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기획] “신카이 마코토에겐 형식이 크게 중요하지 않다”, 강상욱, 강민하 인터뷰
2023-04-13
글 : 이자연
사진 : 최성열

<스즈메의 문단속>이 누적 관객수 390만명에 이르며 역대 국내 개봉 일본영화 흥행 2위를 차지했다. 1위는 현재 441만명을 기록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 역대 1, 2위를 앞다투는 두 작품의 전면전을 실시간으로 보는 지금, 문득 근원적인 질문이 든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어떻게 한국에 안정적으로 착지할 수 있었을까. 뛰어난 스토리와 아름다운 표현 기법 등 감독의 고유 영역을 잠시 차치하고, 문화와 정서, 감수성이 서로 다른 국가에서 공감과 환호를 얻을 수 있었던 배경을 탐색하기 위해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영화를 꾸준히 국내에 소개한 영화 수입사 ‘미디어캐슬’을 찾았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을 일찍이 알아보고 그의 작품을 수입하기 위해 오랫동안 전략적 모색을 꾀한 강상욱 대표와 신카이 마코토를 포함한 다양한 일본영화를 번역한 강민하 이사를 만났다. 이들은 <스즈메의 문단속>이 고공행진할 줄 예상했을까.

강민하, 강상욱(왼쪽부터)

- (4월6일 기준) <스즈메의 문단속>이 누적 관객수 400만명을 눈앞에 두고 있다. 미디어캐슬 수입 영화 중 최고 기록을 세운 <너의 이름은.>(2016)의 기록을 경신했는데, 어떤 점이 흥행 요소로 작용한 것 같나.

강상욱 <너의 이름은.> 때와 사뭇 다른 분위기가 느껴진다. 일본 역대 애니메이션 흥행 순위 5위를 차지한 <너의 이름은.>은 당시 250억엔의 메가 히트를 치며 그 화제성이 한국으로 넘어왔다.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관객층을 제대로 겨냥하며 n차 관람이 확산됐는데 <스즈메의 문단속>은 그보다 대중의 선택에 가깝다. 지금까지 애니메이션 장르를 크게 좋아하지 않던 일반 관객도 쉽게 즐기는 작품으로 떠올랐다. 한편으론 애니메이션 마니아들 사이에서 신카이 마코토만의 색깔이 다소 옅어졌다는 평이 따르기도 하지만, 확실히 대중성을 넓혔 다는 성과를 얻었다.

강민하 예전에는 영화를 번역할 때 한국어화의 과정이 정말 중요했다.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누가 보아도 바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언어적 걸림돌을 최소화해야 했다. 가장 대표적으로 <이웃집 토토로>의 먼지들을 ‘숯검댕이’, ‘검댕이’로 번역한 게 있었다. 그런데 일본식 용어와 지역적 문체가 많이 반영된 <너의 이름은.>의 경우, 대중적으로 순화하여 번역했더니 팬들 사이에서 ‘왜 원작대로 번역하지 않느냐'는 반응이 따랐다. 이후 국내에서 크게 흥행한 <귀멸의 칼날> 시리즈를 보았는데 한자와 사자성어가 그대로 살아 있더라. 그제야 요즘 관객이 특정 언어를 하나의 고유명사로 받아들이고 수용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한국어로 표기해도 그 의미가 충분히 전달되는 것은 번역하되, 작품에서의 맥락이 중요한 것은 그대로 살리는 시도를 했다. <스즈메의 문단속>에서 문을 닫는 사람을 가리키는 ‘토지시’와 재난의 기운인 ‘미미즈’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런 시도는 결국 관객의 변화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강상욱 실제로 토지시의 경우 한국어 후보가 10개 정도 있었다. 폐문사, 봉문사, 문지기 등…. (웃음)

- 미디어캐슬은 신카이 마코토가 국내에 이름을 알리기 전 <별의 목소리>(2002)와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2004)를 발표한 단계에서 <초속 5센티미터>(2007)의 투자를 결정했다. 초창기 신카이 마코토에게서 무엇을 보았던 것인가.

