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헤어질 결심' 조영욱 음악감독 "멜로드라마의 고전적 음악 공식은 일부러 따르지 않았다"
2022-07-07
글 : 이우빈
사진 : 최성열

“아마 내가 한국에서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지 않을까.” 조영욱 음악감독의 말에 쉬이 반대하기는 힘들다. <공동경비구역 JSA>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박쥐> <아가씨>와 드라마 <리틀 드러머 걸> 그리고 <헤어질 결심>까지, 절친한 친구이자 동업자로 20년 넘게 호흡을 맞추고 있는 둘의 영화 세계는 이제 떼놓을 수 없는 짝이 됐기 때문이다. 특히 박찬욱 감독의 가장 직설적인 멜로 <헤어질 결심>에서 음악이 차지한 영향력을 몸소 느낀 관객이라면 더욱더 그의 말에 동감하지 않을 수 없을 테다. 해준(박해일)과 서래(탕웨이)의 감정을 고스란히 살려내기 위해서 로맨스영화의 감정적인 음악을 최소화한 조영욱 음악감독의 역설적인 선택은 어딘가 뒤틀려 있기에 더없이 아름다운 그들의 아이러니한 사랑을 완결했다.

- <올드보이>나 <친절한 금자씨>에서는 감정을 리드하고 캐릭터를 부각하는 음악, <박쥐>에서는 감정을 고양하지 않는 선의 중도적인 음악을 선택했다. <헤어질 결심>의 음악 방향성은 무엇이었나.

= 보통 영화음악은 이야기를 부각하고 인물의 심리를 증폭하는 역할인데, <헤어질 결심>의 화면에는 감정이 풍부하거나 멜로디가 뚜렷한 음악이 영 맞지 않았다. 오히려 영화가 심심해지고 평범해지는 독특한 경험이었다. 그래서 영화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선에서만, 해준과 서래 사이의 어색하고 묘한 호감 같은 것들을 화면에 얹어주는 정도로만 음악을 썼다. <올드보이>나 <아가씨>에선 후반부로 갈수록 바로크풍 음악의 오케스트라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감정의 폭발을 나타냈는데, 이번에는 대규모 오케스트라를 자제하고 악기 구성을 최소화했다. 현대음악처럼 우드블록이나 캐스터네츠 같은 타악기를 중심으로 하고 스트링은 아주 간소하게만 썼다. 목관이나 금관 악기도 솔로로만 사용하고 주법에 여러 변화를 주면서 현대음악의 분위기를 내려고 했다.

- <헤어질 결심>을 두고 고전적인 품위가 느껴진다거나 특정한 고전 작품을 언급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현대음악의 방식을 썼다니 흥미롭다.

= 작업할 때부터 멜로드라마의 고전적인 음악 공식은 일부러 따르지 않았고, 이전 작품들과 다른 새로운 방식을 추구했다. 박찬욱 감독과도 뭔가 새로운 걸 해보자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런데 칸국제영화제 상영 후에 여러 기자, 평론가들이 영화에서 고전적인 풍이 많이 느껴진다고들 하더라.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웃음) 특히 <현기증> 이야기가 많던데, 악기 구성뿐 아니라 음악을 쓰는 방식에서도 <현기증>의 버나드 허먼처럼 음악을 영화 플롯에 완전히 맞춰 쓰다가 조금씩 변형하는 스타일과는 다르다. <헤어질 결심>의 음악은 인물의 감정이나 시나리오 흐름에만 맞춰 그걸 증폭하는 편은 아니니까. 아마 더 새로운 음악을 하려다보니 오히려 고전의 느낌이 났을지도 모르겠다. 현대적인 것들은 과거에서 찾기 마련이지 않나. 현대 음악적으로 캐스터네츠를 쓰는 것도 조르디 사발의 고음악 연주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

- 말러의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가 영화에 삽입되면서 고전적인 분위기가 더 느껴지지 않았나 싶다. <아다지에토>에 대한 반응이 무척 좋던데 작업 과정은 어땠나.

= 정훈희의 <안개>와 함께 시나리오 단계부터 고려했던 곡인데 작업 중에 어려움이 많았다. 영화에서 <아다지에토>가 세번 쓰이는데 원래 박 감독은 한번만 쓰려고 했다. 아무래도 비극적 멜로의 상징 같은 곡이고, 루키노 비스콘티의 <베니스에서의 죽음>에서도 워낙 강렬하게 쓰였으니까 주저하는 면이 있었다. 그런데 화면에 곡을 붙여보니 너무 잘 어울리더라. 바로 박 감독에게 우리가 굳이 다른 영화들을 신경 쓸 필요 있냐고, 이왕 쓰는 거 더 효과적으로 써보자고 말했다. 결국 해준이 ‘붕괴’하는 중요 장면에까지 더해져서 총 세번 쓰였다.

