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적 관객수 439만명에 이른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열기가 아직도 뜨겁다. 2023년 1월4일 개봉 이후, 벚꽃이 다 저문 지금까지 장기 상영이 지속되는 것을 보면 그야말로 열광적인 신드롬이다. 실제로 원작 <슬램덩크>의 신장재편판은 100만부를 달성했고, 농놀(농구 놀이)을 위해 공터와 체육관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공식 굿즈를 쟁취하기 위한 클릭 전쟁과 아이맥스 버전 개봉 등 새로운 현상이 펼쳐지는 와중에 엔딩곡 <第ゼロ感>(제ZERO감)을 작곡하고 부른 3인조 밴드 텐피트(10-FEET)가 라이브 공연을 선보이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第ゼロ感>이 <더 퍼스트 슬램덩크> 흥행의 이유라면 텐피트의 내한은 흥행의 결과다. 인과관계 사이에 숨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파헤치기 위해 라이브 공연 전 텐피트 멤버를 만났다. 보컬과 기타 연주를 맡은 다쿠마, 드럼 연주와 코러스의 고이치, 베이스 연주와 보컬의 나오키와의 대담이다.
- 한국에서 1월4일 개봉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4월을 넘어서까지 상영 중일 정도로 열기가 식지 않고 있다. 지난해 일본에서 개봉했을 때 일본 현지 반응과 인기는 어느 정도였는지 궁금하다.
나오키 처음 개봉 이후 사람들의 반응은 말 그대로 들끓었다. 3번에서 5번 정도 n차 관람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다쿠마 셋 모두 <슬램덩크> 키드다. 그래서 우리와 비슷한 3040세대가 가장 먼저 반응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다른 연령대에서 환호하기 시작했다. 그런 세대적 교차가 무척 인상 깊었다. ‘텐피트’라는 이름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의 엔딩 주제가와 O.S.T에 함께할 수 있어 기쁘다.
- <더 퍼스트 슬램덩크> 제목처럼, 과거 명성이 높은 만화의 첫 영화화 작업이다. 이런 지점이 다소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었을 텐데 어떻게 결정했나.
고이치 이야기를 듣자마자 든 생각은 “우리가 <슬램덩크> 노래를 맡는다고?!”였다. (웃음) 너무 놀랍고 기뻤다. 망설임 없이 바로 결정했던 기억이 난다.
다쿠마 맞다. 보통 드라마나 CF의 경우, 제작을 두고 다른 팀들과 경쟁을 펼치게 되는데 사실 그전까지는 “함께하기 어렵겠다”는 아쉬운 답변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기회가 주어진 순간, 조금이라도 망설이면 기회를 영영 놓칠 것 같았다. 막연한 우려에 주저하기보다는 우리만이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곡을 어떻게 선보일 수 있을지 현실적으로 고민하려 했다.
- 자기다움으로 고군분투를 벌여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는 이야기가 <슬램덩크> 정신과 어울린다. 극 중 O.S.T가 마음을 벅차오르게 하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 이런 지점을 반영하기 위해 어떤 점을 가장 신경 썼나.
다쿠마 스포츠영화에도 다양한 키워드가 있기 때문에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어떤 감정을 주요하게 발산시키고 싶은지 이해하는 게 가장 중요했다. 이노우에 다케히코 감독과 제작사 도에이 애니메이션측이 바라는 방향과 텐피트가 구현할 수 있는 바를 일치시키고 싶었다. 그래서 양측이 함께 영감의 근원을 찾고 이를 조율해나가는 게 정말 중요했다. 감독님은 특정한 지시를 전달하면 그게 오히려 아티스트의 상상력을 저해시킨다고 생각하셨는지 계속 열어주려 하셨다. 다만 북산고의 위기는 곧 산왕공고의 찬스이기도 해 두팀 모두 멋있게 조명될 수 있는 곡을 원하셨다.
