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파친코' 코고나다 감독/수 휴 쇼러너(각본 및 총괄 제작), 마이클 엘렌버그·테레사 강 로우 총괄 제작
2022-03-31
글 : 김현수
"우리는 고국과 선조를 이해하는 과정이었다"
코고나다 감독, 테레사 강 로우, 수 휴, 마이클 엘렌버그(왼쪽부터).

이민진 작가의 소설 <파친코>가 Apple TV+에서 시리즈화되는 데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인 사람을 꼽으라면 각본가 수 휴(허수진)다. 노력의 경중을 따질 수는 없지만 수 휴 쇼러너의 진두지휘 아래 많은 프로듀서와 작가들이 협업해 사전 준비 과정을 거쳤고, 코고나다 감독과 저스틴 전 감독이 전체 시리즈 중 각각 4개의 에피소드 연출을 맡았다. 언론에 첫선을 보이는 온라인 프레스 컨퍼런스 내내 배우들은 제작진의 협업을 칭찬했다. 한국 매체 기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들은 선자의 일생을 중심으로 4대에 걸친 이민자 가족의 수난사를 다룬 대서사시 <파친코>를 만든 과정에서 겪은 경험과 고민을 들려줬다. 가장 가슴을 울린 말은 우리 모두 “한국인”임을 강조할 때였다.

- 원작 소설을 각색할 때 이민진 작가는 관여하지 않았나. 한국인으로서 이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 남다른 의미였을 텐데.

수 휴 이민진 작가는 각색 과정에 참여하지 않았다. 물론 원작을 거의 성경처럼 모시면서 참조한 부분이 정말 많다.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정체성은 이 시리즈를 만들어내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제작진 중에 한국계 미국인과 한국인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에 있는 우리의 가족, 그들의 과거를 통해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바로 이 소설에 담겨 있었다.

- 원작 소설도 그렇지만 각색 과정에서 여성 서사로서의 의미가 더욱 부각된 것 같다.

수 휴 <파친코>는 한 시즌으로 끝맺는 게 아니다. 첫 시즌에서 공개될 8개 에피소드에 이어 다음 스토리가 계속 전개될 예정이다. 다음 시즌이 계속 만들어질 것이다. 원작의 내용은 더욱 방대해 이대로 끝낼 수는 없었다. 또 흥미로웠던 점은 사람들이 이 시리즈를 보면서 중점을 다 다른 곳에 두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솔로몬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선자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더라. 그런 의미에서 <파친코>는 세대간의 대화다. 선자의 성장 과정과 솔로몬의 성장 과정이 흥미로운 대조를 이루는 걸 볼 수 있다.

- 에피소드를 볼 때마다 눈길을 빼앗는 건 타이틀 시퀀스다. 다큐멘터리 화면에서 시작해 배우들이 춤추는 장면으로 이어지는 시퀀스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궁금하다.

테레사 강 로우 이야기 자체가 무겁기 때문에 타이틀 시퀀스는 즐거움이 느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시퀀스를 보면서 ‘활기’를 느낄 수 있었으면 했다. 나중에 시퀀스를 자세히 보면 배우와 제작진의 실제 가족사진이 삽입되어 있는 걸 볼 수 있다. 이틀에 걸쳐 댄스 신을 찍었는데 즐겁게 촬영했다.

- 4대에 걸쳐 한국, 일본, 미국을 오가며 벌어지는 스케일이 큰 서사시다. 앞서 이야기한 여성의 시선에서 펼쳐지는 작품이라는 <파친코>의 특징은 기존의 남성적 시각 위주의 시대극과 비교해 무엇이 다르다고 생각하나.

수 휴 제작 초기에 <대부2>를 상당 부분 참조했다. 물론 <대부> 시리즈는 남성적 시각을 지닌 영화지만 말이다. 시청자들은 선자의 성장 과정을 통해 그녀가 매 순간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를 보게 된다. 그 결과도 보게 될 거다. 우리는 선자뿐만 아니라 여러 시각에서 이 작품을 봐줬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 솔로몬, 한수, 노아의 이야기도 후반에 펼쳐진다.

- 윤여정 배우의 연기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소감이 궁금하다.