- 말러의 교향곡을 듣는 인물이 서래의 남편 기도수라는 설정이 무척 재밌다. 집 안에 아주 그럴듯한 청음실이 있고, 등산하면서까지 말러 교향곡을 듣는 사람이다. 박찬욱의 영화에서 음악에 가장 조예가 깊은 인물로까지 보인다.

=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박 감독에게 했던 얘기다. 공무원 출신이 돈이 얼마나 많길래 저런 비싼 스피커나 LP를 집에 두냐고 물었더니 뭐 그럴 수도 있지 않냐는 식으로 답하더라. (웃음). 기도수는 시나리오 단계부터 오디오광에 음악을 좋아하는 인물이었다. 자기애가 무척 강하니까 음악도 혼자 듣는다는 설정이 혼자 등산을 즐긴다거나 서래의 몸에 이름을 새긴다는 부분과도 잘 맞지 않나 싶다. 개인적으로 등장인물이 직접 곡명을 말하는 연출을 좋아하지 않는데 이번엔 재밌더라.

- 앞서 말한 정훈희의 <안개>도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영화의 부제를 ‘안개’로 바꾸어도 무리가 없지 않나 싶은데, <안개>에 얽힌 이야기도 듣고 싶다.

= 박 감독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정훈희의 <안개>에서부터 출발했다. 자연스럽게 <무진기행>이나 김수용의 <안개>도 영향을 끼쳤을 거고. 그만큼 <안개>는 박 감독이 꼭 쓰고 싶다던 곡이었다. 국내 시사회 끝나고는 엔딩 크레딧에 흐른 송창식, 정훈희의 <안개>에 다들 넋을 잃었다고 말하더라. 원래는 트윈폴리오의 <안개>를 생각했었는데 박 감독은 영화가 두 사람의 로맨스니까 정훈희와 송창식의 듀엣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두분이 공연이나 방송에서 같이 <안개>를 부른 적은 꽤 있는데 녹음본은 없다. 만약 녹음에 성공한다면 한국 가요사에 아주 중요한 일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웃음) 다행히 정훈희씨는 흔쾌히 수락해줬고 나, 박 감독, PD랑 같이 송창식 선생의 라이브카페까지 가서 설득을 도와줬다. 은근슬쩍 <안개>를 신청곡으로 써냈더니 송창식 선생이 씩 웃으면서 우리를 찾더라.

- 스스로 서구적인 음악 성향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박쥐>의 트로트나 헤어질 결심의 <안개>는 신선한 경험이기도 할 텐데 시나리오를 보고 어떻게 생각했나.

= 사실 시나리오에 포함된 음악이나 영화의 소재, 주제엔 전혀 구애받지 않는다. 어떤 음악감독들은 시나리오 내의 소재를 가지고 음악을 발전시키지만, 나는 오히려 시나리오에 있는 요소들을 일부러 피하려고 애쓴다. 박 감독도 원하는 방식이다. 시나리오에선 예상하지 못한 음악을 화면에 매치시켰을 때 나오는 아우라가 더 좋다.

- <공동경비구역 JSA>부터 <헤어질 결심>까지. 여기에 <리틀 드러머 걸>까지 합하면 박찬욱 감독과 벌써 8편의 작품을 함께했다. 가족간에도 20년 넘는 동업은 힘들 텐데, 오랜 협업의 비결은 뭔가.

= 아무래도 친구 사이니 일 외적인 것들이나 개인적 성향도 잘 알고, 그렇게 항상 공감대가 유지되는 것 같다. 음악이나 영화 얘기를 자주 나누는데 서로의 취향이 달라도 잘 이해해준다. 심지어 바로 옆집에 사니까 집에서나 작업실에서나 계속 이야기를 나누면서 함께 작업하는 편이다. 아마 내가 한국에서 박 감독의 영화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지 않을까. (웃음) 특히 <헤어질 결심>을 보고서 박찬욱의 세계가 완전히 뿌리를 내렸다고 생각했다.

-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 박 감독과 <HBO> 시리즈 <동조자> 작업이 잡혀 있는데 일정이 조금씩 미뤄지고 있다. 또 올해 벨기에의 겐트국제영화제에선 그동안 작업한 영화음악으로 브뤼셀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연주회를 진행할 예정이다. 영화제에서 한국영화 포커스 섹션을 기획하면서 공연을 제안했다.

내가 꼽은 <헤어질 결심> 속 이 장면

해준이 서래의 집 안을 훔쳐보는 장면

음악으로 <안개>가 쓰이는데 어항 속 물고기가 지느러미를 흐느적흐느적 움직이거나 해준이 서래의 냄새를 맡는 몽환적인 분위기와 아주 잘 어울렸다. 가장 마음에 들고 흡족하다. 뚜렷한 멜로디를 없애다보니 연주자들이 꽤 힘들어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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