜨리는 비극, 파친코 사업에 성공한 모자수의 뒤를 이어 뉴욕 금융가에 입성하는 솔로몬의 여정이 크게 3부로 나뉘어 서술된다. 8개 에피소드로 나뉘어 공개될 <파친코>의 첫 번째 시즌은 원작 소설 전체 분량의 일부에 해당하는, 선자가 일본으로 떠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와 손자 솔로몬이 겪는 이야기 위주로 전개된다. 첫 번째 시즌의 주인공은 역시 선자다. 선자라는 여성이 부모로부터 어떤 삶의 태도를 물려받았는지, 그리고 일본으로 건너가 어떤 난관을 겪어내는지가 이번 시즌의 주요 내용이다. 연출을 맡은 코고나다 감독은 영화 <콜럼버스>를 연출했으며 영화 잡지 <사이트 앤드 사운드>의 객원 필진이자 크라이테리언컬렉션의 다큐멘터리를 주로 만든 영화광 출신이다. 코고나다 감독이 1, 2, 3, 7편을 연출하고 저스틴 전 감독이 4, 5, 6, 8편을 연출했다. 정석적인 차분함이 강조되는 코고나다 감독의 연출색과 감정적이면서 자유로운 저스틴 전 감독의 연출색의 대비는 그대로 선자가 겪는 그 시절의 아픔을 대변한다. 아마도 마이클 엘렌버그 총괄 프로듀서가 감독을 물색할 때 “개인적인 유대감을 느끼는 감독을 영입하려고 했다”라는 의도가 작품에 투영된 것으로 보인다. 시즌이 이어질수록 <파친코>에 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것 같다. 우리의 역사이자 어머니이자 딸인 선자의 이야기는 이제야 시작됐다.

사진제공 Apple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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