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침번>은 류덕환 감독이 실제 군 생활을 할 때 불침번을 서다 남긴 메모에서 시작됐다. 극중 등장하는 ‘나무늘보’, ‘달리기’ 같은 암구호도 6년 전 군 복무 당시 그대로다. <전체관람가+: 숏버스터> 제안을 받았을 때는 트리트먼트 정도만 완성되어 있던 <불침번>은 “지금 아니면 못할 것 같다”는 류덕환의 생각에 아직 그의 군 생활 기억이 남아 있는 지금 빛을 보게 됐다. 윤종빈 감독의 <용서받지 못한 자>부터 최근의 <D.P.>에 이르기까지, 군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은 군대 시스템의 부조리와 인간성의 파멸을 엮어가는 경우가 많다. <불침번>의 접근은 조금 다르다. 첫 휴가 전날 불침번을 서게 된 이등병 대수(이석형)의 상황으로부터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부대 안에서는 유독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의 상대성을 보여주는 것이 류덕환 감독의 관심사였다. 시나리오상 “영화 <아저씨> 같은 액션”으로 서술된 대목 역시 공을 들여 퀄리티 있게 찍었다고 만족하고 있고, 부천에 있는 <D.P.> 세트장에서 촬영해 실제 부대를 상기시키는 리얼함을 살렸다. 주인공 대수 역의 이석형은 <액션 히어로> 예고편을 보고 3초 만에 결정된 캐스팅이다.
류덕환은 감독으로서 활동할 때는 클라운 류(Clown Ryu)라는 닉네임을 쓴다. “어릴 때부터 광대라는 단어를 굉장히 좋아했다. 배우는 스크린이나 브라운관의 벽이 있고, 연극은 무대에 올라가야만 보일 수 있는데, 광대는 어디서든 관객을 만나 슬프거나 기쁘거나 복합적인 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 직업이다. 광대의 속성이 다양한 이야기를 만드는 연출의 그것과 통용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연기하는 류덕환과 연출하는 클라운 류의 활동 반경은 최근 보다 대중적인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다. 계기는 군대에서의 경험이었다. “초소에서 근무를 서고 있는데 새로 들어온 신병이 누나가 팬이라면서 말을 거는 거다. 전역 후에도 류덕환 선배님을 TV에서 많이 봤으면 좋겠다면서. 그래서 어떤 방식으로든 내가 보이는 곳에서 활동을 많이 하는 것이 그들이 나를 기억해주는 방법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또 한번 다가온 분기점은 결혼이다. 1년 동안 일을 쉬면서 결혼 생활을 즐긴 그는 “이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다”고 말했다. 자신의 어머니를 보며 들었던 감상을 풀어낸 <내 아내가 살이 쪘다>에 이어 이번 <불침번> 역시 달라진 그를 발견할 수 있는 작품이다. 광대 류덕환이 써내려갈 새로운 챕터가 시작됐다.
관전 포인트
군대를 다뤘지만 어둡지만은 않게
“영화제 출품에 목적을 두는 순간 나도 모르게 어떤 의미를 투영하려고 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티빙에서 언제든 감상할 수 있는 <불침번>이 엄청난 주제와 메시지를 주는 작품은 아니다. 편하게 피식피식 웃으며 볼 수 있지만 무언가 남을 수 있는 영화다. 너무 어둡고 각박한 군인들의 이야기보다는 다소 밝은 느낌의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