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헤어질 결심' 정서경 작가 "'헤어질 결심'은 100% 관객에게 가닿았다"
2022-07-07
글 : 임수연
사진 : 오계옥

“내 영화에도 여성성, 아이다운 천진함, 동화적인 아름다움, 낙관주의, 설렘, 감사하는 마음, 쓸데없는 공상 같은 것들이 들어 있다면 그건 정서경에게서 비롯한 것이다. 내게서 나온 아이디어들이 없지는 않겠지만 그조차도 정서경에 의해 일깨워진 것이다.” <친절한 금자씨> 각본집 서문에서 박찬욱 감독은 정서경 작가와의 협업이 그에게 미친 영향을 이렇게 설명한다. 두 사람이 모니터 한대에 키보드 두개를 연결한 후 주어와 목적어, 서술어를 번갈아 입력하는 방식으로 시나리오를 작업한다는 일화는 이미 유명하다. 창작자로서 영감을 주고받으며 거의 뇌를 공유하듯 글을 쓰는 관계이다 보니 당연히 박찬욱 감독에게서 출발한 것처럼 보이는 부분도 정서경 작가에게서 비롯된 경우가 있다. 이를테면 서래(탕웨이)의 죽은 남편 기도수(유승목)가 말러의 음악을 들으며 산을 올랐다는 설정은 말러의 팬이라 고백한 박찬욱 감독이 아닌 정서경 작가의 순간적인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때문에 <헤어질 결심>에 보다 내밀히 접근하기 위해서는 박찬욱과 정서경, 두 창작자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친절한 금자씨>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박쥐> <아가씨>에 이어 <헤어질 결심>의 시작부터 함께한 박찬욱 영화의 공동 크리에이터, 정서경 작가를 만났다.

- 원래 박찬욱 감독의 최고작은 <복수는 나의 것>이라고 꾸준히 언급해왔는데, 이번에 <헤어질 결심>으로 바뀌었다고.

= 칸국제영화제에서 영화를 보고 ‘이걸 내가 썼다니!’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지금까지의 영화 중 시나리오와 완성된 작품 사이의 거리가 제일 멀다. <친절한 금자씨> 시나리오를 2003~2004년쯤 썼으니 동료 스탭들과 안 지도 20년 가까이 됐다. 사실 류성희 미술감독과는 꽤 친하지만 다른 분들하고 아주 가깝게 지내지는 않았는데 어느덧 만나지 않아도 동기화되는 팀워크가 생겼다. 예전에는 시나리오대로 이렇게 찍혔구나 확인하는 식으로 영화를 봤는데, 시나리오는 <헤어질 결심>의 일부고 그 안에 너무 많은 게 채워져 있더라. 탕웨이와도 그런 얘기를 나눴다. 자기 안에서 비롯된 것과 우연하게 일어난 것들이 섞이면서 어떤 화학작용이 일어난 것 같다고. 촬영, 미술, 음악 등 다른 사람들이 한 일이 무엇인지, 그들이 얼마나 조화로운지 눈에 들어왔다. 이번엔 특히 분장감독의 마음을 많이 생각했다. ‘불쌍하다’는 느낌을 어떻게 분장으로 보여줄 수 있을까? 그런데 우리는 서래 캐릭터의 마음을 다 느낄 수 있다. 보통은 주인공이 눈물 흘리는 모습을 클로즈업하면 관객이 이입하고 관객 또한 눈물을 흘리게 되는데, <헤어질 결심>은 서래가 사라진 자리만 보여주는데도 슬프다. 이건 관객이 그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캐릭터를 위해 슬퍼하는 거다. 탕웨이도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렸는데, 나를 위해 운 게 아니라 서래가 안쓰러워서다”라고 했다.

- 시나리오를 쓸 때 박찬욱 감독이 데이비드 린 감독의 <밀회>를 다시 감상하길 권했다는 말을 들었다.

