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비할 정도로 압도적이다.”(정지혜)
폴 버호벤 감독의 <베네데타>는 17세기에 실존한 한 수녀의 삶을 그리며 역사학자 주디스 C. 브라운의 책 <수녀원 스캔들: 르네상스 이탈리아의 한 레즈비언 수녀의 삶>을 바탕으로 한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부터 논쟁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하지만 폴 버호벤은 단지 자극적인 소재에 탐닉하는 종류의 연출자와는 거리가 멀다. 문제적 인물을 중심에 세워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폴 버호벤의 도발은 이번에도 여전하다. 평자들의 지지는 감독의 꼿꼿한 고집과 논쟁적인 소재 한가운데에 가득한 영화적 활력과 모종의 에너지에 쏠렸다.
“84살의 감독은 종교의 성스러움과 성적인 욕망 사이에 갇힌 인간의 고뇌를 탐구하는 데 있어 그 어떤 멈칫거림과 두려움 없이 직선으로 달린다. <베네데타>는 연륜과 경험이 꺼지지 않는 창작의 에너지와 만났을 때 나올 수 있는 획기적인 결과물”(허남웅)이다. 동시에 “불성을 신성의 필요조건으로 삼는 진기한 여정”(김예솔비)은 지금 시대의 우리에게 필요한 불온함이다. “폴 버호벤은 금기를 깨서 문제적 감독이 되는 게 아니라 금기를 잘 다루어서 경이로워지고 있는 중”(이보라)인 셈이다. <베네데타>는 관습에의 저항을 넘어 오늘날 정체되어가는 영화를 향해 일갈을 날리는 들끓는 호기심의 결정체다. 금기와 욕망을 추진체 삼아 미지의 세계로 진입하는 과감한 용기는 그것만으로도 올해의 영화로 기억되기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