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기획] ‘거울 속 외딴 성’ 하라 케이이치 감독 인터뷰
2023-04-13
글 : 송경원

“'국립국어원의 외래어표기법에 따른 올바른 표기는 '하라 게이이치'가 맞으나 영화사의 요청으로 '하라 케이이치'로 표기한다.”

하라 케이이치 감독은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 시리즈의 완성도를 한 단계 끌어올린 연출자다. 특히 9기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어른 제국의 역습>(2001)은 어른들을 울리는 동화로 정평나 있다. 그 밖에도 연출작마다 일본 아카데미 우수상을 놓치지 않고 수상한 하라 케이이치 감독이 또 한번 가슴을 울릴 동화를 들고 찾아왔다. 국내 개봉을 앞둔 <거울 속 외딴 성>은 <스즈메의 문단속> <더 퍼스트 슬램덩크>와 함께 제46회 일본 아카데미 우수 애니메이션상을 받았다. 등교를 거부한 학생 문제를 동화적 상상력으로 풀어낸 이 작품은 하라 케이이치가 왜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 중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인지를 증명한다. 그에게 일본 애니메이션의 매력과 저력에 대해 물었다.

- 일본 아카데미 애니메이션 부문 우수상 수상을 축하한다. <갓파 쿠와 여름방학을> <컬러풀> <백일홍: 미스 호쿠사이>에 이어 네 번째 수상이다.

= 우리 작품보다 10배 정도의 성적을 올린 영화와 함께 선정된 것은 참 고마운 일이다. (웃음) 함께 언급된 다른 작품에 비하면 흥행 면에서는 조금 떨어지지만 그래도 단발물 애니메이션영화로는 꽤 성적이 좋다. 관객의 마음에 다가가는 영화였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 쓰지무라 미즈키 작가의 베스트셀러를 애니메이션화했다. 중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 이번 작품의 경우 애니메이션화하고 싶다는 구체적인 의뢰가 있었고 원작을 읽은 후 맡기로 결정했다. 마루호 미로 각본가와 오래 작업했는데 원작이 상당히 긴 장편소설이라 그걸 어떤 식으로 2시간 이내의 영화로 만들지가 관건이었다. 원작의 중심을 살리고 중요한 부분을 남기면서도 내용에 모순이 없어야 했다. 특히 주인공 아이들이 괴로움에 빠진 이유를 확실히 그리고 싶었다. ‘악’의 존재를 ‘악’으로 제대로 그리도록 신경 썼다.

- <거울 속 외딴 성>은 미스터리 구조로 대단히 높은 평가를 받은 작품이다.

= 이 작품은 판타지 미스터리 장르지만 나는 미스터리에 별 관심이 없다. 미스터리영화를 본 사람들은 ‘스포일러’가 어떻다, ‘복선의 회수’가 어떻다고 말하지만 꼭 그런 식으로 볼 필요는 없지 않을까. 수수께끼 풀이에 집중하면 그것과 관계없는 중요한 것을 간과할 수도 있기 때문에 되도록 스포일러나 복선의 회수에 신경 쓰지 말고 드라마를 본다는 자세로 보는 편이 이 영화를 더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전문 성우를 쓰지 않고 도우마 아미, 아시다 마나 등 배우로 활약하는 이들에게 주인공을 맡겼다.

= 가능한 한 등장인물과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에게 목소리 연기를 맡기고 싶었다. 10대의 나카무라와 더 어린 아이도 참여했는데 그 애들이 내는 목소리와 목소리 연기는 그림을 굉장히 리얼하게 만들어준다. 가령 늑대님 역을 맡은 아시다 마나 배우는 어릴 때부터 아역배우로 활발히 활동해 10년 넘는 커리어를 자랑하는 국민배우다. 코코로 역의 도우마 아미 배우는 1천명이 넘는 오디션 지원자 중 선발했다. 최종적으로 20여명을 녹음실에 불러 한명씩 대화를 하고 녹음을 했는데, 누가 맡아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다들 잘했다. 그중 도우마 아미 배우가 나이도 맞았고 가장 위화감이 없었다.

- 일곱 친구들과 늑대님, 또한 키타지마 선생님과의 관계가 마지막까지 흥미롭게 펼쳐진다.

= 문장으로 읽었을 때는 위화감이 없어도 그림으로 만들자 문장에서는 알아차리지 못한 걸 알아차리는 일이 있다. 트릭을 감추는 게 목적은 아니었지만 너무 드러나는 묘사나 대화는 피하려 신경 썼다. 중요한 건 캐릭터 각자의 개성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거였다. 결과적으로 아이들의 목소리의 조각이 채워진 순간, “됐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 일단 성의 디자인이 처음부터 시선을 빼앗는다.