코고나다 진심으로 윤여정 배우와 함께하는 모든 장면에서 감탄했다. 그의 얼굴은 한국의 역사가 담겨 있는 지도 같다. 모든 표정에서 정말 섬세한 연기를 펼쳐주었다. 어떻게 그런 미스터리한 표정들이 있는지, 더 찍고 싶을 뿐이었다.

- 미국 드라마의 경우 대개 각본과 제작을 동시에 맡는 쇼러너의 총괄 아래 개별 에피소드를 다른 연출자가 한편씩 맡아 연출하는데 <파친코>는 코고나다, 저스틴 전 감독 둘이 각각 4개 에피소드를 맡아 연출했다. 그렇게 한 이유가 있나.

수 휴 <파친코> 제작 과정에 대해 처음 논의하던 몇년 전부터 8개의 에피소드를 8명의 감독에게 맡기면 안된다는 것은 분명한 방향이었다. 미국 실정에서도 굉장히 큰 프로젝트를 맡긴 것이지만 그래도 저스틴 전, 코고나다 감독 두 사람을 섭외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

코고나다 우리 둘은 거의 동시에 모든 에피소드를 촬영했다. 그래서 시간 순서대로 찍을 수가 없었다. 내가 먼저 설정과 공간 배경을 마련하면 저스틴 전 감독이 이어받아 선자가 왜 삶의 터전을 옮길 수밖에 없었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맡았다. 저스틴 전 감독은 전작들에서 이미 이주민 혹은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적이 있기 때문에 선자가 집을 떠난 이후에 벌어지는 일들을 잘 다룰 수 있을 거라 여겼다. 둘 사이의 조율은 수 휴 총괄 프로듀서가 맡았다.

- 드라마가 시작하자마자 일제강점기 일본의 만행을 고발하는 자막과 장면이 나온다. 그간 한국 드라마, 영화가 일제강점기를 그린 적은 많지만 미국 자본으로 만든 영어 작품에서 이처럼 구체적으로 일제강점기 조선의 시대상을 다룬 적은 없었다. 세계 시청자들이 <파친코>에서 무엇을 얻어가길 바라나.

코고나다 <파친코>는 한국 역사를 다루지만 전세계인 모두가 공감할 만한 이야기다. 지금도 수많은 이민자 가정과 그의 가족들이 그들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우리는 이 작품이 현재 진행형의 이야기라 여긴다. <파친코>를 만드는 과정은 내가 디아스포라의 일부란 것을 되새기게 해줬다. 그것은 우리의 고국과 선조를 이해하는 과정이었다. 작업하는 동안 스스로에게 나는 한국인인가, 라는 질문을 던졌다. 내 마음 한구석에는 한국 역사의 일부가 되고 싶어 하는 강한 열망이 있었다. 또 <파친코>를 만들면서 얻은 건 우리 스스로의 소속감이다. 제작 과정 중에 조국에서 온 많은 사람들과 협업할 수 있어서 정말 영광이었다. 다음 세대에게 이 역사를 어떻게 전달해줄 것인지 고민하는 우리의 모습을 솔로몬에게서 발견할 수 있었다.

수 휴 촬영하면서 매일같이 이야기한 게 있다. 역사책처럼 딱딱한 이야기를 전하지는 말자, 라고 말이다. 우리가 전하고 싶었던 건 사랑, 모성애였다.

마이클 엘렌버그 한국 작품이 글로벌한 인기를 얻게 된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지만 <파친코>만의 특별한 점이 있다면 과거와 현재의 공존, 대화를 담고 있다는 거다. 현대와 동떨어진 시대극처럼 느껴지지 않도록, 지금 벌어지는 이야기처럼 생생하게 시청자에게 다가갈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다시 한번 짚어보는 의미를 가졌으면 좋겠다.

테레사 강 로우 이 작품이 특별한 이유는 바로 여성의 시선에서 전개되는 서사라는 점이다. 젊은 여성주인공 선자가 수십년 동안 한 가족의 중심에 올라서게 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작품을 관통하는 하나의 보편적인 메시지가 있다면 모든 한국 가족에는 그들 각자의 선자가 살아간다는 것이다.

사진제공 Apple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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