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민하 이사는 번역 과정에 자기만의 철칙을 두는 것으로 안다. 작품이 영원히 남기 때문에 특정 세대의 유행어를 지양하고, 일본 관객은 웃지만 한국 관객은 웃지 않는 번역을 하지 않으려 한다고.
강민하 번역가로서나 통역가로서 내가 하는 일은 명확한 의미 전달이다. 한 작품이 관객에게 잘 수용되기 위해 자연스러운 의미를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 이 철칙에는 변함이 없다. 특히 <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 <스즈메의 문단속>은 10대 친구들이 주인공으로 나오기 때문에 세대적으로 사어가 된 말을 피하려 했다. 유행어와 줄임말을 쓰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오래된 느낌의 말은 고등학생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스즈메의 문단속> 엔딩곡에 ‘천변지이’라는 말이 나왔는데, 이게 천재지변과는 뉘앙스가 약간 다르다. 천재지변이 자연현상에서 비롯한 재난을 말한다면 천변지이는 자연적인 변화를 이른다. 그런데 내부 시사 중 세대별로 이 용어에 대한 인지가 많이 다르더라. 이런 경우엔 이해도를 높이는 게 중요해서 유연성을 갖고 말을 바꾸기도 했다.
- 대략 3년 주기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이 국내에 공개되고 있다. 스튜디오 지브리 세대를 거쳐 이제는 신카이 마코토 세대가 떠오르고 있는 듯한데.
강민하 스튜디오 지브리 작품의 경우 폭력적이고 아이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많았는데 단지 애니메이션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이 가족영화로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그에 비해 신카이 마코토는 훨씬 더 대중적인 작품들을 선보여왔다. 그 사이의 중간 단계가 호소다 마모루 감독이지 않을까. 아이들도 좋아하는 소소한 학원물(<시간을 달리는 소녀>)로 시작해서 상대적 성인 취향인 <늑대아이>와 <괴물의 아이>까지 두루두루 다루었다. 그래서 국내의 일본 애니메이션 계보로 보면 미야자키 하야오, 호소다 마모루, 그리고 지금의 신카이 마코토로 연결되고 있는 듯하다.
강상욱 일본에는 한국에 없는 독특한 흥행 시스템이 있다. 먼저 스튜디오 지브리같이 오리지널 작품을 내세우는 애니메이션이 있고, <소년 점프> 연재 중 반응이 좋아 애니메이션화되었다가 그게 또 유명해지면 극장판을 제작하는 경우가 있다. 국내 인지도로 보았을 때 가장 유명한 감독은 역시 미야자키 하야오다. 그런데 이미 몇년 전 <귀멸의 칼날> 시리즈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흥행 성적을 깼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미야자키 하야오는 알아도 <귀멸의 칼날> 감독은 모른다. 도대체 왜일까? 이제 관객은 IP 자체에 대한 소비 욕구가 커졌다. 극장판 시리즈별로 감독이 달라지고 변하는 가운데 사람들은 스튜디오만 기억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애니메이션 산업에서 누군가의 제자도 아니고 회사원 출신에다 1인 프로듀싱을 도맡아온 신카이 마코토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선구안이다. 다른 말로 근미래의 트렌드 캐치. 예를 들어 <날씨의 아이> 같은 경우도 2016년 즈음부터 작업이 시작됐는데 기후 위기가 급격히 대두된 2019년에 개봉하며 사람들의 관심사를 적중시켰다. 작품이 완성될 시기의 경향을 예측한 것이다. 이런 점 덕분에 관객 사이에 나타나는 세대적 변화에도 그의 작품이 살아남을 수 있지 않았나 싶다.
- 그렇다면 미디어캐슬이 신카이 마코토 다음으로 눈여겨보고 있는 애니메이션 감독은 누구인가.
강상욱 정말 많은데 그중에서도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이다. 그동안 <새벽을 알리는 루의 노래>(2017),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2017), <너와 파도를 탈 수 있다면>(2019), <견왕: 이누오>(2022) 등을 수입해왔는데 아직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아 아쉽다. 감독만의 작품 세계가 견고한데도 비즈니스 입장에서는 한끗이 터지지 않아 안타까움이 크다. 더 알려질 만한 가치가 높은 작품들이다.
강민하 일본 애니메이션의 정도를 벗어나 자기만의 길을 가고 있는 감독이다. 그림체와 스토리텔링이 매력적인데 그 키치한 부분이 대중에게 아직 낯선 것 같다.
- 한동안 국내 극장가의 톱3가 <더 퍼스트 슬램덩크> <스즈메의 문단속> <귀멸의 칼날: 상현집결, 그리고 도공 마을로>였다. 일본 애니메이션에 열광하는 관객 사이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걸까.
강상욱 극장에서 볼만한 영화를 고르는 기준이 달라지고 있다. 이제 2인당 티켓값이 3만~4만원을 훌쩍 넘는 상황에서 관객은 자신이 얻을 게 확실한 영화를 찾는다. 애니메이션은 아니지만 110만명의 누적 관객수를 달성한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의 경우, ‘이 영화를 보면 휴지를 이만큼이나 쓸 수밖에 없다’는 내용을 마케팅 포인트로 잡았다. 그러자 관객은 슬픔이라는 감정을 타인의 눈치 볼 일 없이 마음껏 느끼고 향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극장을 선택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도 두말할 필요 없다. 30년 이상 된 IP지만 4050세대 남성 관객을 시작으로 전통적인 무비 고어인 2030여성에게까지 퍼지면서 대중성을 얻었다. <슬램덩크>만이 줄 수 있는 스포츠의 박진감과 감동과 의의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스즈메의 문단속>도 로드 무비로서 마블 영화처럼 텐션이 계속 유지되어서 지루할 새를 만들어주지 않는 힘을 갖고 있다.
강민하 1998년 문화 개방이 이뤄지고 나서 2000년대 초반까지 다양한 외화가 쏟아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대부분 영화제에서 상받은 명작 위주로 개봉했기 때문에 국내로 수입된 외화는 꼭 봐야 한다는 암묵적 인식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OTT로 인한 개인화에 따라 다양한 작품에 쉽게 접근할 환경이 갖춰지자 사람들은 자신의 취향을 존중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이 뭐라 하든, 평론가가 어떻게 점수를 주든 자신이 좋아하고 만족하는 작품을 스스로 선택해나갔다. 이러한 관객 태도는 현재 극장에도 적용되고 있다. 아무리 티켓값이 올라 극장에 덜 가게 됐다 하더라도 n차 관람은 여전히 이어지고, 영화의 규모와 상관없이 조용히 흥행하는 작품도 있다. 꼭 일본 작품이어서가 아니라 문화적 다양성이 존중받는 환경이 만들어지니까 일면 마니악했던 장르들이 더 떠오르고 힘을 받게 된 것 같다.
강상욱 얼마 전 일본에 대한 한국인의 호감도 조사 결과를 본 적 있는데 그중 불호가 70%에 달했다. 그 수치로 보면 <더 퍼스트 슬램덩크>나 <스즈메의 문단속> 같은 흥행 성적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렇듯 사람들이 조금씩 문화에 대한 소비와 정치적 간극을 분리해 바라보기 시작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