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파친코'의 선자, 윤여정 "집 같은 사람"
2022-03-31
글 : 조현나

배우 윤여정이 연기한 선자는 드라마 <파친코>의 중심축을 담당하는 인물이다. 일제강점기, 남편과 함께 고국을 떠난 10대 시절의 선자는 노년의 여성이 된 현재 일본에 정착해 살고 있다. “1910년대에 태어난 선자라는 여성을 1980년대까지 연기하는 게 굉장한 미션으로 여겨졌다.” 격동의 시기를 지나온 선자는 모자수(아라이 소지)의 어머니이자 솔로몬(진하)의 할머니로서 가족을 살뜰히 보살핀다. “내는 다 지나간 일에 목매다는 사람들 보모, 참 이해가 안된데이. 그기 다 뭔 소용이라고.

그렇다고 죽은 사람이 다시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손자 솔로몬의 이야기를 듣던 선자가 한탄처럼 내뱉는다. 과거에 미련이 없다는 그 말은 도리어 사무치게 지난날을 그리워해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처럼 들린다. 그래서일까. 윤여정 배우가, 선자가 아들과 함께 다시 한국에 돌아오는 것을 좋아하는 신으로 꼽은 것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소설 원작에는 없던, 드라마에서 새롭게 만들어진 신이다. 난 참 잘 넣은 신이라고 생각한다. 고난을 겪고 성공한 선자가 왜 고향에 가보고 싶지 않았겠나.” 부산에 도착해 택시를 타고 가던 도중 선자는 불현듯 택시에서 내려 바다로 뛰어든다. “부산 앞바다를 보며 9살 무렵 선자가 혼자 잠수해서 전복을 따던 때가 생각났다. 선자의 아빠는 밖에서 그런 딸을 자랑스럽게 바라본다. 그 신이 떠올라서 ‘아버지, 선자 왔어예’ 하고 없던 대사를 말했다. 배우로서 내게 굉장히 소중한 신이다.” 한편 오랜만에 들른 한국을 곧바로 떠나는 선자의 마음도 함께 헤아렸다. “아버지의 무덤을 찾은 것으로 자신의 의무는 다했다고 생각했을 거다. 무엇보다 자신은 여기에 속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걸 느낀 것 같다. 복희 언니를 제외하곤 자신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고향 바닷물에 발도 담가봤으니 이제 ‘집’에 돌아가자고 생각했을 것 같다. 배우로서의 내 해석인데 그 해석이 잘 보이는지 봐줬으면 한다.”

<파친코>를 찍으며 자이니치에 관해 새롭게 알게 됐고, 한국의 문화와 언어를 지키는 그들의 모습에 뭉클했다는 윤여정. “<미나리>의 순자와 똑같다고 하신다면 연기를 그만둬야 할 거다”라는 그의 자신감 있는 말처럼 <파친코>에선 선자로 대표되는 자이니치의 역사, 그리고 이를 잘 녹여낸 윤여정의 또 다른 얼굴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제공 Apple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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