= 시나리오를 3분의 2쯤 썼을 때였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나와 감독님의 멜로 감성은 좀 안 맞다. (웃음) <박쥐> 때도 나는 끝까지 상현(송강호)이 태주(김옥빈)에게 너무 잘못했다고 생각했다. 죽으려면 혼자 죽지 왜 굳이 태주를 데려가서 같이 죽는 건지! 뱀파이어가 됐으면 뱀파이어로 살아야 한다는 태주 말을 왜 안 들어주나. 우리는 멜로를 함께 쓸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영국에서 <리틀 드러머 걸>을 찍고 있던 감독님이 메일을 보냈다. <박쥐>풍에 마르틴 베크 같은 형사가 나오는 치정극이라니, “나는 멜로도 못 쓰지만 치정극은 더더욱 싫다”고 했다. 그런데 캐릭터에 대해 하나씩 말을 얹다보니 자연스럽게 디벨롭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드라마 <마더> 때문에 칸국제시리즈 페스티벌에 가던 길에 잠깐 런던에 들렀다 충격을 받았다. 당시 감독님은 상당히 지치고 힘든 상태였다. 감독님은 시나리오를 쓰면 사람이 제자리로 돌아온다. (웃음) 감독님을 살리려면 시나리오 테라피가 긴급하다는 생각에 한국에 돌아가면 시나리오를 쓰겠다고 했다. 그리고 탕웨이가 아니면 멜로를 못할 것 같다고, 나는 이미 탕웨이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 그때 꼭 집어 탕웨이를 언급한 이유가 있나.

= 그 자리에서 생각나는 대로 불쑥 던진 말이다. 우울할 때 예쁜 얼굴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니까 탕웨이 사진을 자주 보곤 했는데, ‘이젠 탕웨이도 충무로에서 일할 때가 됐어!’ 라는 문장이 나도 모르게 머릿속에 떠올랐나 보다. 그리고 캐스팅에 성공했을 때 충무로에서 보낸 15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면서 “내가 여기서 한 것 중 가장 보람찬 일이다. 내가 한국영화계에 큰 일을 한 것”이라며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칸에서 영화를 보니 “한국영화가 아니라 세계 영화에 좋은 일을 한 것”이더라. (웃음)

- 과거와 현재, 떨어진 두 공간이 흥미롭게 공존하는 구성이 많은데도 전체 스토리는 심플하게 이해됐다.

=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를 쓸 때 하고 싶은 게 있었다. 강력한 주인공에게 관객을 감정이입시켜서 끝까지 끌고 가는 작품이 답답하다고 생각했다. 다양한 캐릭터와 다수의 플롯이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구조물을 만드는 시나리오를 쓰고 싶다고 희미하게 생각했는데, 이번 <헤어질 결심>에서 그렇게 했다. 이를테면 암벽등반 신은 3개의플롯이 흘러간다. 해준(박해일)과 서래, 기도수의 유튜브까지 세 종류의 시간이 하나의 장소에서 공존하는 게 너무 재미있었다. 사실 이러한 구성은 관객이 이해해야만 완성되는 플롯이다. 뇌가 스토리를 받아들이는 속도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복잡한 이야기를 다룰 땐 중간중간 여백을 줘야 하는데, <헤어질 결심>에는 여백이 없고 플롯들이 그대로 충돌한다. 그런데 <헤어질 결심>은 영화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하는 사람들도 재관람을 하고 영화를 이해하려고 한다. 이야기가 흥미롭다면, 복잡한 영화가 복잡하다는 이유로 외면받는 건 아니라는 걸 확인했다.

- 서래의 한국어가 서툴다는 설정 때문에 쉬운 말로 풀어서 설명하는 장면들이 계속 등장한다. 실제 시나리오를 써보니 이런 소통 방식이 대화에 미치는 영향이 무엇 같던가. 그리고 서래의 한국어는 어딘가 어색하지만 의미는 정확하다. 특히 ‘마침내’, ‘단일한’처럼 정확히 표현하는 서래의 캐릭터를 설명해주는 단어들이 있다. 임호신(박용우)의 문자 메시지는 맞춤법이 엉망진창인데 서래는 올바른 문법을 구사하는 것도 흥미로웠다.

