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헤어질 결심' 김지용 촬영감독 "시점숏을 통해 훔쳐본다는, 은밀한 느낌을 더했다"

칸국제영화제 감독상(Prix de la Mise en Scène)은 프레임을 구성하는 미장센의 결과물로 주어지는 상이다. 김지용 촬영감독은 “카메라와 조명뿐 아니라 훌륭한 요소들이 전체적으로 잘 조율된 점”이 평가의 결과라고 말했다. <헤어질 결심>은 그에게도 “마음에 드는 숏 하나가 아니라 좋은 이미지가 잘 연결되어 아름다운 신을 가진 영화”다. 김지용 감독은 박찬욱 감독의 다음 프로젝트인 <HBO> 드라마 <동조자>에서도 함께한다. <동조자>의 첫 헌팅을 앞두고 있는 그에게 <헤어질 결심>의 촬영과 미장센에 대해 들었다.

- 촬영 컨셉을 잡아가는 과정은 어땠나.

= 고전영화를 많이 봤다. 감독님이 안개 낀 바닷가 장면이 있는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붉은 사막>이나 루키노 비스콘티의 영화를 권해줬다. 클래식 필름의 예스런 질감에 대해 많이 이야기했고, 처음부터 감독님은 애너모픽렌즈를 썼으면 하셨다. <리틀 드러머 걸> 때 쓴 쿠크 크리스털 익스프레스 렌즈를 떠올렸는데 국내에서 구할 수도 없고 해상도가 떨어져 극장용으로는 적합하지 않았다. 여러 렌즈를 테스트한 후 쿠크의 다른 렌즈를 골랐다. 콘트라스트나 해상도가 상당히 괜찮고 렌즈 주변부 왜곡이 매우 예쁘다. 주로 쿠크 애너모픽렌즈를 쓰고 빈티지 계열의 단렌즈와 줌렌즈도 섞어 썼다.

- 캐릭터의 심리와 시선과 딱 맞아떨어지는 줌과 패닝의 사용이 눈에 띄었다.

= 무빙에는 그런 의도가 있었다. 대상이 잘 보이지 않을 때 카메라는 좀더 들여다보고 싶은 것처럼 다가가자. 배우가 몸을 돌리면 더 궁금해지게끔 한 템포 있다가 다가가는 식이었다. 카메라의 움직임은 최소화하기로 했다. 패닝이나 줌은 옛날 느낌이 많이 나니까 해보고, 크레인 활용이나 트래킹은 제한을 두자고 했다. 콘티를 짤 때 이런 몇 가지 룰을 정했는데 마지막 룰은 이 룰에 얽매이지는 말자는 것이었다.

- 수사와 연애는 상대방을 더 알고 싶고 속내를 궁금해한다는 점에서 닮아있다. 카메라 무빙뿐 아니라 다양한 시점숏 역시 비슷한 목표를 가진 것처럼 보인다.

= 망자의 시점 자체가 영화적인 표현이니 적극적으로 활용해보자고 했다. 그러다 휴대폰 시점도 나오고 모니터 시점도 나오고…. 스토리보드 작업을 하면서 계속 디벨롭됐다. 서래(탕웨이)와 해준(박해일)은 상당히 비밀스러운 관계다. 시점숏은 여러 가지 느낌을 줄 수 있다고 판단했는데, 예를 들면 누군가 혹은 무엇이 훔쳐본다는 느낌, 그런 은밀한 느낌도 더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 두 사람은 시간이 갈수록 대화와 눈빛, 냄새를 통해 서서히 가까워진다. 결정적으로 둘이 밀착되는 순간은 서로가 같은 종족이라는 것을 파악하면서부터다.

= 서로 심리적 거리가 먼 상황에서도 동질감을 느끼는 순간에는 화면의 사이즈나 구도 등 프레이밍을 맞추기도 했다. 거리감에 대한 고려도 있었는데 가장 잘 드러난 건 심문실이었다. 가장 먼 거리에서 심문을 시작하지만 저녁을 먹을 때쯤이면 함께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볼 만큼 가깝게 붙어 앉는다. 원래 있던 테이블에서라면 둘이 그렇게 가깝게 붙을 수가 없다. 그 장면은 더 폭이 좁은 테이블을 제작해서 둘이 더 가깝게 앉게끔 했다.

- 클래식한 느낌을 얻기 위해 촬영이나 조명을 더하기보다 덜어내는 방식으로 작업했다.