나오키 텐피트는 세명의 멤버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처음 해보는 경험들이 많았다. 박진감 넘치는 신, 감동적인 신, 위기에 처한 신 등 각 장면의 분위기에 따라 음색이나 멜로디를 쌓아가는 게 신선했고 너무너무 재미있었다. (웃음)
- 작업 기간은 2년 정도 걸렸다고.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크고 작은 문제가 많았을 것 같다.
다쿠마 그동안 텐피트가 주력으로 삼은 장르는 록이다. 그런데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기존과 달리 더 다양한 장르를 작업해야 했다. 게다가 작곡과 레코딩은 완전히 다른 영역의 일이라 기술적으로 고민하고 차별점을 찾아야 해서 그 과정에 고초를 겪었다. 다만 뜻밖의 일이 있었다. 코로나19 시기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그냥 놀기 삼아 작곡을 했다. 텐피트의 곡도, O.S.T 작업도 아닌 정말 유희 활동이었다. 그렇게 그 곡은 한동안 잠들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제작사에 노래를 보내고 피드백을 받던 과정에서 ‘진짜 이제 더는 없다!’는 마음으로 그 노래를 꺼내 보냈는데 “혜성 같은 노래가 나타났다”고 말씀해주시더라. 그게 바로 엔딩 주제가인 <第ゼロ感>이다.
- 실제로 팬들이 만든 2차 창작물 대부분이 <第ゼロ感>을 배경음악으로 두고 있다. <第ゼロ感>이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상징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다쿠마 <第ゼロ感>은 처음엔 엔딩 주제곡이 아니라 배경음악이었다. 그런데 도에이 애니메이션에서 <第ゼロ感>을 엔딩 주제가로 쓰면 좋겠다고 하셨다. 영화 속에서 극적인 순간마다 흘러나온 <第ゼロ感>이 마지막에 한편의 곡으로 펼쳐질 때 감정을 고조시킬 수 있을 거라고. 그래서 실제 공정 순서로 따지면 O.S.T에서 엔딩 주제곡으로 확장되었다. 그 덕에 더블 클러치 효과를 볼 수 있었다.
- 송태섭이 형과의 추억이 담긴 해변가에서 슬픔을 딛는 장면에 나온
다쿠마 일단 어떤 스토리 파트에 쓰일 노래일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혼자 착각한 부분이 있다. (웃음) 사실 그 노래는 송태섭이 “하나, 둘, 셋 이기자!” 하고 외치는 장면에 쓰이는 줄 알고 작곡했는데 알고 보니 해변 신에 해당되었다. 우리의 실수였지만 실수가 오히려 더 좋은 결과를 만든 것 같다. 이노우에 감독님은 자주 “기적을 만들자”고 말씀하셨는데 정말 기적이 일어난 듯한 느낌이었다. 록을 해온 우리가 일렉트로닉을 애니메이션에 접목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지 않을까.
나오키 승부욕을 불태우며 “이기자!”고 외치던 장면과 형을 대신해 사랑하는 가족의 주장이 되기로 결심한 송태섭의 비장함이 일치해서 장면이 바뀌어도 노래와 잘 어울렸던 것 같다.
사운드트랙이 되살려내는 캐릭터들
4월5일 수요일,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텐피트의 내한 라이브 이벤트가 진행되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엔딩곡인 <第ゼロ感>을 비롯해 텐피트의 히트곡 <ヒトリセカイ>(히토리세카이)와 <ハローフィクサー>(헬로 픽서)를 선보였다. <第ゼロ感>의 전주와 함께 관객의 함성이 쏟아지며 열기는 더욱 뜨거워졌고, 보컬과 기타 연주를 맡은 다쿠마는 강렬한 발차기로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앙코르 타임엔 텐피트가 준비한 <아리랑> 무대를 볼 수 있었다. 방송인 재재와 진행된 인터뷰에서는 각 멤버가 가장 좋아하는 <슬램덩크> 인물을 물었는데 다쿠마는 송태섭, 나오키는 권준호, 고이치는 서태웅을 꼽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