= 말을 계속 들여다보면서 본래의 의미를 생각하다 보니 다 낯설게 바라보게 됐다. 그리고 이 인물이 형사라거나 중국인이라는 점보다 본래 가진 마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마침내’, ‘단일한’ 같은 표현을 시나리오에 넣는 걸 감독님이 워낙 좋아한다. 서래가 쓰는 말이 캐릭터를 만들 수 있도록 해보자는 의도를 갖고 우연히 모은 단어들이다. 감독님이 영국에서 드라마를 찍으면서 소통이 어색할 때 짓던 미소 같은 것도 살리되(웃음) 한국말을 못한다고 여성 캐릭터를 어린애처럼 만들지는 말자는 게 있었다. 또한 탕웨이가 중국어를 할 때 특유의 분위기가 있지 않나. 서래가 한국어를 잘하지 못할 때 이 여자를 바라보는 시선과 중국어를 할 때의 그것이 다르다. 중국에서 그는 우리만큼 말이 유창하고, 어쩌면 훨씬 사납고 생명력 있는 사람이었을 거라는 걸 보여주는 데 탕웨이라는 배우의 중국어가 좋은 역할을 할 것 같았다.

-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당신 만날 방법이 오로지 이거밖에 없는데 어떡해요” 등등 서래는 드라마로 한국어를 배우고, 배운 표현을 그대로 해준에게 쓴다. TV드라마에 나올 법한 대사로 멜로 감정선을 만드는 구성도 독특했다. 덕분에 자연스러운 구어체가 아닌 대사, 어쩌면 문학에 가까운 표현들도 서래의 캐릭터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 원래 생활감이 묻어나는 대사를 잘 못 쓰는 것 같다. 그래서 박 감독님이 대사를 많이 고친다. 그런데 <헤어질 결심>은 탕웨이의 한국어를 알아듣기 위해 영화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문어체 대사도 자연스러워진다. 서래가 보던 사극은 원래 <선덕여왕>의 한 장면을 쓰려고 했다. 맥락에 딱 맞는 대사가 있었는데 저작권 문제를 풀지 못했다.

- “해준씨 같은 바람직한 남자들은 나랑 결혼해주지 않으니까. 얼굴 보고 한마디라도 하려면 살인사건 정도는 일어나야 하죠.” 불법 입국 화물선에 비참하게 갇혀 있던 그의 이야기를 들어줬다는 이유로 서래는 폭력을 일삼는 남자와 결혼한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서래 같은 이방인이 처한 위치를 보여준다.

= 사랑 때문에 살인을 저질렀던 홍산오(박정민)의 “여자들은 그런 쓰레기 같은 새끼들이랑 왜 자요?”와 대구를 이루는 대사다. 사실 한국 사회의 계층은 짝짓기 원리에도 스며 있다. 밑바닥에 있는 중국인 여자는 어떤 남자를 만날까? 소년원에 갔다 온 남자는 어떤 여자랑 잘까? 이들도 억울하고 더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지만 자기 힘만으로는 되지 않는 일이 있다.

- 반면 해준의 아내 정안(이정현)은 안전을 대표한다. 한국 사회 밑바닥에 있는 서래와 미결 살인사건에 집착하는 해준의 위치와 대비된다.