강상욱 간단하다. 이런 사람이 앞으로 영화를 만들면 내가 너무 행복할 것 같았다. (웃음) 2000년에 나온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제작부터 더빙까지 혼자 진행한 흑백애니메이션이다. 인물의 움직임이나 프레임이 정교한 것은 아닌데 스토리텔링과 대사, 분위기가 묘하게 사람의 감성을 건드렸다. <별의 목소리>도 1인 프로듀싱한 작품인데 퀄리티가 뛰어났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시그니처인 문자를 주고받는 장면이나 인물의 긴 독백이 이 작품에서부터 시작됐다. 게다가 섬세한 디자인의 우주선이나 풍경 묘사를 보았을 때, 더 많은 제작 시스템과 투자가 붙는다면 얼마나 훌륭한 작품이 나올지 궁금했다. 사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나 곤 사토시 감독의 작품을 보면 단번에 애니메이션 명작이라는 것을 안다. 그런데 신카이 마코토의 경우, 애니메이션 장르를 위한 무언가를 만든다기보다 애니메이션은 도구일 뿐 인간의 감정을 비추는 이야기를 창작한다는 느낌이 강하다. 그러니 신카이 마코토에겐 형식이 크게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언젠가 이 감독이 실사영화를 제작한다고 하면 그때도 큰 기대를 품고 유용한 도움이 될 의향이 있다.

- 그런데 <초속 5센티미터> 이후 다음 수입 작품이 <너의 이름은.>이다. 그 사이의 작품인 <별을 쫓는 아이>(2011)와 <언어의 정원>(2013)을 수입하지 않은 이유가 있나.

강상욱 2010년 즈음 <별을 쫓는 아이>를 내부 시사로 보기 위해 일본에 찾아갔는데 작품에서 약간 스튜디오 지브리풍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건 내가 생각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특징이 아니어서 장고 끝에 수입을 포기했다. 그 뒤로 <언어의 정원>이 나왔을 때 다시 찾아갔는데 <별을 쫓는 아이>가 국내에서 큰 흥행을 거두지 못해 미안한 마음에 <언어의 정원>까지 전 수입사와 계약하기로 했다고 하시더라. 그래서 다음 작품을 어떻게든 수입해오고 싶은 마음에 몇 가지를 제안했다. 이 제안을 충족해주면 원하는 액수로 협상하겠다고 백지수표까지 내보이는 전략을 짰다.

- 그 제안은 무엇이었나.

강상욱 로맨스가 들어가 있을 것, 러닝타임은 90분 전후일 것, 음악은 <초속 5센티미터>와 <언어의 정원>만큼 나올 것, 큰 배급사와 함께할 것 등 구체적인 제안을 냈다. 이런 경우가 거의 없어 약간 미친 사람처럼 봤을 것 같다. (웃음) 개인적으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을 처음 봤을 때 느낀 아쉬운 요소들을 얘기한 것이었다. 그리고 4~5년 동안 <너의 이름은.>이 나올 때까지 신작 언제 나오냐는 연락만 계속 했다. 아마 제작사인 코믹스 웨이브도 지겨웠을 거다. 그 과정에 제작사에서 만든 작은 규모의 작품들을 계속 수입해왔다. 매출이 거의 0에 수렴했지만 우리가 얼마나 신카이 마코토의 신작을 기다리고 있는지 알려주고 싶었다.

- 큰 그림을 위한 물밑 작업이었나. (웃음)

강상욱 그렇다. (웃음) 만담 애니메이션 <피핑 라이프>가 당시 수입해온 작품 중 하나다. 한편당 5분 정도라 미디어캐슬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이렇게 무료로 풀어버릴 정도로 수익에 크게 괘념치 않았다. 그런 우리의 노력을 알아주었는지 <너의 이름은.>을 수입할 수 있게 되었고, 거래금도 무척 합리적이었다. 아마 일본 회사의 특성상 끈질기게 구애하는 우리를 외면할 수 없었을 거다. 그때 내가 이런 의견을 강력하게 내세웠다. “한국에서 나보다 신카이 마코토를 잘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강민하 당시 내가 통역을 했는데 가끔은 로맨스영화 대사 같아서 약간 민망하기도 했다. (웃음)

강상욱 그냥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순수하게 너무 좋았다. 그렇게 <너의 이름은.>으로 국내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신뢰가 쌓이면서 <날씨의 아이> <스즈메의 문단속>까지 오게 됐다. 이제 코믹스 웨이브는 우리의 형제 회사나 다름없다. 미디어캐슬이 한창 힘들던 지난해 2월, 감사하게도 투자를 해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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