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칸국제영화제 결산⋯ 황금종려상에 '트라이앵글 오브 새드니스', '헤어질 결심' 박찬욱은 감독상, '브로커'의 송강호는 남우주연상에
2022-06-09
글 : 이주현
축제의 귀환과 한국영화의 환호
<헤어질 결심>

칸영화제 폐막식 당일로 플래시백. 5월28일 오후 7시. 폐막식이 열리려면 아직 1시간30분이나 남았지만 폐막식 중계를 보려는 기자들이 일찌감치 몰려 기자실의 공기는 뜨거워지고 있었다. 기자실의 명당은 부지런한 한국 기자들의 몫이었다. 한국 기자들은 폐막식 전에 미리 짐을 쌀 수 없었다. 2019년 <기생충>의 황금종려상 수상의 영광을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이 이어받을지도 모른다는 (충분히 기대해봄직한) 예상 때문이었다. 실제로 폐막 당일, <헤어질 결심>과 <브로커>팀 모두 폐막식에 참석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폐막식에 참석한다는 건 수상과 연결된다는 얘기다. 기자들은 분주하게 기사의 리드를 뽑았다. 대체적 예상은 <헤어질 결심>에 황금종려상이나 그에 버금가는 상이 주어질 것이고, <브로커>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상단에 놓일 수준의 작품은 아니었기에 송강호의 남우주연상에 무게가 실리는 쪽이었다.

루벤 외스틀룬드

박찬욱 감독의 황금종려상은 언제?

예상은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여우주연상에 <성스러운 거미>의 자흐라 아미르 에브라히미가 호명되고, 각본상에 타릭 살레 감독의 <보이 프롬 헤븐>이 불린 다음, 남우주연상의 주인공이 소개될 차례가 되자 익숙한 한글 이름 세 글자가 들려왔다. “<브로커>의 송강호!” 설마 했던 일이 현실이 되자 한국 기자들은 단체로 환호성을 질렀다. 한국 배우 중 칸영화제에 최다 진출(<괴물>(2006), <밀양>(2007),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박쥐>(2009), <기생충>(2019), <비상선언>(2021), <브로커>(2022))한 배우 송강호는 한국 남자배우 최초로 칸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기쁨을 누렸다. 3년 전에는 <기생충>의 주인공으로, 지난해엔 경쟁부문 심사위원으로 칸을 방문하며 부쩍 칸영화제와 긴밀하게 스킨십을 해온 송강호의 이번 남우주연상 수상은 한국영화에서 차지하는 송강호의 독보적 위치에 대한 존중과 최근 한국영화가 보여준 상징적 위상에 대한 인정이 혼합된 측면이 있다. 강동원, 이지은, 배두나, 이주영 등 배우들의 앙상블이 중요한 영화인 <브로커>는 송강호의 원맨쇼를 구경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니고, 배우상과 작품상의 공동 수상이 불가한 칸영화제의 원칙 때문에 상대적으로 감독과 영화 자체에 스포트라이트를 내줘야 했던 경험이 많았던 상황을 생각하면, 비록 <브로커>의 상현이 송강호 최고의 캐릭터는 아니라 할지라도 꽤 시의적절한 수상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말 그대로 역사적 순간은 뒤이어 찾아왔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이 감독상을 수상하는 순간, 올해 칸영화제에서 한국영화가 축제의 한복판에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박찬욱과 송강호. 오랜 기간 한국영화를 떠받쳐온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영화로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받아 서로 다른 두개의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한국영화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박찬욱 감독이 <아가씨> 이후 6년 만에 선보인 <헤어질 결심>은 서래(탕웨이)와 해준(박해일) 두 인물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를 형사와 용의자라는 캐릭터 구도를 빌려 장르적으로 풀어낸 영화다. 히치콕의 영화들을 연상케 하는 작법과 스타일로 클래식한 영화의 멋과 재미를 안기는 이번 영화는 시각적 잔상에 몰두하는 대신 감정적 여운에 집중하며 고유의 기품을 발산한다. 세련된 유머, 다층적 의미의 대사,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한데 어우러져 흥미로운 질서를 구축한다. 히치콕의 자장 안에서 새로운 스타일을 연습했다는 박한 평도 있지만 박찬욱의 감독상 수상은 모두가 수긍할 만한 결과였다. <프랑스 엥포>는 “박찬욱의 감독상은 충분히 정당하다. 작품의 우아함은 숏마다 드러난다. <올드 보이>의 심사위원대상, <박쥐>의 심사위원상, <헤어질 결심>의 감독상. 박찬욱은 언제쯤 황금종려상을 받게 될까?”라 했고, <파리 마치>는 “작가영화와 대중영화의 완벽한 결합”이라며 작품에 지지를 보냈다.