= <헤어질 결심>을 보고 히치콕 영화가 떠오른다는 감상이 많던데, 내가 진짜 마음속에 히치콕을 떠올리며 쓴 캐릭터가 있다면 정안이다. <현기증>에서 정신이 불안정한 퍼거슨(제임스 스튜어트)은 대학 동창 미즈 앞에서는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 신이 참 좋았다. 그렇게 변함없는 인물을 영화에 넣고 싶었다. 살인사건을 계속 마주해야 하는 해준이 집에 돌아오면 안전함을 느낄 수 있는 존재, 그래서 정안의 직업도 원전 안전 관리 전문가다. 그렇게 우리가 살면서 기대는 안전한 질서가 있다. 그런데 이를 외국인의 눈으로 보면 어떨까? 서래의 눈으로 본 한국 사회, 사랑이나 돌봄의 의미는 한국인들과 다르지 않을까? 지금 시나리오에서 없어진 대사 중에 “한국에서는 남편이 3일째 연락이 안되면 신고를 합니까?”라는 내용도 있었다. 서래는 그런 세계에서 온 인물이다. 해준은 양치기 같은 존재다. 사람들을 안전하게 지키지만 목표를 위해 폭력을 쓸 수 있고 어쩌면 폭력을 즐길 수도 있다. 안전을 위해 폭력을 휘두르는 경계인 해준과 야만이나 원시로 표현될 수 있는 세계에서 온 서래를 만나게 하고 싶었다.

- 결국 <헤어질 결심>은 “사랑한다”는 표현을 서래와 해준의 언어로 재구성해가는 영화다.

= 사실 멜로영화 시나리오를 쓰기 꺼려졌던 이유 중 하나가 ‘사랑’이란 말을 직접 쓰기 싫어서다. TV드라마의 사랑 고백 장면은 잘 못 본다. 원래 트리트먼트를 쓸 때도 감정 없이 동작만 쓰는 편인데, 그렇게 동사와 명사만을 모아서 사랑한다는 표현으로 만들고 싶었다. <아가씨> 때도 어떤 표현을 여러 번 반복 사용하면서 새로운 의미로 탄생시키는 작업을 했는데 이번 작품에선 ‘산’에 해당하는 1부가 끝날 때 해준이 했던 말을 ‘바다’가 배경인 2부에서 ‘사랑해’라는 의미로 바꾸는 게 목표였다. 핸드폰을 바다 깊숙이 버리라는 말에 점점 새로운 의미가 붙고 울림이 커지면서, 서래 자신이 핸드폰인 것처럼 깊은 바닷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1부가 끝날 때 해준이 했던 말, “저 폰은 바다에 버려요. 깊은 데 빠뜨려서 아무도 못 찾게 해요”가 곧 사랑한다는 의미라는 걸 영화를 본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다. 그동안 박 감독님과 영화를 하면서 관객이 작품을 100% 이해하지는 못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됐는데, <헤어질 결심>은 100% 관객에게 가닿았다. 마치 바닷가에서 스스로 조개를 캔 것처럼 자신이 영화에서 받아들인 것을 소중하게 여기더라. 그게 참 기분 좋았다.

- 관객만 그 의미를 알고 해준에게는 전달되지 않는 대사도 있다. 가령 “날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나는 순간 내 사랑이 시작됐죠” 말이다.

= 해준은 ‘붕괴’에 관한 음성 파일을 듣는 순간 서래의 마음을 처음으로 알았고, 그때부터 해준의 마음은 다시 시작된다. 아직도 사랑이 계속되고 있는 줄 알고 만조로 물이 차오른 바닷가에서 서래를 찾는다. 하지만 언제 사랑이 끝날지 모른 채로 계속 헤매고 있을 거다. 거기서 영화가 끝나기 때문에 영화를 다시 보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것 같다. <헤어질 결심>의 완성본을 보고 박찬욱 감독님이 “영화는 역시 멜로야. 그리고 나는 멜로를 잘해”라고 했던 말이 사실이었구나 생각했다. 내게 이 작품을 쓰자고 강요해주셔서 감사하다. 인정하기 싫지만 감독님 말이 다 맞았다. (웃음)

- 작가의 의도가 궁금했던 대사가 있다. 해준은 왜 정안에게 “젊은 중국인 여자가 산에서 죽은 사건이 있는데 늙은 남편이 불쌍하다”며 사건을 정반대로 묘사하는 건가.