= 원작에는 탑 위에서 밑을 내려다보면 구름이 있어서 아래쪽이 보이지 않는다고 되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에서는 어떻게든 한눈에 임팩트가 있는 비주얼로 하고 싶었다. 그즈음 우연히 TV에서 세계 유산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는데, 호주의 본토에서 조금 떨어져서 사방이 온통 바다뿐인 곳에 ‘볼스피라미드’라는 높이 500~600m의 바위산이 우뚝 솟아 있는 걸 봤다. 그 바위산을 본 순간 “아! 저 바위산 위에 성을 만들면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애니메이션 연출도 하는 일리아 쿠프시노프가 최종 디자인을 했다.

- 청춘 애니메이션 작품이 주특기인 A-1 픽처스와 처음으로 작업했다.

= 처음 일하는 스튜디오에서 극장용 작품을 만드는 건 무척 불안한 일이다. 아마 A-1 픽처스도 나와 일하는 게 불안했을 거다. (웃음) 솔직히 불안해서 되도록 의지할 수 있는 애니메이터들에게 부탁해서 같이 일하기로 했는데 그들만으론 모든 장면을 만들 수 없어서 A-1쪽에서 데려온 애니메이터들과도 회의를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잘 그리는 사람이 있구나, 내가 몰랐을 뿐 이곳에도 이렇게 멋지게 그리는 사람이 있구나, 하고 감탄했다.

- 이번 작품은 표현과 설정은 판타지지만 실은 현실 세계의 어둠을 그린 이야기다. 세대의 단절을 그린 <짱구는 못말려: 어른 제국의 역습>이나 지금도 종종 화제에 오르는 따돌림을 주제로 한 <갓파 쿠와 여름방학을>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 특별히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 <짱구는 못말려>라는 개그 애니메이션을 가장 오랫동안 만들었다. 그렇게 영향력 있는 작품을 만들고 나면 특정 이미지가 생긴다. 이렇게 ‘울리는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사람이라 여겨지는 것처럼. 드라마가 강한 작품들을 주로 만들어왔지만 때론 완전히 말이 안되는 황당한 작품도 만들고 싶다. 젊진 않지만 슬슬 이미지 체인지를 하고 싶은 나이다. (웃음)

- 이번 작품에선 등교 거부 학생들의 이야기를 판타지적으로 풀어냈다. 등교 거부는 일종의 사회문제이기도 한데,

= 등교 거부는 오랫동안 계속되고 있는 사회문제이고 이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작품은 아니다. 쓰지무라 작가의 원작에서 공감한 부분은 가기 싫은데 억지로 학교에 갈 필요는 없다는 거였다. 가기 싫은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게 얼마나 괴로울까. 매일 괴로움에 시달려야 한다면 그런 학교는 가지 않아도 된다고, 주변의 어른들이 말을 해줘야 한다. 중요한 건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곁에 있는 존재를 느끼는 게 아닐까 싶다. 일곱명의 아이들은 서로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주는 거다. 그런 신비한 존재나 기적 같은 순간을 부정한다면 삶이 얼마나 시시해질까. 현실에서도 아주 작은 우연이나 운명 같은 만남이 위로가 될 때가 있다. 어딘가엔 내 곁에서 나를 생각해주는 존재가 있다는 걸 믿고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빨간 모자> <늑대와 일곱 마리 아기 양> 등 여러 동화가 연상된다. 영향받은 작품이 있나.

= 동화는 아니지만 외국 작품 중에서는 <시튼 동물기>를 굉장히 좋아했다. 또한 마음속에 커다란 존재가 있는데 바로 ‘미야자와 겐지’다. 어린 시절에 읽은 작품을 어른이 되어 다시 읽으면 그 깊이와 독창성에 깜짝 놀랄 때가 있는데, 미야자와 겐지가 바로 그런 작가다. 특히 일본 만화나 소설을 좋아하는 이라면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를 꼭 읽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 <더 퍼스트 슬램덩크> <스즈메의 문단속> 등 지금 한국에서는 일본 애니메이션들이 크게 흥행 중이다.

= 애니메이션 업계에 들어온 지 40년이 지났는데, 그 시절에는 지금 같은 상황은 상상도 못했다. 일본 애니메이션이 이렇게 해외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해외 팬들이 좋아해주는 상황은 굉장히 멋진 일이다. 다만 일본이 언제까지나 지금과 같은 위치에 있을 수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다른 나라가 더 멋지고 더 훌륭한 애니메이션을 만들면 모두 그쪽으로 갈 테니까 지금의 현상을 당연하다 여기지 말고 계속해서 만드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한다.

사진제공 Osamu Kikuc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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