한국영화의 성취로 뜨거운 칸영화제였지만, 경쟁부문 수상 결과 전체를 놓고 보면 올해 칸영화제는 확실한 노선 없이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지난해 <티탄>이 황금종려상을 받은 것처럼 파격적인 결과도 없었고, 지나친 예우는 아쉬움을 남겼다. 프랑스 현지 언론은 대체로 ‘모순적이고 정치적인 선택’이라 총평했고, <텔레라마>는 21편 중 10편이 수상한 것을 두고 “올해 심사위원들은 너무 자비로워서 문제였을까?”라며 나눠주기식 수상에 이의를 제기했다.

<트라이앵글 오브 새드니스>

황금종려상… <트라이앵글 오브 새드니스>가 최선이었나

황금종려상은 5년 전 <더 스퀘어>로 황금종려상을 받았던 루벤 외스틀룬드의 <트라이앵글 오브 새드니스>에 돌아갔다. 구토와 설사가 난무하는 체면 차리지 않는 블랙코미디를 포복하며 즐긴 것은 맞지만, 이 작품에 황금종려상을 안기는 것이 최선이었나 하는 의문은 남는다. 모델 인플루언서 커플과 세계 최고의 부호들을 모아놓고 현대 자본주의사회의 공고한 계급을 전복하는 루벤 외스틀룬드의 냉소적 희극은 분명 다른 경쟁작들과 차별화되는 개성을 보여주지만 전작보다 단순해진 풍자와 과도한 1차원적 개그를 재미있는 난동 그 이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확실한 건 한없이 일상적인 상황- 이를테면 레스토랑에서 밥값을 누가 계산하느냐 하는 문제– 에 사회적 고정관념과 계급 문제와 젠더 문제를 뒤섞어 골때리는 코미디 시퀀스 하나를 뚝딱 만들어내는 감독의 솜씨엔 감탄하지 않을 수없다는 것이다. 그에게 정치적 올바름이란 모두가 예외 없이 풍자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성역 없음이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라이앵글 오브 새드니스>가 <더 스퀘어>와 비교해 확실한 도약을 보여준 것이 아니라면 올해 황금종려상은 다른 이에게 돌아갔어도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르덴 감독의 경쟁자는 그 누구도 아닌 다르덴 감독이듯, 그래서 올해 심사위원단이 다르덴 감독의 영화를 경쟁부문에 초청해놓고 ‘75주년 특별상’을 특별히 만들어 수여한 것처럼, 일정한 수준의 성취를 이룬 사람들에게는 보다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건 데이비드 크로넌버그, 고레에다 히로카즈, 크리스티안 문쥬, 박찬욱 등 여러 거장들에게 공평하게 해당되는 이야기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올해 황금종려상은 루카스 돈트 감독의 <클로즈>에 돌아갔으면 어땠을까 싶다. <클로즈>는 클레르 드니 감독의 <스타스 앳 눈>과 함께 심사위원대상을 공동 수상했다. 이 공동 수상은 우정과 부성애와 성장과 탐험과 자아성찰을 모두 담으려다 길을 잃어버린 <여덟개의 산>과 당나귀의 시점을 취해 아름다운 예술적 실험을 감행한 <EO>가 심사위원상을 나눠가진 것보다 더 납득하기 힘든 결과였다. 클레르 드니의 <스타스 앳 눈>은 미국 작가 데니스 존슨이 1986년에 발표한 동명 소설을 각색한 작품으로, 끈적한 열대기후의 니카라과에 발이 묶인 미국인 기자와 영국인 사업가가 사랑을 하고 탈출을 시도하는 이야기다. <스크린 데일리>는 “정치 스릴러인 척하는 에로틱 캐릭터 드라마인 척하는 프랑스 작가영화”라고 소개하기도 했는데, 관능적이고 나른하고 철없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 마거릿 퀄리(앤디 맥다월의 딸이다)의 매력이 유일하게 러닝타임을 버티게 하는, 산만하고 도취적인 영화다. 그렇기에 <스타스 앳 눈>과 평단의 찬사를 받은 <클로즈>가 심사위원대상을 공동 수상한 것을 두고, 클레르 드니에 대한 심사위원장 뱅상 랭동의 ‘예우’가 작용한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 아닐까.

