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2023라이징스타] 배우 정이주, “투명한 구슬처럼”
2023-02-23
글 : 조현나
사진 : 최성열

영화 2022 <지옥만세>

드라마 2022 <트롤리> <형사록> <소년심판>

정이주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에겐 “나무늘보” 같은 면이 있다. 첫 화보 촬영임에도 긴장한 기색 없이 기자에게 함께할 배우들의 이름을 물으며 현장을 파악해갔다. 첫 인터뷰임에도 다수의 질문에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이라고 말문을 열고, 억지로 답을 꾸며내려 하지 않았다. 유독 천천히 감기는 그의 눈을 보며 생각했다. 이 여유가 진정 신인의 것이란 말인가.

그와 대화하다보면 자연스레 드라마 <트롤리>의 혜주가 연상된다. 혜주를 연기한 배우 김현주의 아역이었기에 감독의 요청대로 “균형 잡힌 김현주 선배님의 연기톤”을 좇았다. 한편으론 “혜주가 말이 많지 않고 차분한 온도를 지녔다”는 점이 잘 맞아 자신의 것을 꺼내 보이기 용이했다고. <트롤리>를 비롯해 <형사록> <소년심판> 등 세 작품에 연달아 출연하며 정이주는 차근차근 자신을 알렸다. 특히 <소년심판>에선 청소년 회복센터장의 딸 아름을 연기해 철없는 보호 청소년들과 자신을 등한시하는 엄마를 상대로 ‘K장녀의 분노’를 가감 없이 보여줬다는 평을 받았다. “야구 배트로 센터를 부수는 행동이 다소 과격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사춘기 중학생인 아름으로선 충분히 할 법한 선택으로 보였다.” 부산국제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에 초청된 영화 <지옥만세>의 채린을 통해선 처음으로 장편의 긴 호흡을 체화했다. “보통 친구 사귀듯 애정을 갖고 맡은 인물에 다가가는데 가해자인 채린이에겐 그 방식이 통하지 않았다. 찾아낸 돌파구는 다른 인물의 시선에서 채린이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의도적으로 특정 말투와 표정을 사용하며 연기했는데 새로운 시도라 많이 배웠다.”

‘정이주’라는 이름은 “동글동글하고 투명한 구슬”과 같은 그의 이미지에 맞춰 선택된 예명이다. “수업 잘 듣고 교우 관계 원만한 반장”이었다는 과거로 판단하건대, 정이주란 이름엔 그의 모난 곳 없는 성정까지 반영된 듯하다. 조용히 공부에 열중하던 그가 돌연 연기를 시작한 건 고3에 이르러서였다. 성적에 대한 압박 속에서 예체능으로 눈을 돌렸는데 “‘연기’, ‘특기’, ‘질의응답’ 세 파트로 나뉜 연기과 입시는 재밌게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렇게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기과에 입학했다. “학교 다니는 걸 굉장히 좋아했는데 곧 졸업한다. 더이상 연기를 배우는 학생이 아닌, 직업인으로서 연기를 한다는 게 조심스럽기도 하다.”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훑으며 “화면 속의 내 모습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 그래서 장르물을 많이 했구나 싶다”는 스스로에 대한 해석을 내놓는다. 이를 발판 삼아 정이주는 올해 더 다양한 얼굴로 카메라 앞에 서길 꿈꾼다. “채린이에서 더 나아간 빌런, 훨씬 장난기 있거나 현실에 발붙인 인물도 좋다. 계속 오디션을 보면서 차기작을 준비 중이다. 개인적인 계획도 말해보자면 규칙적으로 자고, 식사하고, 영양제 챙겨 먹기. 이 세개만 잘 지켜도 칭찬받아 마땅한 삶이 아닌가. (웃음)”

나를 배우로 만든 세 가지

“첫째로 떠오르는 건 지구다. 지구인으로서 내가 경험한 모든 우연과 인연, 환경, 상황 덕에 여기에 이르렀고 앞으로도 어떻게 흘러갈지 모른다. 그렇기에 넒은 의미에서 내가 살고 있는 지구 덕에 배우가 되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많은 걸 하고픈 욕심과 사랑받고 싶은 마음. 연기는 결국 봐주는 사람이 존재하기에 의미가 있다. 매 순간 떨리지만 관심을 즐긴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웃음)”

함께 작업하고 싶은 감독, 배우

“좋아하는 분들이 있지만 미리 정해두진 않으려 한다. 현재로선 공개된 작품에 기반해 택할 수밖에 없는데, 그것보단 현장에서 만나 자연스레 가까워지고 싶다. 그렇게 합을 맞춰나갈 때 훨씬 즐겁더라.”

연기 외 취미나 관심사

“솔직히 말하면, 날씨 좋을 때 창문을 열어두고 낮잠 자는 거다. (웃음) 그 밖에 설거지, 요리, 집 안 구조를 바꾸는 등 집안일을 즐기고 책도 꾸준히 읽는다. 최근 흥미롭게 읽은 건 <소설 보다: 여름>(2021)에 수록된 <쿄코와 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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