= 이미 그 여자에게 너무 끌렸는데 부인에게 말할 수 없으니까 사건 내용을 곧이곧대로 말하지 못하는 거다. 유부녀 세계에서는 캐치할 수 있는 디테일이다. (웃음) 정안도 시장에서 이미 서래와 해준의 관계를 눈치챘기 때문에 임호신과 명함도 주고받은 거다.

- 그 장면에서 해준이 정안의 입장을 ‘원전 완전 안전’이라고 요약하거나 호신이 “주식 애널리스트입니다. 항문 좋아하는 애널리스트가 아니고요”라고 소개하는 건 웃음을 유도한 건가, 아니면 캐릭터의 성격을 보여주는 건가.

= 그건 100% 박 감독님 거다. <3인조> 때부터 이어져온 박 감독님식의 유머다. <친절한 금자씨> 때 쓰고 너무 만족해서 30분 동안 좋아했던“가불은 불가”랑 같은 거다. (웃음)

- 칸국제영화제에서도 연기상 예측에 주연배우들이 이름을 올릴 만큼 배우의 매력이 돋보이는 영화다. 탕웨이와 박해일이 캐스팅된 순간부터 <헤어질 결심>은 아름다운 마스터피스가 될 운명이었다.

= 탕웨이는 사람의 눈을 보면서 갑자기 예상치 못한 말을 해서 사람을 무척 놀라게 하는 사람이다. <헤어질 결심> 때문에 처음 만났을 때 통역 없이 대화하고 싶어서 영어로 피칭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문명특급> 녹화 중에 나를 빤히 쳐다보며 그 당시 나와 영혼의 연결을 느꼈었다고 말하는 거다. 그때는 탕웨이가 영화를 한다고 할지 어떨지 전혀 모르던 상황이라 정작 난 우리의 영혼이 연결됐다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너무 큰 혼란에 빠졌다. (웃음) 속에 없는 말은 하지 않고, 굉장히 사려 깊고, 통찰력 있고, 최단거리 이해가 가능한 사람이다. 박해일은 심해 같은 배우다. <아가씨> 때 일본어를 하지 못하는 김민희, 김태리가 일본어 연기를 잘해내는 것을 보고 탕웨이와의 작업도 가능할 거라고 자신했는데, 탕웨이는 자신이 직접 느끼기 위해서는 한국어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며 문법 공부부터 시작하는 타입이다. 가슴으로 한국말이 다가올 때까지 20~30테이크씩 연기를 하는데, 그럴 때 박해일은 탕웨이를 위해 똑같이 연기해줬다. 그때 너무 감동을 받았다. 자기 연기를 돋보이게 하려는 게 아니라 함께하는 배우가 따라올 수 있게 돕는 인품에 놀랐다. 평생 한 남자배우와 작업해야 한다면, 박해일 배우와는 뭘 해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꼽은 <헤어질 결심> 속 이 장면

서래의 자랑스러운 외조부 계봉석씨

시나리오를 볼 때마다 웃었던 장면이다. 서래가 외조부와 찍은 사진을 가리키며 “나!”라고 하는 것도 너무 귀엽지 않나. 서래가 어떤 인물인지 말해준다. 어떤 다큐멘터리에서 러시아에 사는 고려인 소년이 자기 외할아버지가 한국의 독립운동가였다고 엄청난 자부심을 갖고 말하는 모습을 봤다. 과연 이 소년이 생각하는 것만큼 한국인들도 그를 존중해줄까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붙었지만, 그 소년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외조부가 독립운동가라는 사실은 그의 자세를 꼿꼿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참고로 원래 시나리오에는 계봉석씨가 중국 하숙집 딸이던 서래의 엄마를 입양해서 키웠다는 이야기라든지 수완(고경표)이 계봉석씨의 정체를 알아내는 신도 있었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