다시 <클로즈> 얘기로 돌아가서, 벨기에의 젊은 감독 루카스 돈트의 <클로즈>는 올해 칸의 최고 수확이었다. 1991년생 신성은 거장 다르덴 형제 감독과 함께 올해 벨기에영화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2018년, 발레리나를 꿈꾸는 트랜스젠더 소녀의 이야기 <걸>로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받아 황금카메라상과 퀴어종려상 등을 수상했던 루카스 돈트는 두 번째 장편 <클로즈>로 올해 경쟁부문에 진출해 거장들과 어깨를 나란히했다. <클로즈>는 13살 두 소년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함께 뛰놀다 한 침대에서 잠이 드는 것이 일상인 레오와 레미는 새 학기가 시작되고 새 친구들을 사귀면서 ‘관계’를 시험받는다. 관계를 정의할 필요가 없었기에 행복했던 소년들은 자신들을 커플로 바라보는 친구들을 의식하며 사이가 멀어진다. 소년들의 깊은 우정은 사실 사랑에 가깝지만, 사회적 시선을 감당하기에 이들은 아직 어리다. 감각적 연출이 극대화된 초반부, 감정적으로 휘몰아치는 후반부 모두 헤아릴 수 없이 감동적이다. 심사위원대상 수상자로 무대에 오른 루카스 돈트 감독이 눈물을 훔치던 순간은 올해 시상식에서 가장 순수한 감흥을 준 순간이었다.

<클로즈>

기억해야 할 영화들

수상은 불발됐지만 기억해야 할 영화들도 있다. 여러 번 칸에 초대받았지만 이번에도 빈손으로 돌아간 제임스 그레이의 <아마겟돈 타임>과 뒤늦게 칸에 입성한 켈리 라이카트의 <쇼잉 업>은 이른바 수상하기 좋은 부류의 영화는 아니지만 영화 팬들을 미소짓게 하기엔 충분한 작품들이다. 제임스 그레이 감독의 유년 시절이 반영된 자전적 영화 <아마겟돈 타임>은 1980년을 배경으로 중산층 유대인 소년 폴이 흑인 친구 조니를 만나 세상의 부조리를 경험하고 갈등하고 성장하는 드라마다. 폴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외할아버지로 등장하는 앤서니 홉킨스의 명연기, 명대사도 인상적이며 일그러진 욕망과 트라우마 대신 인간의 정직과 용기를 옹호하는 따스한 시선이 제임스 그레이의 근작에선 느끼지 못했던 감흥을 전한다. <퍼스트 카우> <어떤 여자들> <어둠 속에서>의 켈리 라이카트 감독은 <쇼잉 업>을 통해 귀엽고 위트 있게 일상을 사유한다. 감독과 오래 협업해온 미셸 윌리엄스가 전시를 앞둔 예술가로 출연하며, 영화는 전혀 아름답지 않은 관계들로 이루어진 예술가의 진부한 일상과 그 내부의 진동을 가만히 포착하고 특별하지 않은 것의 특별함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킨다.

올해 경쟁작 21편의 수준이 최고였다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지금의 시대와 예술을 사유하는 21편의 세계는 그만큼 다채로웠다. 다채로운 세계와의 만남. 그것이 가능하도록 한 영화제라는 축제의 장. 팬데믹 이전으로 시계를 돌린 듯했던 제75회 칸영화제가 마침표를 찍었다. 칸에서 본 많은 영화들이 국내 관객과도 곧 정식으로 인사 나눌 수 있길 기대하며, 올해 칸영화제에 안녕을 고한다.

<쇼잉 업>
사진제공 칸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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