= 가장 간단하게 하자, 그런 생각으로 임했다. 조명도 상당히 간결한 편이었다. 원래도 간결한 걸 좋아하는데 이 영화에 그런 전략이 잘 맞았다. 또 로케이션 특성상 조명을 쓰기가 쉽지도 않았다. 자라를 추격하는 밤 장면에도 인공조명 대신 자동차 불빛을 활용했고, 더 없을까 싶어 헬멧과 바이크에 LED 장식을 더해보기도 했다. 시골 버전의 다프트 펑크 느낌도 나고. (웃음) 현장에서 이런 아이디어가 있으면 박 감독님은 흔쾌히 해보자는 편이다. 의견도 많이 주시는데 조명에 관해서 박찬욱 감독님만큼 적극적으로 의견을 주시는 분도 드물다.

- 청록색이 서래의 색으로 쓰이는데 조명에 반영된 부분은 없나.

= 색의 요소가 꽤 있다. 회식 자리에서 후배 수완(고경표)이 행패를 부릴 때 해준 뒤쪽의 창에서 뜬금없이 청록의 빛이 들어온다. 전체적으로 조명 컬러를 도드라지게 쓰지 않았지만 서래가 해준을 재우는 장면에서 한번 강조하기도 했다. “당신은 해파리예요” 하고 불을 끄면 청록색이 확 올라온다. 수족관의 느낌, 심해의 느낌을 떠올렸고 서래의 중요한 의상 컬러와도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청록색 요소들이 의상 말고도 곳곳에 조금씩 묻어 있다.

- 빛의 요소에 가장 영향을 끼친 건 안개가 아니었을까.

= 안개는 100% CG였다. 시각효과(VFX)로 안개를 깔았을 때 잘 어울리는 배경을 찍어야 하는데 그게 까다롭다. 자연과학적으로 납득할 수 있도록 안개 낀 날의 빛의 질감이나 특징을 관찰했다. 실제와 꼭 맞아야 한다기보다 사람들이 안개를 보고 이질감을 느끼면 안되니까. 아무도 안개를 관찰하지 않지만, 내가 평소에 봤던 안개가 아니다 싶으면 딱 다르다는 걸 느낀다. 이야기 몰입에 방해되지 않도록 VFX 슈퍼바이저와 함께 영화에 맞는 안개를 구현해갔다.

- 안개와 더불어 파도와 노을까지 더해진 해변 장면이 대단히 인상적이다.

= 애초에 실재할 수 없는 공간이라 로케이션팀에서 많이 고생했다. 동해의 해변과 모래가 좋았지만, 일몰과 조수 간만의 차가 있어야 해서 동해와 서해 세 군데에서 촬영하고 더했다. 바닷가의 안개는 흐른다. 밀물과 함께 안개도 같이 밀려들어오는 느낌을 내려고 했는데, 사실 바닷가에서 우리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국립공원이거나 군사지역 앞이라 전기나 장비를 가지고 내려갈 수 없었고, 일몰 시에 만조가 돼야 하는데 그게 두달인가 석달에 한번 오는 만조였다. 일몰과 만조에 고난도의 스케줄링을 했다. 이틀의 만조 중 첫날에는 눈보라가 치는 바람에 VFX팀이 눈을 다 지우느라 많이 고생했다. 부분적으로 합성하기도 했지만, 마지막에 거세게 들이치는 파도는 다 진짜다. 여러 사람의 노고로 완성된 장면이다.

- 얘기를 듣다보니 영화를 다시 보고 싶어진다.

= 큰 화면에서 두번, 세번 보면 새로운 게 많이 보일 거다. 의도적으로 그런 레이어를 깔았다. 예를 들면, 영화가 진행될수록 해준을 프레임 안에 가두고 싶었다. 서래에게 빠져들수록 그는 프레임에 갇히는 거다. 소품도 재미있는 것들이 많다. 회식 장면에서 해준이 혼자 남아 있을 때 한쪽에 바닷가 그림의 액자가 걸려 있는데 거기에 일몰 느낌이 날 수 있게 조명을 더했다. 또 서래와 해준 둘이 초밥 먹는 장면에서 수저받침이 산과 바다다. 간장 튜브가 물고기 모양이라 인서트를 찍을 때 물고기들이 바다로 향하게 해두고 찍었다. 이 둘이 이제 바다로 갈 거라는 암시다. (웃음) 이건 나만 알 법한 것들이지만, 이런 요소들이 군데군데 배치돼 있어 발견하는 재미가 있을 거다.

내가 꼽은 <헤어질 결심> 속 이 장면

비 내리는 사찰 신

맑은 날 촬영했던 비 내리는 사찰 신. 꿈인가 생시인가 싶을 만큼 고즈넉한 느낌을 담고 싶었다. 산과 사찰 사이로 해 넘어가는 시간을 계산해서, 해가 그림자 안에 있을 때 비를 뿌리고 찍었다. 예전부터 예쁘다고 생각했던 송광사에서 찍어서 좋았고, 시나리오 읽을 때부터 개인적으로 좋아했던 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