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로 자신의 존재를 강렬하게 각인시킬 배우를 꼽을 때, 솔로몬 역의 진하를 결코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가 연기한 솔로몬은 선자(윤여정)의 손자로, 일본에서 태어났으나 차별을 피해 미국으로 유학을 간 인물이다. 야심찬 은행가가 되어 착실하게 커리어를 쌓던 솔로몬은 큰 계약을 진행하기 위해 일본으로 돌아온다. 항상 돈을 우위에 두던 솔로몬의 철학에 금이 가기 시작한 건, 자신의 부모와 조부모의 희생을 생생히 마주하면서부터다.
진하는 자이니치에 관해 이해하기 위해 따로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말한다. “<파친코>를 준비하면서 자이니치가 얼마나 자부심이 넘치는 공동체인지 깨달았다. 그렇기에 진정성을 담아 정확한 방식으로 이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고 다양한 자료를 참고했다. 내 컴퓨터에는 자이니치에 관련된 정보가 항상 50페이지가량 띄워져 있었다. 연구를 통해 당시의 시대, <파친코>의 캐릭터들이 존재하는 맥락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호흡하면서도 많은 걸 느꼈다. 세트장에서 함께한 배우들, 감독, 총책임자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책과 숫자에서 배운 것 이상으로 감정적으로 많은 걸 배웠다. 자이니치인 솔로몬은 일본과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을 포함해 “세 가지 국적과 문화를 저글링하는” 인물이다. 그런 솔로몬의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해 가장 중요했던 건 세 가지 언어를 유려하게 구사하는 것이었다. “쉽진 않았다. 한국어도 일본어 억양이 섞여 있어야 했고 일본어의 경우 간사이 방언, 도쿄 방언을 모두 익혀야 했다. 일본어를 공부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었고 결과적으로 보람 있었다.” 아시아계 미국인인 그가 솔로몬에게서 공감대를 찾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나 역시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 뉴잉글랜드로 이주했고 그 뒤로 코네티컷, 저지, 뉴욕으로 이동하며 살아왔다. 어릴 때부터 ‘이 낯선 땅에 받아들여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고, 나의 국적과 출신이 정체성에 관한 질문의 중심이 되지 않길 바랐다. 그때의 감정을 상기하면서 솔로몬을 연기했다.” 아시아계 미국인으로서 <파친코>의 이야기에 꼭 참여하고 싶었다는 그의 말이 묵직하게 다가왔다. “우리 곁에는 선자와 모자수(아라이 소지), 솔로몬 같은 사람들이 정말 많다. 이들의 삶, 그리고 앞선 세대의 희생이 전세계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어낼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